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험로에 선 철강산업 포스코

2022. 8. 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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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1위 풍력 개발회사 오스테드, 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청
압연공정을 마친 제품들이 제철소 야적장에 놓여 있다. 아르셀로미탈 홈페이지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에 속한 업체들에게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확대를 요구하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가 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은 2020년 7월 2030년까지 공급망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후 협력업체들에게 애플 제품 생산에 재생에너지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있다. BMW, 폭스바겐, GM, 소니 등도 공급망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하고 협력업체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독려 중이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세계 해상풍력발전 1위 업체 오스테드를 들 수 있다. 오스테드는 지난 8월 10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에너지 기업 최초로 오는 2025년까지 오스테드 공급망에 속한 모든 기업의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오스테드는 2020년 4월 ‘공급망 탈탄소화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공급망 전체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해 업계 최초로 2040년까지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3년 내 공급망 재생에너지 100% 사용”

오스테드는 전략적 협력사들에 적용됐던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 100% 사용 목표를 오스테드의 모든 협력사로 확대했다. 오스테드는 “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서 “2025년까지 모든 협력사가 오스테드에 제품 또는 서비스를 공급할 때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스테드는 공급망 내 모든 협력사가 재생에너지 전기설비 확보에 투자하거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거나, 재생에너지공급 인증서(REC) 구매 등을 통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충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스테드는 공급망 내의 모든 협력사가 전방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이들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오는 9월 재생에너지 전기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예정이다.

오스테드 측은 재생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지역 상황을 고려한 지원책이 있는지를 묻는 주간경향의 질의에 “자체 발전 등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를 위한 다른 방안들에 중점을 둘 것이며, 또한 해당 공급사들이 필요한 해법이 개발되기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를 권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자체 발전, 전력 구매를 시도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필요한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를 정부에 요구하길 희망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오스테드 측은 “모든 협력사가 탄소 순배출 제로를 위한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이번 발표는 모든 협력사가 사용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를 권장·장려한다는 점이며, 의무적인 계약 요건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LS전선, CS윈드, 현대산업스틸 등 국내 기업들은 오스테드에 해저케이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등을 납품하고 있다. 납품 규모는 2013년 이후 현재까지 2조3000억원이 넘는다. 오스테드와 국내 기업의 협업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삼강엠앤티, 현대산업스틸은 오스테드가 대만의 TSMC와 PPA를 체결해 대만 창화 해안에서 진행하는 해상풍력 사업에 재킷형 구조물을 제공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5월 오스테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오스테드가 인천 앞바다에서 진행하는 1.6GW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오스테드는 풍력 터빈, 기초 구조물, 변전소 및 케이블 제조를 가장 탄소집약적인 부분으로 지목한다. 오스테드의 재생에너지 100% 사용 정책은 의무가 아닌 기대 혹은 권장 사항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이 이를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측은 “기대사항이라고는 하지만 오스테드를 비롯해 RE100 철강재를 요청하는 고객사들이 늘고 있어서, RE100 제품 생산을 위한 REC 확보 등 여러 수단을 동시에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 실장은 “풍력발전이 커가는 시장이라 선도업체에 납품한 실적은 중요한 레퍼런스(참고자료)가 된다”면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생산비용이 높아져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납품하는 게 중요할 텐데 그런 점에서 가격보다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원활히 확보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도 탄소중립 계획 추진

국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에 따라 배출권을 할당받아 시장에서 부족하거나 남는 배출권을 거래하는 방식이 과거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 사업장의 대응법이었다면, 현재는 정부의 정책 변화보다 글로벌 수요 기업들의 감축 압박이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됐다. 이재윤 실장은 “철강업계를 만나면 올해 들어 고객사의 압박이 눈에 띄게 거세졌다고 말한다”면서 “특히 ‘리스폰서블 스틸(Responsible Steel)’, ‘넷제로 스틸(Net zero steel)’ 등의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중심으로 철강업체, 광산업체, 완성차업계, 금융업체의 연합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탄소 철강재만 사용하자는 연합체가 전 세계적으로 여럿 등장하면서 국내외 철강업체들은 탄소중립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어려운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놓인 것이다. 자연상태의 철광석은 대부분 산소와 결합된 산화철이다. 철 자체가 산소와 친화적이라 자연상태에서는 녹슨 상태로 존재한다. 철강제품을 만들려면 산소를 떼어내 순수한 철의 형태로 돌려놔야 하는데 이를 환원과정이라고 한다. 이때 석탄의 탄소를 사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반응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1500℃ 이상의 열이 발생(용융반응)한다. 그 결과 순수한 쇳물과 함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렇게 철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2019년 기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의 8%에 달한다. 한국의 경우 철강산업의 비중이 높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15%를 차지한다.

