요즘 누가 '복붙'하니? 코로나19가 바꾼 결혼풍속도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로 기억되길 바라는 신랑신부의 마음과 달리 그간의 결혼식 이미지는 ‘복붙’을 한 듯 동일했다. 몇 달을 고심해 고른 웨딩드레스보다 잘 대접한 한 끼가 기억에 남는 허무함, ‘축의금 회수’를 위해 동원된 부모님의 하객으로 북적이던 식장의 어수선함 등이 오랜 세월 견고하게 굳어있던 우리네 결혼식 풍경이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영향이다.
코로나19는 결혼식의 양극화 바람을 일으켰다. 수시로 변하는 정부의 방역 정책과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제한된 하객 수는 자연스럽게 ‘소규모 웨딩’으로 이어졌고, ‘시대의 불운아’로 어렵게 식을 치러야 한다는 억울함은 고급스러운 예식으로 대신하겠다는 보상심리로 대체됐다. 실속을 챙기면서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려는 신랑신부의 행보도 꾸준했다. 웨딩플래너 이수진씨는 “3년 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것은 기성세대의 인식”이라며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면서 경제적 독립을 이룬 신랑신부가 주도권을 갖게 됨에 따라 결혼식은 엄숙하고 숭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달라진 웨딩 트렌드, 그 면면을 살펴봤다.
■작아도 고급스럽게
“더 작게, 더 특별하게, 더 세련되게.” 지난 3년간 웨딩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라고 한다. 식의 규모가 작아졌다고 예산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연예인 이효리·이상순, 원빈·이나영씨 커플이 쏘아 올린 초창기 스몰웨딩이 허례허식을 생략하고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하는 행사였다면, 최근의 스몰웨딩은 ‘프리미엄’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신라호텔과 워커힐호텔에서의 결혼식은 럭셔리 웨딩을 꿈꾸는 신혼부부의 로망이다. 주로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 자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특급 호텔 예식은 수천만원에서 1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가격에도 예약이 쉽지 않다. 호텔 측에 따르면 주요 시간대의 웨딩은 내년 상반기까지 모두 마감됐다. 다른 호텔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메이필드호텔 서울 관계자는 “현재 계약된 내년 웨딩 예약 매출이 작년 동기간 대비 67% 증가했다”며 “팬데믹 초기 취소율이 높아 이례적으로 ‘3개월 전’ 예약이 가능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미엄 스몰웨딩으로 유명한 강남의 한 웨딩홀은 일찌감치 내년 하반기까지 예약이 불가하다고 공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비부부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는 “상견례보다 식장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소수 정예의 하객들만 초대하는 자리인 만큼 식사와 답례품도 고급스러워졌다. 지난 6월 결혼식을 한 권성화씨는 고가의 와인을 하객들에게 선물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자리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웨딩 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고급 예식 브랜드 아펠가모 측은 “기존 성스럽고 엄숙하던 신부 대기실에 플랜테리어와 플라워 콘셉트의 인테리어를 접목해 차별화된 공간을 연출하는 것은 물론 품격 있는 연회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거리 두기가 해제되며 하객 규모는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강남의 한 호텔 관계자는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50~100명 내외의 인원으로 진행하는 스몰웨딩이 대세였지만 최근에는 비교적 인원이 많은 대규모 결혼식도 상담 건수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럭셔리에 포커스를 맞춘 점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실속 챙기고 감성 채우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실속을 챙긴 이들의 사연도 목격된다. 오는 11월 가족·지인들과 간소하게 결혼식을 치를 예정인 김민정씨는 “코로나19가 좋은 방패가 됐다”고 운을 뗐다. 그는 “돌이켜 보면 친하지도 않은데 휴일에 쉬지 못하고 예식장에 가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면 이를 표현할 방법은 충분히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부가 직접 쓴 손편지로 청첩장을 대신할 예정이다.
지난봄 결혼식을 생략하고 혼인신고를 한 조숙희씨는 “견적을 받을 때마다 그간의 손실을 채우려는 듯 늘어나는 업체의 옵션 비용에 ‘추가금 파티’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며 “마치 100만원을 10만원처럼 쓰게 되는 구조가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일부 예식장들은 꽃값, 식대 등의 비용을 대폭 인상했다. 드레스 투어비(피팅비)부터 ‘헬퍼 이모님’ 비용까지 챙기자면 끝도 없는 금액에 ‘기본만’을 외친 조씨는 아낀 결혼식 비용으로 장기 예금을 들었다.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낸 결혼식도 돋보인다. <우리가 꿈꾸는 웨딩>의 저자이자 비욘 더 드레스의 이영아 대표는 “팬데믹이라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타인과 구별되는 특별함, 새로운 시도와 창의성이 예식 전반에 발현되기 시작했다”며 “본인에게 우선순위가 있는 가치와 대상을 가려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결혼의 완성도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월 결혼 예정인 강현구·박찬미씨 커플은 두 사람의 취미를 반영한 결혼식을 기획하고 있다. 주례사와 축가, 사진 촬영으로 이어지는 뻔한 식순을 뒤로하고 한 편의 뮤지컬 무대 같은 공연형 예식을 위해 유튜브를 ‘정주행’ 중이다. 유학 시절 경험한 파티 같은 결혼식을 꿈꿨던 강씨는 “배우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며 캐스팅과 넘버 선곡 중인데 모든 순간이 즐겁다”며 “이 또한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비대면’의 상황을 기발하게 풀어낸 이도 있다.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020년 초 결혼식을 올린 최고운씨는 해외와 지방에 있어서 결혼식에 오지 못하는 지인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준비했다. 삼각대와 스마트폰이 촬영 장비의 전부였지만 유튜브 채널에 자동 저장된 영상은 ‘가공되지 않은’ 결혼식을 담은 기록이 됐다. 최씨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동료의 결혼식도 생중계했다. 그는 “호주에 살고 있는 후배의 친정 식구들이 코로나로 입국하지 못하는 상황에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의 ‘라이브’를 했다”며 “최근에는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된 거 혼수에 ‘플렉스’
코로나19가 장기전으로 이어지며 신혼집에 투자하는 커플들도 늘었다. 다른 예산을 절약해 구축 아파트를 매매하고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게 리모델링을 하거나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들로 집안을 채우는 식이다. 결혼 1년차 한우리씨는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고가의 턴테이블과 스피커를 들였다. 그는 “평소 같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가격”이라며 “추억을 남기기 위해 떠나는 신혼여행처럼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즐기며 추억을 만들고자 용기를 냈다”고 설명했다.
