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18세 강제 자립
우리나라에서 부모에게 버려진 보호대상아동은 매년 4000명에 이른다. 그렇다고 그들은 보육원에서 계속 지낼 수는 없다. 언젠가는 자립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 나이를 18세로 정했다. 아동이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복지를 보장한 아동복지법의 적용 대상을 18세 미만으로 하기 때문이다. 18세가 되면 성인으로 간주돼 보호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하는 것이다. 소정의 지원금을 받고 보육원을 나가야 한다.
지난 21일 광주 광산구 한 대학교 강의동 건물 뒤편 바닥에서 A군(18)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올 초 대학에 합격한 뒤 광주 북구의 보육원에서 나와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해 왔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그가 남긴 쪽지에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다’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는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올 초 자립했다. 자립지원금을 포함해 700여만원을 받았는데, 기숙사비와 생활비 등으로 500여만원을 쓰는 바람에 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18세가 돼 보육원에서 나와야 하는 A군 같은 아이들이 연간 2500명가량 된다. 18세가 됐다고 해서 갑자기 독립할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보육원에서 나오는 것은 ‘자립 강요’나 다름없다.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운이 좋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다고 해도 성공을 속단하기는 이르다. 발 한번만 잘못 디뎌도 절벽으로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야 한다.
18세 자립은 이른 감이 있다. 몸은 다 컸을지 몰라도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다. 홀로 서기 위해서는 쓰러지더라도 누군가 받쳐주거나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동복지법 제38조는 보호대상아동의 자립지원 관련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아동의 보육원 퇴소 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생활·교육·취업 등의 지원을 해야 하며, 자립지원의 절차와 방법, 지원이 필요한 아동의 범위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야겠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지원 대상과 금액을 당장 늘릴 수 있다. 24일 A군은 화장됐다. 마지막 순간 텅 빈 기숙사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그늘진 구석이 있다. 그의 명복을 빈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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