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10년, 농사 안 짓고 곳간만 털었다"

신승근 2022. 8.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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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
이정미 전 대표 "우린 왜 폭망했나"
당원 느낄 패배감에 잠도 못 이뤄
"정의당 거의 무정부 상황 된 듯..
변화 향한 국민 기대 충족 못 시켜"
'진보정당 합치는 건 위험' 판단도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가 지난 23일 인천 연수구 한 카페에서 “당이 거의 무정부 상태가 된 것 같다”며 무거운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 한 카페에서 지난 23일 만난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저도 한동안 아무 얘기를 할 수가 없어 인터뷰를 거절해왔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의당이 창당 10년 만에 공멸할 것이라는 극단적 얘기를 듣는 상황입니다.

“당이 거의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 된 것 같아요. 당원들에게도 뭘 해도 잘 안될 것 같다는 패배감이 짙게 깔려 있어요. 창당 주역 중 한 사람, 10년 동안 당을 이끌어왔던 한 사람으로서 이런 현실에 밤잠이 안 올 정도예요. 너무 마음이 무거워요.”

지는 정당, 성장 없는 정당

―정의당이 지난 10년 동안 뭘 했길래 이렇게 폭망했나요?

“농사를 안 짓고 있는 곳간만 털어먹은 거죠. 정의당을 창당할 당시에 우리는 진보 집권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목표와 정치 프로세스,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개혁 연대를 이뤄내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진보적인 정권교체까지 만들어내겠다는 꿈이 있었죠. 지난 10년, 그 프로세스를 향해 노력해온 과정은 분명히 있었죠. 그런데 왜 교섭단체가 돼야 되는지, 정권을 주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 건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그 농사를 저는, 잘 못 지었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죠?

“지난 10년 고용시장 안에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해 복지를 하겠다고, 양적으로 어떻게 (복지를) 더 강화할 것인가에 상당히 매달려왔던 시기였다고 봐요. 이번 대선 슬로건도 복지 국가를 만들자는 얘기였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는 건 그런 수준으로 이 사회가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거예요. 전세계 주요 기업가들이 모여 ‘이제 더 이상 주주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그런 시대로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얘기할 정도로 자본주의 전체의 어떤 위기가 나타나고 있어요. 정의당은 어떤 답을 줄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를 갈고닦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있는 도끼만 가지고 계속 나무를 치다 보니까 도끼날이 다 망가진 거예요. 정의당이 어떻게 진화를 할 건지, 그걸 해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촛불집회 이후 정치적인 민주화, 그걸 적폐청산이라고 얘기할 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경제적인 민주화를 우리가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지, 정의당은 더 자기 목소리를 냈어야 되는데 그런 독자적인 목소리도 희미해졌거든요. 여기에 내부적인 문제가 터져도 어떤 위기 관리도 안 되는 모습을 반복해 보여주다 보니 유권자들은 정의당은 이제 스스로 성장하려는 모습도 안 보인다, 맨날 지는 정당, 맨날 (지지율) 3~4% 하는 정당한테 계속 투자하기 싫다고 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봐요.”

―이정미 대표님도 2017~2019년 당대표를 지냈고, 정의당 리더십을 구성한 핵심이었잖아요.

“도끼날을 벼르지 못한 책임이 저한테도 있는 거예요.”

―‘민주당 의존 전략’ 때문에 폭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그렇게 얘기하면 답이 간단하잖아요. 그다음부터 민주당하고는 그렇게 안 하면 되니까. 국민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국민의힘하고도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정의당이 민주당하고 뭘 같이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거예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단식까지 해 관철했는데 성과를 못 냈어요. 잘못된 길이었나요?

“정의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었던 게 잘못된 일은 아니죠. 정말 중요한 일이었는데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의당의 힘이 너무 약했던 거죠. 민주당 욕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요. 우리가 그 합의를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하고, 그런 꼼수를 써도 되는 어떤 지경까지 갔는데 국민들의 저항이나 위성정당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고, 그건 이번에는 정의당한테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는 국민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던, 결국 우리의 힘이 문제죠. 조국 논란엔 검찰 개혁이 우선돼야 하냐, 아니면 소위 민주화 세력이 공정성 자체를 해치면서까지 기득권을 유지해나가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경종을 울려야 되냐? 이 두가지가 경합을 하고 있었는데 정의당이 제 목소리를 못 내니까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정의당을 충분히 키워서 거대 양당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만들어줘야 되겠다라고 하는 이 명분 자체도 약화한 거죠.”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어쩔 수 없이 만드니 정의당도 함께하자, 정의당에 충분한 의석을 배려하겠다, 이런 제안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진실이 뭔가요?

“그렇게 제안을 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위성정당으로 살아남은 당은 시대전환 1석, 기본소득당 1석이고, 나머지는 민주당으로 다 간 거예요. 결국 누구를 위한 위성정당이었냐는 이 결과가 증명하는 것이죠.”

“진보 정치 세력, 무엇을 어떻게 할까

―민주당 제안에 응했다면 의석 확보에 더 성과를 내지 않았겠냐고 얘기하는 이도 있어요?

“그랬다면 정의당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민주당으로 들어가지 왜 그렇게 해요.”

―진보 원로인 권영길,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 등은 진보정당이 하나 되려는 노력 없이 다음 총선에 나서면 정의당이든 어느 진보정당이든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던데요.

“지금은 각각의 진보정당들이 좀 더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만드는 자강의 노력을 더 철저히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정의당이 내부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강화할지에 대한 노력 없이 진보정당을 다시 합치자고 하는 건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꼭 하나의 정당이 아니라도 어떤 선거 시기에 굉장히 유의미한 선거 연대를 할 수 있어요. 그런 노력은 끝없이 해나가야 되겠죠.”

이정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진보정의당 최고위원
-제20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정의당 대표
-정의당 총선기획단장(2019년)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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