예물과 혼수에 드는 비용도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롯데웨딩멤버스’에 가입한 회원 수는 2018년과 2019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롯데웨딩멤버스는 예비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로 예물, 가전제품 등의 구매 금액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외출과 외식이 줄어들고 밀키트, 배달 음식 소비가 많아지면서 명품 그릇이나 커트러리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덴마크 왕실 브랜드로 유명한 ‘로얄코펜하겐’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한정 수량으로 판매된 S/S(봄·여름 시즌) 로얄 웨딩 에디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6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선보인 2021 F/W(가을·겨울 시즌) 로얄 웨딩 에디션은 조기 품절을 기록하기도 했다. 예비 신부인 유명현씨는 “오프라인 집들이 대신 온라인 집들이가 더 보편적인 이 시대에 불필요한 그릇 세트를 사는 것보다 하나를 사더라도 내 취향과 투자 가치가 있는 브랜드의 구성을 사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드메’ 예약은 앱·온라인 커뮤니티로
때때로 결혼식은 수고로움을 동반한다. 특히 ‘스드메’로 불리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은 예식 못지않게 예비부부들이 ‘품’을 들여야 하는 과정이다. 그 품을 줄여주는 이가 바로 웨딩 플래너이다. 그러나 예산과 스타일에 따라 논스톱 예약을 진행해주던 그들의 역할은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코로나19와 함께 대폭 축소됐다. 틈새를 파고든 것은 각종 앱과 온라인 커뮤니티다.
실사용자들의 후기로 신뢰도를 높인 ‘웨딩북’과 ‘아이웨딩’은 예비부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대표적인 앱이다. 두 앱은 웨딩 사업자와 고객을 중개하는 플랫폼으로, 결혼박람회가 취소되었던 팬데믹 시국에 특히 빛을 발했다. ‘웨딩북’의 경우 현재 청담동에 오프라인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앱에서 얻은 각종 정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아이웨딩’ 앱은 관행상 정확한 금액을 노출하지 않는 ‘스드메’ 견적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어 예비부부들의 호감을 샀다.
비슷한 시기 결혼하는 ‘동지’들로부터 정보와 위로를 얻고 싶은 이들이 찾는 곳은 온라인 커뮤니티다. 웨딩 업체가 운영 중인 ‘다이렉트 웨딩’의 경우 플래너의 비동행을 원칙으로 하는 대신 이곳에서 예약을 진행하거나 후기를 남길 시 적립되는 포인트를 추후 환급해 주는 방법으로 회원 수를 늘렸다.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준비 과정의 힘든 점을 토로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곳의 강점이다.
■‘신행’에 새 바람이 분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바이러스는 허니문 방향도 틀었다. 팬데믹 초반에는 감염 위험과 자가격리 등을 이유로 국내 여행지들이 후보에 올랐다. 제주도, 남해 등이 대표적이다. 2020년 가을 결혼한 국민우씨는 “어차피 신혼여행은 제주도라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한결 평화로웠다”며 “비슷한 시기 결혼한 지인들을 제주에서 만나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온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국내파’ 신혼부부를 위해 제주신라호텔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80년대 예식장 콘셉트로 ‘뉴트로’ 웨딩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위트 허니문 패키지’를 준비하기도 했다.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한 야외 촬영도 인기를 끌었다. 제주도에서 10년째 한복 전문 스냅 업체를 운영 중인 ‘아이엠 워리’ 최월 대표는 “코로나 이전에는 뻔한 스튜디오 사진을 지양하는 커플들이 주로 찾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신혼여행 온 김에 특별한 스냅 사진을 남겨두자는 이들의 예약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2022년을 기점으로는 미뤄뒀던 신혼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지각 허니문’ 커플과 ‘세컨드 허니문’을 준비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지난해 6월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정민우씨는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던 신혼부부 대다수가 마음속으로 ‘임시’라는 단서를 달았을 것”이라며 “며칠 전 하와이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고 전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 역시 “하와이나 괌 등 단골 허니문 패키지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며 “여행사마다 이를 반영한 기획 상품을 진행·예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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