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 폐기해도 문제 없다?
“저희도 팩트가 궁금해서 취임준비위원회에 물어보니 (대통령 취임식 초청 명단이) 개인정보라고 이미 다 파기를 했다, 그게 팩트입니다. 저한테는. 그런데 자꾸 거짓말 하신다고 그러니...”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 23일 국회 운영위원회 발언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출석했습니다. 김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된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했는지 묻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숨기는 게 아니"라면서 이같이 대답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이 대통령기록물이어서 임의로 폐기해선 안 된다”는 이 의원 주장에 대해서는 "법적인 문제와 사실관계를 점검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민주당 오영환 의원도 김 실장을 향해 비슷한 질의를 했지만 김 실장은 "알아보겠다"는 입장을 반복했고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이 도마에 오른 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사들이 대거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참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입니다.
경남 양산 욕설시위 주도자 등 특정 성향의 유튜버들은 물론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과 연관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아들 등이 취임식에 초청돼 참석했다는 보도 이후 야권은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 공개를 촉구했습니다.
취임식 실무를 총괄한 행정안전부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명단을 자체 파기했다"고 밝히면서 파장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야권에서는 개인정보라고 해서 대통령기록물을 폐기하는 건 범죄행위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 파기해도 문제가 없는지 따져봤습니다.
■ 행안부 "개인정보여서 파기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5일,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을 자체 파기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초청 대상자 명단은 취임식 초청을 위한 신원조회 및 초청장 발송 목적으로만 수집됐다"면서 "명단은 개인정보로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취임식 종료 직후 파기"했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설명을 보면 행안부는 취임식(5월 10일) 종료 후 명단자료를 바로 삭제했고, 취임행사 실무추진단 사무실에 남아 있던 자료도 3일 뒤(5월 13일) 파기했다고 했습니다.
이후 행안부는 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질의한 내용에 대해서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해당 답변에선 '실무자 간 주고받은 일부 메일 자료도 7월 15일경에 파기했다'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 전문가들 "명단, 대통령기록물에 해당"
그러면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이 대통령기록물이냐 아니냐를 따져볼까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약칭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생산·접수한 기록물과 물품은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됩니다. 문서·도서·대장·카드·도면·시청각물·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물품이 해당됩니다. 인수위는 존속기한 내인 '대통령 취임 후 30일 이내'에 대통령실 내 기록물 관리부서로 기록물을 이관해야 합니다.
대통령 취임식을 준비하는 취임준비위원회가 인수위 내 조직이고 인수위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대통령 취임식 준비라는 점을 볼 때 인수위 업무 과정에서 생성된 대통령 취임식 관련 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정보공개와 기록관리 전문가인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대통령 인수위에서 진행한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 취임식 초청 명단도 당연히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한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 원장 또한 "취임식 초청은 인수위원회에서 주도했을 텐데 인수위원회 기록 안에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대통령 기록이라고 본다"고 답했습니다.
■ 대통령기록물은 임의로 폐기 못해
정부가 굳이 이런 '대통령기록물'을 분류한 취지는 뭘까요? 대통령기록이 그만큼 보존해야 할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당연히 국가기관이 임의로 폐기처분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을 폐기하려면 대통령기록관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전문위원회는 행정안전부 소속 대통령기록관 관장과 외부 전문가 등 9명으로 구성되는데, 심의를 통해 폐기를 결정하면 기록물 생성 기관은 '지체없이' 관보 및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폐기했다고 고시한 기관은 없습니다.
단지 지금은 사라진 취임준비위원회가 '자체 폐기'했다고 했고 행안부도 대통령기록물 여부를 명시하지 않은 채 개인정보여서 파기했다고 밝혔을 따름입니다.
대표적인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인 대통령실은 취임식 초청자 명단 확보 여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힌 바가 없습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을 임의폐기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 과거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은 대통령기록관에 존재
대통령실이든 행안부든 명확한 입장 표명과 상관없이 실제로 대통령기록관에 접수된 '대통령취임식 초청대상자 명단'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대통령기록이 김대중 정권 때부터 법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해 김대중 정권부터 문재인 정권까지의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문재인 정권을 제외하면 모든 정권에서 관련 기록이 나왔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인수위 없이 취임했기 때문에 해당 자료가 없습니다.
위 결과는 기록 생산 기관을 인수위에 한정한 경우여서 여러 기관으로 확대하면 해당 기록물은 훨씬 더 많이 검색됩니다.
이는 대통령 취임식 초청대상자 명단이 대통령기록물이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KBS 팩트체크팀은 '대통령 취임식 명단'을 임의로 폐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대통령 취임식 명단도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 없이 폐기하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 과연 있나 없나?
애초에 야권의 취임식 초청자 명단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정부는 취임식 명단의 존재 여부에 대해 명확히 답하는 대신 폐기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어제(24일) 행안부 담당자에게 명단 삭제 경위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실무추진단에서 받은 자료(명단) 중에는 일반 개인정보만 받은 게 있고 공문으로 받은 것도 있습니다. 공문의 형태로 온 것은 공공기록물이기 때문에 국가기록원에 이관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요. 저희가 얘기했던 것들은 공문이 아닌 이메일 같은 형태로 주고받은 개인정보 자료를 파기했다는 겁니다."
- 행정안전부 의정관 의정담당관실 최승환 과장
개인정보여서 파기했다고 밝힌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이 사실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 답변으로 들리는데 기사를 읽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포그래픽: 김서린)
임주현 기자 leg@kbs.co.kr
최유리 SNU 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임주현 기자 (leg@kbs.co.kr)
최유리 SNU 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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