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기념탑도 '일제식'..곳곳에 남은 일본 잔재

임상범 기자 입력 2022. 8. 26. 21:12 수정 2022. 8. 2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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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라져야 할 일제 시대의 흔적이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학교에도 그런 데가 많다고 저희가 어제(25일) 전해드렸었는데 독립운동가 기념물도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게 많습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더욱 욕되게 하는 이런 일제식 기념물들부터 서둘러 바로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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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제는 사라져야 할 일제 시대의 흔적이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학교에도 그런 데가 많다고 저희가 어제(25일) 전해드렸었는데 독립운동가 기념물도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게 많습니다.

임상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자 그가 3·1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

언덕을 잠시 오르면 광복 직후 1947년에 만든 탑이 하나 서 있습니다.

이름하여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탑'.
 
만세운동의 개요와 주동자 이름, 열사의 순국 과정까지, 위당 정인보 선생이 비문을 지었습니다.


6층 기단 위 정사각 돌기둥에 끝을 사다리꼴로 처리한 이른바 '상첨비'입니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이었던 손병희 선생이 잠들어 있는 서울 우의동.

묘지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탑도 사각기둥에 끝이 뾰족한 동일한 형식입니다.
 
현충원 등 국립묘지나 추모 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묘비나 기념탑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첨비 형태의 기념물들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전사한 일본 군인들의 묘지 사진.

군국주의로 치닫던 일제가 군대 묘비로 채택했던 게 바로 상첨비였습니다.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일본 해군 같은 경우에 1879년인가 그때 보면 이 관련 규정이 처음 등장하는데,]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 실장 : 독립운동과 관련된 비석들, 많은 충혼 비석들도 일본 양식을 그대로 베낀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신문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친일파들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한때 유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여기 보시면 이게 약간 새로운 형태잖아요. 이게 1910년대인데도 보면은 이런 양식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미 그런 상태인 거죠.]
  
광복 77년.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더욱 욕되게 하는 이런 일제식 기념물들부터 서둘러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영상취재 : 이재영·신동환, 작가 : 이세미, 영상편집 : 김인선)

임상범 기자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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