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국민대 교수회는 왜 김건희 논문 검증을 반대했나
최근 국민대 교수회가 투표를 통해 김건희 씨 논문의 표절 검증에 반대하자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매우 놀란 것 같다. 국민대를 '궁민대'나 '유지(Yuji)대'로 바꾸라며 조롱하고 교수 회장인 필자가 검증을 막았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많다. 국민대 교수회가 정말 학문적 양심을 버리고 권력에 아부하려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교수들의 집합적 의사결정 과정에는 누구도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소위 '학문적 양심을 사랑하는 교수'들이나 총장, 혹은 보직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투표가 진행되는 중 일부 보직교수들의 검증 반대 의견을 보냈고 교수들이 이것을 압력으로 느꼈을 것이라는 주장은 단언컨대 교수사회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대학사회에서 누가 압력을 가하려 한다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민대 교수들의 연구윤리 기준이 다른 학교와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문제의 김건희 씨 논문은 2009년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박사학위 논문과 2008년 작성된 세 편의 학회지 논문이다. 그 중 특히 사회의 공분을 산 소위 '유지(Yuji)' 논문은 특정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이었다. 김건희 씨 논문의 검증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첫째, 학위 논문의 연구윤리 문제가 발생하면 지도교수와 심사위원, 그리고 대학의 책임이다. 그런데 김건희 씨 논문은 처음부터 정부(교육부)가 검증을 강력히 요구했고, 학칙에 따라 검증시효가 지나 검증할 수 없다는 학교의 결정을 무시하고 검증을 명령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더욱이 학교와 상관없는 학회지 논문까지 검증하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월권이요, 직권 남용이다.
둘째, 테크노디자인이라는 영역의 특수성이다. 특수 영역의 논문은 연구윤리의 기준도 다를 수 있다. 짐작컨대 교수회원들은 전공이 다른 교수들이 디자인이나 예술 분야의 논문을 검증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 같다.
셋째, 백보를 양보해 표절이 심각하다 해도 교수회가 직접 나서서 특정 전공 학위논문의 연구 진실성을 검증하겠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교수회는 교수들의 단체로서 학교의 경영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교수회가 특정 전공, 특정인의 연구윤리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교수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어느 분야든 연구윤리 문제가 발생하면 교수회에 이를 검증하라는 요구가 발생할 수 있다.
넷째, 만일 김건희 씨가 유력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아니었어도 교육부가 나서서 검증을 지시했을까? 이것만으로도 처음부터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검증 요구임이 명확하다. 더욱이 이번 투표에 앞서 민주당 의원들이 학교를 찾아 총장에게 직접 검증을 압박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특정인의 논문을 집어 검증을 강요한 것이 교수회원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끝으로 학위 과정과 관련한 우리나라 대학의 일반적 문제도 교수회원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학위논문 중 상당수가 표절 등 연구윤리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교수들은 잘 알고 있다. 특히 특수대학원이나 전문대학원 등 학문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갈 학자들의 논문이 아닌 경우, 대부분 대학에서 연구윤리 위반 사례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논문을 수집해 비교해 보면 표절 가능성이 큰 논문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검증을 반대했을 수 있다.
김건희 씨 논문을 검증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검증은 각 논문의 책임이 있는 주체가 스스로 판단해서 해야 하며, 여론몰이를 통한 검증 강요는 옳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큰 현시점에서의 검증보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 객관적 입장에서 검증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국민대 교수회의 검증 반대 결정은 나름의 합리적 근거에 따른 교수들의 선택일 뿐이지, 권력이나 정치와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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