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고수되기] 손끝서 피어난 무지갯빛 '아트'..'자개공예' 화려한 동양화 한폭이~
박준하 기자의 하루만에 고수되기 (9) 자개공예
3~4시간이면 손거울·장신구 만들 수 있어
꽃·소나무 등 무늬 골라 나만의 작품 구상
집게로 조심스레 붙이며 ‘초집중모드’ 돌입
실수 연발에도 명인의 손길 닿으니 ‘감쪽’
보는 각도 따라 각양각색으로 빛나 매력적
한국전통공예 관심 많은 외국인에도 인기

1970년대 이전 최고의 혼수용품은 ‘자개장롱’이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할머니방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자개장이다. 검은색 장롱에 십장생·공작·원앙 등을 화려한 무늬로 수놓은 자개공예는 예술미의 극치이자 우리 눈에 익숙한 풍경이었다. 신혼부부 ‘필수템’이던 자개장은 1990년대 아파트 문화가 정착하고 서구형 가전제품들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옛것’이 됐다. 자칫 사라질 뻔했던 자개공예가 최근 ‘뉴트로(Newtro·새로운 복고)’ 열풍에 힘입어 다시 주목받는다. 이번엔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에서 3대째 전통공예를 이어가는 이영옥 전통자개명장(63)을 만나 하루 만에 고수되기에 도전해봤다.
“하루 만에 고수가 된다고? 하하, 좋아요. 빠르고 눈에 보이는 걸 좋아하는 가상화폐 시대에 자개공예가 눈에 차려나…. 자개공예 고수, 만들어줄게요.”
이 명장과 전화통화 후 그의 작업실이자 체험장이 있는 북촌 진주쉘을 찾아갔다. 이 명장은 전국에 몇 안되는 자개명장이다. 그는 조부모님 때부터 자개공예 기술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자개를 만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호황과 불황, 경기변동 속에서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티며 공장과 작업실을 운영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진주쉘 1층에는 장롱·소반·경대(화장대) 등 가구부터 휴대전화·명함 케이스 같은 일상 소품까지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자개공예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며 반짝인다. 이같은 공예품을 나전칠기(螺鈿漆器)라고 부른다. 나전칠기란 조개류 껍데기를 잘라 모양 내어 붙이고 옻칠을 한 기물을 뜻한다. 자개는 공예용 조개류 껍데기를 부르는 순우리말이다.

자개는 조개류의 겉이나 안쪽 빛나는 껍데기를 채취해 만든다. 전복을 먹을 때 껍데기 안쪽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자개는 이 껍데기를 얇게 저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전복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복 표면이 울퉁불퉁하면 깎아내기 어려워 쓸 수 없다. 어느 정도 면이 평평해야 공예용으로 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경남 통영에서 자개용으로 쓰이는 전복이 많이 생산된다. 전복 100㎏에 자개는 고작 7㎏ 얻을 수 있다. 비싼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복만으로는 채취량이 적고 무늬가 다양하지 않아서 외국산 자개도 섞어 써요. 외국산 조개는 안쪽만 아니라 겉면을 깎아낼 수 있는 것도 있어요. 작은 공예품 하나에도 최소 5∼6개국에서 온 조개류 껍데기가 쓰이죠.”

체험을 위해 지하 1층 체험장으로 내려갔다. 체험장 바닥, 주변 장식 할 것 없이 사방이 자개다. 자개공예를 본격적으로 배우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하지만 하루 체험은 3∼4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손거울·소반·장신구를 만들 수 있으며, 이날은 고급 명함보관함을 만들기로 했다. 이미 공예체험을 위해 찾아온 외국인 손님이 손거울을 만들고 있었다.
“자개공예는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아요. 영롱하게 반짝이는 자개가 외국인 눈에도 예쁜 모양이에요. 또 한국 전통공예를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인 것 같아요.”

이 명장은 자개를 박을 명함보관함 두개와 자개 조각 수백개를 꺼내 왔다. 명함보관함을 두개 꺼낸 데도 이유가 있다. 한개에는 도안을 미리 짜보고 풀을 바른 명함보관함에 자개를 도안대로 부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장은 도안을 그려 종이에 자개를 부착해 이를 떼어내며 작품을 만들지만 초보자는 직접 자개를 올려보며 도안을 짜는 게 편하다. 명함보관함은 뚜껑 면과 네 옆면, 모두 다섯면을 자개로 채워야 한다.
무수한 자개를 보니 고민이 됐다. 자개는 꽃이나 잎사귀, 가지 모양을 낸 것도 있고 얇은 실 모양도 있다. 구름 같아 보이던 것이 뒤집으면 언덕 모양인 자개도 있다. 이 명장이 옆에서 작은 소품은 작은 자개로 꾸며야 예쁘다고 귀띔해준다. 한참 쳐다보니 멋진 소나무 잎 모양이 눈에 띄어서 뚜껑을 소나무로 장식하기로 했다. 소나무에 어울리는 가지 모양, 바위 모양 자개도 찾아냈다. 자개는 얇아서 손으로 마구 만지면 끊어질 수 있다. 집게를 사용해서 명함보관함 뚜껑에 살살 얹는다.
“손이 자개부 하기 딱 좋겠다.” “자개부가 뭐죠?” “자개공예 하는 사람을 자개부라고 하죠. 손가락이 얇고 섬세하고 집중력이 있으면 좋지. 한번 작업하면 아주 오랜 시간 집중해야 하거든요.”
자개를 부착하는 데는 여러 기법이 있다. 우선 ‘줄음질’은 자개를 줄질해서 특정 모양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다. ‘끊음질’은 주로 19세기에 사용한 기법으로 자개를 실처럼 오려내 쓰는 것이다. ‘타발법(타찰법)’은 두께가 있는 자개에 균열을 줘서 평평하게 부착하는 방식이다.

준비가 되면 명함보관함에 풀을 바른다. 천연 재료로 만든 풀은 물처럼 묽다. 묽은 풀을 바른 면으로 조심스럽게 자개를 옮긴다. 어떤 자개는 옮기기도 쉽지 않다. 두께가 얇아 집게로 잘 집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땐 손가락에 물을 살짝 발라 자개를 붙여 옮기면 된다. 그러다 기어코 자개실을 끊어먹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 명장이 금세 자개를 고쳐 붙여준다. “자개는 끊겨도 괜찮아요. 봐봐, 이렇게 이어 붙이면 감쪽같잖아요?”
명함보관함은 소나무와 앵두나무·학·모란·나비로 채워져갔다. 각양각색 자개가 각 면에서 화려하게 피어난다. 물풀인데도 마르고 나니 고정력이 대단했다. 마무리는 이를 잘 말린 후 칠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콩기름을 바르기도 한다. 자개색을 살리기 위해서다. 칠까지 완성한 후 만져보니 우둘투둘하게 자개 촉감이 느껴진다. 조각들이 이룬 모양이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동양화가 따로 없죠? 손으로 계속 만져도 좋아요. 자개공예품들은 손때가 묻어도 아름답게 빛이 나거든요. 가끔은 저 역시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어요. 이런 아름다운 전통공예를 지킬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죠. 명맥이 끊기지 않고 오랜 시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박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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