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 다행이야..배추벌레 여행 누에섬·제부도

2022. 8. 2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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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찾았다. 누에섬은 처음, 제부도는 서너 번 간 것 같다. 목적은 걷기와 타기, 그리고 오래된 지질 구경하기였다. 같은 지질대에 있는 누에섬과 제부도 매바위, 탑재산 등 쇄설성 암맥 등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간의 선물들이다. 탄도항과 제부도를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새로 생겼는데, 그 높이도 꽤 아찔했다.

▶호젓하게 걷는 갯벌길, 누에섬

천천히 꾸물꾸물 마치 배추벌레처럼 움직였다. 제부도 여행을 생각한 것은 해상케이블카 서해랑과 누에섬 걷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는 순전히 호기심이고, 사실 천천히 걷고 싶었다. 대개의 여행이 그렇듯, 누에섬의 이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그곳에 산책 코스가 정리되었다는 소식도 이미 들은 바 있다. 케이블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얼리어답터가 아닌 이상 당장 달려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새벽, ‘오늘 가자’ 하고 제부도를 향해 차를 달렸다. 경기도 화성시 대부도 일대는 이제 다양한 여행지들이 정돈되어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누에섬에 먼저 들어갔다. 누에섬은 탄도항에서 바라볼 때 규모면에서 제부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서해안 얘기를 하면서 갯벌 얘기는 하나마나 할 정도로 당연한 생태계이지만, 누에섬 또한 갯벌생물들이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는 그런 곳이다. 이름이 누에섬이 된 것은 섬이 누에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지도를 띄워 보니 진짜로 섬의 모습이 길쭉한 게 꼭 누에를 닮긴 했다. 거기다 인공 구조물이 섬 끝이 삐죽이 나온 모습을 보면 마치 누에에서 실을 뽑기 시작한 장면 같아 꿈틀대는 느낌마저 받았다.

누에섬에 들어가는 길은 외길, 콘크리트로 만든 도보가 전부이다. 도보가 목적이지만 갯벌 체험, 갯벌 어업을 하는 사람들은 작은 트럭을 몰고 들어가기도 한다. 길 양쪽으로는 갯벌이 펼쳐져 있고, 갯벌 위로는 발 빠른 작은 게들이 노닐다 인적을 느끼고 구멍 속으로 쏙쏙 들어가곤 한다. 흔한 생물로 고동도 널려 있다. 바위에는 굴 딱지들도 잔뜩 붙어 있다. 갯벌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갯벌 체험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해설사 가이드를 받으며 갯벌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 참가비, 장화 등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체험 가능한 물때에 맞춰야 하는 등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여행을 한 날은 7월24일 일요일이었는데, 마침 그날은 만조가 없는 날이라 하루 종일 갯벌이 열려 있었다. 진입로로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갯벌이고 풍력발전기 세 기도 우람하게 서 있다. 풍력발전기 바닥면에는 발전기 관련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외부 마감은 누에 모양으로 해 놓았지만 전기 관련 시설이라 그런지 가까이 가게 되지는 않았다. 갯벌길을 천천히 10~15분쯤 걷자 누에섬이 나온다. 그냥 평범한 섬이다. 갯벌길에 비해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야트막한 뒷동산 높이의 산으로 이뤄져 있다. 산 꼭대기에는 등대 전망대가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서해의 너른 갯벌을 동서남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너무도 유명한 시화달전망대, 시화방조제, 대부도, 어여쁜 선재도, 영흥도로 이어지는 섬들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 낭만을 제대로 즐기려면 맑은 날 오후에 제부도에 들어가 산책하며 놀다 낙조와 함께 달빛 속으로 빨려 들어야 하는데, 요즘은 여행만 떠났다 하면 비가 줄줄줄 내리곤 한다. 제부도에 들어간 날도 그랬다.

