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아편 흡입 방치 악독한 정책..만주국 셋 중 한 명 중독

2022. 8. 27. 0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41)
만주국 산업부 차장 시절의 기시 노부스케와 관동군 참모장 도죠 히데키. 1937년 봄, 만주국 수도 신징의 관동군 사령부. [사진 김명호]
일본 관동군과 극우 정객들은 일본을 만주로 옮길 생각이었다. 1932년부터 45년까지 14년간 푸이(溥儀·부의)를 전면에 내세워 만주국을 간접 통치했다. 중국인이 맡았던 부장은 허깨비였다. 실권은 차관 격인 일본인 차장이 쥐고 있었다. 수도 신징(新京)은 만주 통치의 상징이었다. 도쿄보다 쾌적한 생활공간을 마련하겠다며 거금을 쏟아부었다. 한 예로 도쿄의 공원 점유율이 28%였던 시절에 신징은 72%였다. 하수도 시설도 완벽했다. 폭우가 쏟아져도 물 고이는 곳이 없었다. 당시 ‘북방의 진주’라 불리던 다롄(大連)의 남만주철도(滿鐵) 부속병원은 어마어마했다. 수세식 화장실과 중앙 난방시설 시설을 완비한 동양 최대 규모의 의료기관이었다. 모든 자금의 출처는 아편이었다.

만주국 선포 8개월 후 아편조례 발표

만철 철로 주변을 순찰하는 관동군. [사진 김명호]
청나라 말기만 해도 만주(당시는 동북3성)의 앵속(罌粟) 재배 면적은 대단치 않았다. 북양군벌 통치 기간 내전 경비 조달 위해 재배를 종용하는 군벌이 간혹 있었다. 동북 군벌 장쭤린(張作霖·장작림)도 주제총국(籌濟總局)을 신설, 앵속 재배를 관리하고 아편에 세금을 부과했지만 오래 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세무국장이 거둬들인 세금을 들고 미국으로 도망갔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후 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저분한 돈이라도 전쟁터에서 탕진하는 것이 분했다. 고아원 인수해 화교 고아들을 돌보겠다.” 장이 경호 대장을 불렀다. “샌프란시스콘지 뭔지에 가서 세무국장의 행적을 관찰해라. 하는 일 없이 흥청거리면 귀신도 모르게 처리해라. 고아원 차렸으면 그냥 돌아와라.” 귀국한 경호 대장의 보고를 받은 장은 기분이 좋았다. 이왕 할 거면 번듯하게 하라며 황금 3000냥을 보내줬다. 아편에 징수하던 세금도 없애버렸다. 재배도 소비자의 수요에 맞을 정도만 허락했다. 중국 내지 반출도 금지했다.

일제는 식민지 대만에서 체득한 경험이 있었다. 아편 흡입을 방치하자 중독자가 늘어났다. 대만 전역에 폐인(廢人)이 속출하자 근절을 촉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단속하자니 사회혼란이 올까 두려웠다. 전매제도를 실시해 재미를 봤다. 만주국도 대만을 모방했다. 건강을 위해 덕정을 베푼다며 큰소리쳤다. 뒤로는 달랐다. 악독한 아편 정책을 폈다. 만주국 선포 8개월 후인 1932년 11월, 아편조례를 발표했다. “전매공서(專賣公署)를 설립하고 32곳에 분서(分署)를 둔다. 별도로 2개의 공사(公司)를 설립해 아편의 생산과 가공, 판매를 관리한다. 생산된 아편은 정부의 허가를 득한 도매상에 정가로 공급한다. 도매상은 허가증을 소지한 자영업자에게 정해진 가격으로 아편을 판매한다. 자영업자는 등기된 사람에 한해 아편을 팔 수 있다. 앵속 재배 지역은 정부가 정한다. 아편은 인체를 손상하는 독극물이다. 흡독자(吸毒子)와 앵속 재배면적을 감소시켜 아편을 근절시키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다.”

아편으로 번 돈, 관동군 군비 확장 등 투입

만주의 조선족은 모국어와 고유의 풍속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유지했다. 어디를 가도 애 어른 할 것 없이 티가 났다. [사진 김명호]
‘전매공서’는 아편 흡입자로 등기된 고객에게 흡연증(吸煙證)을 발부했다. 흡연증은 호신부였다. 일본 특무기관이나 만주국 경찰은 아편 흡입자를 폐인 취급했다. 반항 정신이 손톱만큼도 없는, 진정한 순민(順民)이라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만주 도처에 앵속화(양귀비)가 만발하고, 도처에 흡연관(吸煙館)이 문을 열었다. 만주국의 수입도 금고가 터질 정도였다. 2년 만에 중독자나 다름없는 흡연증 소지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흡연증 없는 중독자는 더 많았다. 한동안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안에 내 스승이 있다는 고사성어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가 세 사람 중 한 명은 아편 중독자란 의미로 둔갑할 정도였다.

1936년, 일본 쇼와(昭和)시대의 요물(妖物)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만주국 산업부 차장으로 부임했다. 기시는 관동군 참모장 도죠 히데키(東條英機)의 보호를 받았다. 앵속 재배면적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중국 내지 방출을 묵인하고 홍콩을 통해 수출도 했다. 모르핀과 헤로인이 범람해도 단속은커녕 판매를 독려했다. 중동지역에서 유입된 다량의 대마(大麻)를 만주 전역과 몽골에 배포한 장본인도 기시였다. 독극물 판매로 굴러들어온 엄청난 자금은 관동군의 군비 확장과 기밀비, ‘만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투입했다.

일본은 장백산에서 벌목한 목재를 뗏목으로 만들어 압록강과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으로 보냈다. [사진 김명호]
국민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발끈했다. 민족 영웅 린쩌쉬(林則徐·임칙서)의 ‘영국 아편 소각 기념식’에 참석해 울분을 터뜨렸다. “왜구들의 독화정책(毒化政策)은 우리 동포의 위대한 저항정신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적개심만 가중할 뿐이다. 적들은 모르핀, 금단(金丹), 백환(白丸) 등 각종 독품(毒品)으로 민간의 주머니를 약탈하고 외환을 탈취해서 군용물자를 매입했다. 아름다운 동북의 삼림을 벌겋게 만들고 이상한 꽃을 만발케 해 동포들을 유혹하고 역겨운 연기가 동북 하늘을 자욱하게 만들었다. 저들은 호수에 빠진 물고기나 다름없다. 빠져나오려 기를 쓰다 보면 국내 경제가 파탄하고 말라버린 호수의 물고기 될 날이 머지않았다. 동포들은 분발하기 바란다.”

만주의 200만명 조선족은 아편 흡입자가 많지 않았다. 강원도 금화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부모 따라 랴오둥(遼東)성 환인현(桓仁縣)으로 이주한 경제학자의 두툼한 회고록 어디에도 아편 얘기는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회상이 인상적이기에 소개한다. “조선인 학교는 조선어를 금지했다. 교사들도 일본어만 사용했다. 어쩌다 조선말 쓰면 국어사용 네 글자가 선명한 목판 들고 벌을 섰다. 여기서 국어는 일본어를 의미했다. 교문만 나서면 조선어로 학교 향해 욕을 퍼부었다. 조선인 교사들도 웃기만 하고 모른 체했다. 부모님과 형수는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 했다.” 〈계속〉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