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아진 지갑, 업체 범람에 피로감..구독경제 한계왔나

성유진 기자 2022. 8. 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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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넷플릭스의 최신작 '그레이맨' 간판이 걸려 있다. 넷플릭스처럼 일정 비용을 받고 주기적으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구독 경제 사업이 최근 미국에서 뚜렷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디지털 구독 비즈니스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넷플릭스는 지난 2분기 전 세계에서 97만명의 가입자를 잃었다. 이 가운데 북미 지역에서 떠난 가입자만 130만명. 전체적으로 성장세가 주춤하는 가운데 미국을 포함한 북미 지역에서 특히 대규모 이탈이 일어난 것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예상보다는) 덜 나쁜 결과이지만 100만명쯤의 구독자를 잃고서 이를 ‘성공’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일정액을 내고 주기적으로 물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동영상·음악 같은 콘텐츠부터 의류·화장품·식품·자동차 같은 상품까지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되레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지불·결제 분야 전문 매체 페이먼츠닷컴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품 구독 서비스 이용자의 평균 이용 개수는 작년 2월 2.5개에서 10월 5개까지 증가했다가 올 5월엔 3.9개로 줄었다. 업종별로 비슷비슷한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는 데다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구독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어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상품 구독 서비스 이용자의 평균 이용 건수

◇주춤하는 구독 서비스 시장

대표적인 구독형 서비스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는 특히 북미 지역에서 구독자 정체 또는 감소세가 뚜렷하다. HBO맥스와 디스커버리플러스를 운영하는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2분기 북미 가입자가 30만명 줄었다. 월트디즈니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 역시 북미 지역 가입자가 2분기 10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조사 업체 안테나에 따르면 지난 1월 넷플릭스에 가입해 6개월 후에도 구독하고 있는 비율은 55%로 2년 전(71%)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스트리밍 업체들이 구독자를 붙잡아두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자상거래 기반의 상품 구독 서비스도 인기가 식었다. 소비자가 선택한 주기에 맞춰 다양한 옷을 골라 보내주는 업체 ‘스티치픽스’는 최근 고객 수가 줄면서 전체 직원의 15%가량인 330명을 해고했다. 미국 의류 업체 노드스트롬도 2014년 인수했던 구독형 의류 추천 서비스 ‘트렁크 클럽’을 지난 5월 종료했다. 서비스 이용자가 줄면서 더는 사업을 유지할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CNBC는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의류 구독 서비스는 한때 뜨거운 시장이었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이 점차 시들고 있다”고 전했다. 식재료를 원하는 주기에 맞춰 보내주는 ‘블루 에이프런’도 지난 2분기 고객 수가 34만9000명으로 1년 전(37만5000명)보다 약 7% 줄었다.

시장조사 업체 인사이더 인텔리전스는 미국 디지털 구독 이용자 증가율이 재작년 12.8%, 작년 10.2%에서 올해 3.3%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업체는 “이는 구독 서비스 회사가 기존 구독자로부터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결국 소비자가 구독 지출 한도에 도달해 장기적으로 보면 매출 성장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의류 구독 서비스 업체 스티치픽스의 홈페이지. 이 회사는 최근 구독자 감소로 경영난을 겪으며 전체 직원의 15%를 감원했다. /스티치픽스

◇업체 난립에 물가 상승 겹쳐

온라인 기반 구독 서비스 시장이 주춤해진 원인 중 하나는 물가 상승이다. 시장조사 업체 앰피어 애널리시스가 미국 인터넷 사용자 300만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넷플릭스를 떠난 구독자의 87%는 이후 2주 안에 다른 OTT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았다. 또 연소득 1만5000달러(약 20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과 1만5000~3만달러(약 2000만~4000만원) 미만 계층에서는 지난 1년간 넷플릭스 구독 비율이 각각 7.6%, 5% 감소한 반면, 나머지 소득 계층에선 큰 변동이 없었다.

지난 3월 페이먼츠닷컴 조사에서도 최근 1년 동안 상품 구독 서비스를 취소한 응답자의 54.5%가 주된 이유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를 꼽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넷플릭스 가입자 감소는 경쟁 업체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 지갑이 얇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몇 년간 구독 서비스가 과하게 세분화되고 온갖 산업으로 확산하면서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OTT 시장에는 애플TV플러스·디즈니플러스(2019년), HBO맥스·피콕(2020년) 등 최근 3년간 4개 업체가 가세했다. 식재료 구독 서비스 시장에서도 블루에이프런·홈셰프 등 30개 이상의 업체가 난립 중이다. 구독 서비스 대상이 되는 상품도 화장품·반려동물용품·밀키트부터 향수·와인·식물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커니의 그레그 포털 수석 파트너는 “구독 서비스 시장 초기엔 소비자에게 ‘시도해 보라’고 권유만 해도 됐지만 이젠 특정 서비스를 키우기 위해선 다른 서비스를 버리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예전엔 무료였던 서비스까지 유료 구독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도 구독 모델에 대한 비호감을 키웠다. 예컨대 구글은 작년 6월 용량 제한 없이 사진·영상을 저장할 수 있었던 무료 구글포토 서비스를 저장 용량이 15GB(기가바이트)를 넘으면 월 단위로 돈을 내야 하는 구독 서비스로 바꿨다. 소셜미디어 플랫폼 스냅챗은 지난 6월 신규 기능을 내놓으며 매달 3.99달러를 내도록 했다. 심지어 BMW 같은 자동차 회사들도 일부 국가에서 열선 시트 같은 옵션을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BMW가 벨기에에서 출시한 차량용 옵션 구독 서비스. 주행 보조 기능에 35유로,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225유로 등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BMW

‘멤버십 이코노미’ 저자인 로비 켈먼 백스터는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에 “도착한 구독 물품이 집에 그대로 쌓이는 경험, 교묘하게 유료 구독을 유도하거나 취소를 어렵게 해놓는 기업들, 소유나 개별 결제가 아닌 구독만 가능한 서비스 같은 요인들이 구독 모델 전체에 장벽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가입자 증가세가 주춤해지자 기업들은 저마다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반려동물용품 정기 구독 업체 바크박스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월마트 같은 소매 업체를 통한 일반 판매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일부 업체는 취소 대신 일시적으로 구독을 정지할 수 있는 기능을 넣고 있다.

OTT 업체들은 광고가 포함된 저가 요금제 도입 계획을 내놨다. 디즈니플러스는 12월 일반 요금제보다 3달러 저렴한 광고 요금제를 출시할 예정이며, 넷플릭스도 광고 기반 요금제를 준비하고 있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도 광고 삽입형 무료 서비스 개발을 추진한다고 최근 밝혔다. 월마트가 자사 멤버십 이용자에게 OTT 서비스인 파라마운트플러스를 제공하기로 하는 등 구독 서비스 간 결합도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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