누에섬 산책로 초입에는 조금은 이상해 보이기도, 신기해 보이기도, 기묘해 보이기도 한 조형물이 하나 서 있다. 이름하여 ‘안테나 새’. 옛날 TV 옥외 안테나처럼 생긴 디자인에 얼굴은 새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품이다. 그저 정물로만 서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 조형물은 누에섬의 바람에 의해 서서히 회전하는 동력 장치도 지니고 있다. 안테나는 외부의 전파를 받아들이거나 이곳의 전파를 무작위로 보내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새가 안드로이드와의 교신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호기심도 생기지만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저 근처 섬과 섬을 연결하는 소박한 전파 장치일 뿐이다. 근처에는 물고기 솟대 작품도 설치되어 있다. 솟대란 아시다시피 행운을 기원하는 전통 예술이다. 보통은 새를 올려놓지만 어촌 마을답게 물고기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생선들은 아마도 이 근처에서 살고 있는 어류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에섬은 작은 섬이라 들어가 인도를 걷고 섬을 돌아 다시 나오는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일정표를 살펴보면 갯벌체험 프로그램이 있는데,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은 갯벌체험을 통해 생명의 다양성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체험 과정에서 채취하는 갯벌 생물들은 캠프로 가져가 깨끗이 손질한 뒤 조리해 먹기도 하고 갯벌에 다시 풀어주고 오기도 한다. 캠핑이 아닌 일반 가족 여행자들은 채취한 생물들을 갯벌로 돌려보내줄 것을 권한다. 집에 가져가고 싶다면 장비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게 대부분이다. 갯벌 체험의 목적이 생명의 신비로움을 경험하는 것인데, 그 일로 생명이 죽어나가서야 되겠는가. 누에섬은 물때에 맞춰 들어가야 한다. 만조 때는 당연히 못 들어 간다. 물때는 인터넷에 안산 탄도 물때표를 검색해 보면 자세히 나와 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물이 차지 않을 때도 있다. 필자가 여행을 갔던 그 날이 그랬는데, 물이 제일 많이 찼을 때의 높이가 갯벌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길의 80% 정도 높이였다. 그 시간에 누에섬을 오가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다. 멀리서 보면 마치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물이 차지 않는 날 역시 물때표를 참조하면 된다. 누에섬은 취향에 따라 제부도보다 더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동산 곳곳에 피어 있는 주황색 나리꽃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착하고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일랑이는 바다 물결, 서해랑케이블카

서해랑 제부도해상케이블카(사진 화성시청)
요즘 제부도 일몰 시각은 오후 7시34분이다. 약 7시부터 낙조쇼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케이블카 안에서 일몰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다면 당연히 7시34분에 탑승해야 한다. 여행의 목적 가운데에는 절정의 순간이 있다. 그날, 그곳, 그 시간이 아니면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그 찰나 말이다. 서해랑케이블카는 바다 위 약 30m 지점에서 약 2.12㎞를 운행하고 있다. 바람 등 운행 환경에 따라 10~15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낙조 속에 들어가고 싶고, 그를 위해 여행을 작정했다면 기를 쓰고 그 시간에 케이블카에 오르기를 권한다.

서해랑의 ‘서’는 섬 ‘서(嶼)’자로 제부도, 누에섬 등 작은 섬들을 뜻하다. ‘해’는 바다 ‘해(海)’. 탄도항, 제부도 일대의 바다를 뜻한다. ‘랑’은 물결 ‘랑(浪)’자로 물결 치는 제부도, 탄도의 바다 모습을 가리킨다. 종합해 보면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는 일랑이는 바다, 섬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해랑케이블카는 네 가지 버전으로 운행한다. 비싼 것과 싼 것. 비싼 건 크리스탈 캐빈으로 바닥이 투명 소재로 마감되어 케이블카가 운행하는 내내 30m 아래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크리스탈 캐빈의 장점은 물론 생생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즐거움. 케이블카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치료 또는 악화 효과를 주기도 한다. 고소공포증은 특히 혼자 있는 때 절정에 달하곤 하는데, 친구들과 우르르 올라 ‘왁왁’ 소리 지르며 수직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어? 별거 아니네’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몇 번 거듭해야 완쾌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과감하게 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면서 내성이 생겨 알레르기로부터 해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괜한 객기를 떨다 고소공포증이 더욱 악화되는 일도 있다. 일반 캐빈은 편안히 주변 바다를 감상하며 건널 수 있는 평범한 버전이다. 크리스탈과 큰 차이는 없는데, 여행자 대부분은 크리스탈을 선호하는 편이다. 덕분에 일반 캐빈을 선택한 필자는 대기 없이 금세 오를 수 있었다.