탄소중립이 각국 정부는 물론 기업의 화두가 되면서 아르셀로미탈, 사브 등 글로벌 철강사들은 앞다퉈 고로의 전기로(고철 사용) 전환, 수소환원제철 기술 도입 등 저탄소 철강으로의 이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세계 6위의 철강제조사인 포스코는 하이렉스(HyREX)로 불리는 자체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하이렉스를 2030년까지 개발·검증하고 2050년까지 포항·광양 제철소의 고로 설비를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2위 업체인 현대제철은 신규 전기로인 하이아크(Hy-Arc)에 이어 고유의 수소 기반 철강 생산체제인 하이큐브(Hy-Cube)를 개발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공정에서는 환원반응과 용융반응이 고로가 아닌 ‘환원로’와 ‘전기로’라는 두 설비에서 각각 분리돼 나타난다. 먼저 환원로에서 철광석을 고온으로 가열된 수소와 접촉시켜 고체 철을 만드는 데 이 방식으로 제조된 철을 직접환원철(DRI)이라고 부른다. 이후 이 DRI를 전기로에 넣어 녹이면 쇳물이 생산된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100% 수소만 사용해 DRI를 만드는 환원로를 상용화한 곳은 없다. 추후 수소 100% 사용을 목표로 한다면, 환원로에 사용할 수소와 전기로에 공급할 재생에너지 전기 확보가 관건이 된다. 탄소중립의 측면에서 수소환원제철이 의미가 있으려면 수소 역시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그린수소여야 한다.

해외로 생산기지 옮길 수도

전기로를 이용한 저탄소 철강 생산에도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 김근하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고로에서 수소환원제철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의 기술로 고철을 활용하는 전기로 방식을 택할 경우 양질의 고철을 확보하고, 고로를 전기로로 대체하며 증가할 전력 수요를 충당해야 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면서 “저탄소 철강을 만든다면 그 전력 역시 청정에너지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한 한국사회적책임투자포럼 책임연구원은 “넷제로를 달성하려면 쇳물을 녹일 때는 전기를 써서 녹이고, 환원하는 건 수소를 이용하는 두 루트로 가야 하는데, 전기로로 전환한다고 쳐도 재생에너지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 공급이 충분치 않고 일반 전력에 비해 비싸 철강회사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철강제조사들이 생산거점을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곳으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 이미 포스코는 올해 3월 호주 자원개발 기업인 핸콕과 함께 저탄소 철강원료 생산 추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소를 활용한 저탄소 직접환원철 제조 공장 신설을 검토하고, 환원제로 쓰는 수소도 호주의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만든다는 계획이다. 비단 철강산업만이 아니라 RE100을 요구받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흐름을 막으려면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철강 같은 기간산업이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태한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사회기반시설을 잘 갖춰주고, 에너지 비용을 저렴하게 유지한 게 국내 철강사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면서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경쟁력은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싸게 빨리,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인데 지금은 해외에 비해 턱없이 뒤처져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저탄소 철강 수요처 발굴도 중요하다. 저탄소 철강은 일반 철강제품보다 약 30%는 더 비쌀 것으로 예상된다. 저탄소 철강 시장을 열어줄 정부의 공공조달이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17년부터 청정구매법을 시행해 건축용 철강, 판유리 등 지정된 대상 품목에 한해 허용 탄소배출량을 초과하는 제품의 입찰을 금지하고 있다. 제조사는 환경성적표지 인증서도 제출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2월 청정구매법을 연방정부로 확대하는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으며, 범국가 차원의 저탄소 건축자재 시장 형성과 자재 구매 촉진을 추진 중이다. 김근하 연구원은 “미국, 유럽 등에서 청정구매법 및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통해 발 빠르게 탄소집약도가 높은 철강재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저탄소 철강제품이 빠르게 상용화될 수 있게 공공기관의 녹색 제품 의무구매제도 등 우리의 공공조달 및 구매 관련 정책을 시류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BMW, 볼보, 벤츠 등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이 저탄소·무탄소 철강제품 확보를 위해 철강회사·에너지 회사들과 연합체를 구성하는 흐름도 주시해야 한다. 김태한 책임연구원은 “철강은 BTB(기업 대 기업) 사업이라 원가가 훨씬 높은 저탄소 철강제품을 납품가에 반영해줄 고객사의 명확한 비전이 나와야 한다”면서 “전기차에 보조금을 줄 때 저탄소 철강제품 사용에 따라 차등을 두는 정책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제철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저탄소 철강 확보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세부 일정을 공개하진 않았다. 이재윤 실장은 “해외는 철강산업을 둘러싼 생태계 주요 플레이어가 합쳐져 움직이는 경향이 있지만 우린 아직 그 정도 연합체는 형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제철사들이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도 설비를 유럽과 일본의 플랜트 회사에서 사오는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설비 자체를 만드는 적극적 대응법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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