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농부와 소설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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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직 더운 여름이어서 점심을 먹고 나서 집에서 좀 쉬고 있나 보지, 뭐.
지난 23일 오후 2시,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요, 부각되는 게 좀 불편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잘할 자신이, 주변의 기대치에 부응할 자신이 없거든요. 소설이 눈에 띄어서 이렇게 된 거지,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역량이 안 돼요. 굳이 많이 쓰지 마세요." 그날 하루 종일 얼얼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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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직 더운 여름이어서 점심을 먹고 나서 집에서 좀 쉬고 있나 보지, 뭐. 지난 23일 오후 2시,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감 나는 전라도 사투리와 인물들로 농촌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린 소설집 ‘호미’(삶창)로 최근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그였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1964년 진도에서 태어난 정 작가는 1983년부터 8년간 뭍에서 생활하다가 1991년 고향 진도로 돌아온 뒤 3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논농사를 기본으로 하면서, 봄에는 대파를 심어서 12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출하하고, 9월에는 겨울 배추를 심는다. 남편과 거의 매일 오전 5시쯤 들녘으로 나가고 오후 8시쯤 돌아온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언제 소설을 쓰지? 주말을 이용해서 쓰나. 그에게서 받아든 답변에 머리가 하얘졌다. “여기는 주말 개념이 없어요, 농촌은요.” 그러면 도대체 언제 쓰는지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장마철이나 겨울철, 일 못하거나 일이 약간 느슨해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쓰죠. 아니면 새벽 나오기 전에 한두 시간 정도 써요.” “아, 네.”
묻는 걸 포기하면 안 돼. 책을 왜 내게 됐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많은 작가들의 그것과 또 달랐다. “그냥 글을 쓰면서 살고 싶은데, 소설집이 없으니까 존재감이 없더라고요. 제 존재감을 확인할 겸 낸 거였어요.” “네∼”
기자는 묻는 직업이야, 암. 대학 전공이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도 아닌 무역학인 데다가 소설 강좌나 수업을 따로 들은 적이 없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소설을 어떻게 배웠느냐고 물었다가 다시 놀랐다.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문구의 ‘관촌수필’ 등을 읽었어요. 그냥 읽는 걸 좋아하고, 읽다보니까 쓰고 싶어졌죠. 2010년부터 좀 썼던 것 같아요.”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거듭 물었다. 소설 쓰기는 어떤 의미인가를 물었다. “좀 숨통이 트인다고 할까요.(네?) 경제적으로 힘들고, 노동 강도도 세고, 거기에서 긍지를 갖기는 어렵죠. 숨이 막힐 수밖에요.” “네∼”
그래도 인터뷰를 마쳤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찰나, 오금을 박는 결정타가 날아오고 있었으니. “제가요, 부각되는 게 좀 불편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잘할 자신이, 주변의 기대치에 부응할 자신이 없거든요. 소설이 눈에 띄어서 이렇게 된 거지,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역량이 안 돼요. 굳이 많이 쓰지 마세요.” 그날 하루 종일 얼얼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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