날씨만 좋다면 케이블카 안에서 대부 일대의 모든 섬, 바다, 제부도로 들어가는 바다 갈라짐길, 제부도 앞 바다를 미끄러지듯 순항하는 요트, 누에섬 풍력발전기 등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은 금세 흘러가지만 사진 촬영을 위한 작은 창을 열고 반대 방향에서 오는 케이블카의 풍경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짧지만 꽤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다. 특히 낙조 때 케이블카에 오르면 3년짜리 자랑 거리 하나가 생기는 것이라도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감성적인 제부도 산책

제부도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워터워크(사진 화성시청).
케이블카를 타고 제부도에 들어갔다면 골프카트, 바이크 등 제부도 순환을 위한 탈거리들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섬 일주를 위한 골프카트는 운전자가 따로 있어서 여행자는 코스에 맞춰 편안하게 이동하면 되는 편리한 수단이다. 굳이 걷지 않고 제부도 산책을 이용하고 싶다면 골프카트를 권한다. 다른 종류의 탈것들은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사고 시 보험 처리를 빌린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하는 등 법률적 쟁점 거리들이 있어서 조심해서 운전하거나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인사사고가 나도 빌려준 업체는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니 신중해야 할 수밖에 없다.
매바위 근처 어촌 체험 지역
쇄설성암맥
제부도는 섬 전체가 산책로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해안 데크 로드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애정하는 길이다. 이 길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예쁘기 때문이다. 제부도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최근 많은 여행자들이 즐기고 있는 요트 투어의 낭만적인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낙조 때의 요트는 ‘다음 번에 꼭 타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데크에서 보는 요트도 멋진데, 실제로 요트에 올라 바다와 작은 섬들과 붉은 세상을 보는 감동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요트 투어는 제부도 요트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해안 데크 로드의 두 번째 매력은 탑재산. 정상까지 2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제부도 바닷가 뒷동산이다. 사진 촬영 좋아하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섬에 들어가면 이른바 높은 곳에서 촬영할 장소 찾기가 만만치 않는데, 탑재산은 누구나 등산 데크를 이용해 쉽게 올라가 제부도 사방팔방을 내려다 보며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꼭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이 얕은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와 섬들의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올라가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이 탑재산은 지구가 형성된 46억 년 전부터 5억4000만 년 전까지의 시간을 얘기하는데, 이 작은 섬 제부도 해안 데크 로드 옆 탑재산에 그 긴 세월을 보여주는 지질이 드러나 있다. 주인공은 ‘쇄설성 암맥’. 몇 억 넌 전에 형성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는 벌어진 규암 사이로 윗쪽, 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최소한 탑재산 정상, 상상을 보태면 지금 탑재산보다 훨씬 높고 큰 지형에서 쏟아져 내려온 퇴적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탑재산은 그저 만만해 보이고 거친 동산에 불과하다. 제부도가 지금은 섬이지만, 46억 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이곳은 어느 시절에는 거대한 대륙이었을 수도, 날카로운 산악지대였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이 작은 흔적들이 이야기 해 주고 있다. 해안 데크 로드에 서서 잠시 쓸데없는 공상을 하고 계속 산책길을 걷는다.

해수욕장 옆 놀이동산

제부도의 핵심은 역시 제부도해수욕장이다. 넓고 긴 해변은 낮에는 산책과 가벼운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합하고, 노을 지는 시간이 되면 낭만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의 해안선이다. 섬 전체가 관광지라 폭죽 등 다소 시끄러운 놀이도 암묵적으로 허용되기도 한다. 놀이동산과 음식점들도 이곳에 밀집해 있어서, 그야말로 놀고, 소리 지르고, 먹는 삼박자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해안선 끝에는 제부도의 지질과 풍경, 그리고 문화적 상징인 매바위가 있다. 지구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한 이 바위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퇴행성 암석들이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모습이 강렬하고 인상적이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자제해 주시길 권한다. 이 우뚝한 모습을 고이 간직할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보기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가까이 접근해서 보는 것보다 거리를 두고 보는 게 더 멋지고 아름다우며 사진 앵글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요새는 여행만 떠나면 비가 와 당혹스럽기까지 한다. 우기 여행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비 오는 날이 나쁜 날은 아니다. 맑으면 맑아서, 흐리면 흐려서, 비가오면 비가 와서, 눈 내리면 세상이 하얘져서 예쁜 게 우리 사는 곳 아니던가. 비 맞으며 걷고 사진 찍은 누에섬, 제부도 여행을 마치고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들어간다. 배추벌레처럼 천천히 게으르게 걸은 누에섬, 제부도 산책길을 이제 접는다.

[글 이영근 사진 안동수(다큐PD)]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44호 (22.08.3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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