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중 수교 30주년' 중국에서 '북핵'이 사라졌다..왜?

조성원 2022. 8. 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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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정재호 주중한국대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축하 서신을 대독하고 있다. (사진: 베이징특파원 공동취재단)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 30주년 공식 기념행사가 24일 저녁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열렸습니다. 이번 공식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양국 정상의 축하 메시지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양국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제안이 나온다면 대서특필될 상황이었습니다.

■ 수교 30주년, 한중 정상 축하 서신 공개

서울에서는 박진 외교부장관, 베이징에서는 정재호 주중한국대사가 대독한 축하 서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중 양국이 상호 존중과 호혜의 정신에 기반해 미래 30년간의 새로운 협력 방향을 모색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한 고위급 교류 활성화, 공급망을 비롯한 경제안보·환경·기후변화 등 실질 협력 분야의 구체적 성과 달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측의 건설적 역할, 시 주석과의 대면 협의 등을 제안했습니다.

24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행사에는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양국 정상의 축하 서신을 대독했다.


베이징에서 왕이 외교부장, 서울의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대독한 축하 서신에서 시진핑 주석은 세계가 새로운 동요와 변혁의 시기에 들어섰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전략적 의사 소통을 강화하고 방해를 배제하며 우정을 다지고 협력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이끌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방해를 배제한다'는 것은 갈등 요인을 관리하자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대화하는 정재호 주중한국대사(왼쪽)와 왕이 중국 외교부장(사진: 베이징 특파원 공동취재단)


새로운 제안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핵 문제입니다.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측의 건설적 역할을 강조했지만 시 주석은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반도 비핵화'든 '북핵 폐기'든 표현의 차이는 있었지만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의례적 언급조차 중국 측으로부터 듣기 어려워졌습니다. 과거 중국이 북핵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적극적 역할을 하던 때를 고려하면 더욱 의아합니다.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북경한인소년소녀합창단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도 함께 열렸다.


■ 윤 대통령, 중국의 '북핵' 건설적 역할 강조...시 주석은 '비핵화' 언급 없어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에 대한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밝혔습니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이라도 초기 협상 과정부터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희토류 같은 북한 광물 자원을 한국과 국제사회의 식량과 교환하는 방안 등도 제시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대북 제재의 부분적 면제도 국제사회와 협의할 수 있고,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도출되면 남북 경협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북한에 제의했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불과 나흘 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여러 거친 말과 함께 이에 대한 북측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핵을 '국체'라고 지칭하며 남측의 제안을 '천진스럽다'고 비판했습니다. 윤 대통령을 비난하는 원색적 표현도 함께 쏟아졌습니다.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던 일각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발언이었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9일 노동신문 담회를 통해 윤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밝힌 대북 제의를 전면 거부했다. (사진: 노동신문)


이처럼 북한 비핵화 문제가 다시 부상한 가운데 시 주석이 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이같은 배경으로 최근 국제 정세가 지적됩니다. 미중 갈등, 중국 인권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중국의 적극적 외교 활동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서 갈수록 중국의 두드러진 우군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같은 상황에서 그나마 전략적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이 지금 상황에서 부담스러워할만한 '비핵화'를 거론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욱이 북한의 7차 핵실험까지 거론되는 상황입니다. 시 주석이 비핵화를 거론했는데 북한이 핵실험이라도 하면 체면 깎이는 일이 됩니다. 10월 당대회에서 3연임을 하려는 시 주석에게 정치적 부담이 됩니다.

■ 중국이 '비핵화' 언급 않는 이유는?

더불어 중국은 한국에 대한 사드 압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른바 '사드 3불'은 물론 현재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 운용의 제한을 의미하는 '1한'까지 거론했습니다.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관영매체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실은 기사에서도 사드를 양국 현안이라며 부각시켰습니다.

그런데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한 근본 원인이 바로 북한의 핵 위협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이든 한반도든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할수록 자칫 사드 배치를 정당화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는 방치한 채 이를 방어하기 위한 사드를 핑계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본말전도라는 비판이 제기돼왔습니다.

스인훙 중국 런민대 교수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더 이상 중국 대북 정책의 기본 요소가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해 시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5일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행사와 양국 정상 축하 서신 내용을 1면 우상단에 비중있게 다뤘다. (출처: 인민일보 홈페이지)


한중 수교 30주년 행사와 양국 정상의 메시지를 중국 관영 CCTV와 신화사 통신, 그리고 인민일보 등이 일제히 전했습니다. 인민일보는 25일 1면 주요 기사로 비중있게 보도했습니다. 상호 존중 정신에 기반해 더욱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 한중 관계를 고도로 중시한다면서 좋은 동반자가 되자는 시 주석의 발언이 함께 실렸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그러나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글로벌타임스는 25일 둥샹룽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의 인터뷰를 인용해 북핵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둥 연구원은 "북핵 문제 같은 안보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며 "한국은 안보와 관련해 미국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 당국이 당장 언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개입 의사는 있으며, 특히 대미 견제 카드로서도 북한에 대한 '중국 역할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힙니다.

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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