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의 여담] 대학입학 경쟁과 사회 불평등

한겨레 2022. 8. 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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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형의 여담]

옥스브리지는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잉글랜드의 옥스퍼드대학교(오른쪽)와 케임브리지대학교(왼쪽)를 일컫는 혼성어이다. 나무위키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영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육과 사회불평등의 상관관계가 항상 이슈가 된다. 특히 해마다 대학 입학 시즌이 되면 엘리트 대학의 입학생 중 공립고등학교 학생 비율을 주요 신문들이 주시하며 발표한다. 최고 엘리트 대학들이라고 생각되는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다양한 계층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라는 압력을 부단히 받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았을 때 약간 의외일 수 있는 면은, 다양한 계층 학생들이 옥스브리지에 지원하도록 권장하는 ‘지원 다양성' 정책이 노력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전국을 대학 진학률, 평균소득 등 지표를 기반으로 세분화한 뒤 저조한 지역 학교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격려하는 각종 홍보 활동이 펼쳐진다. 그런 지역 학생들이 우선 지원해야 입학생의 다양성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학 서열 속에서 현실적으로 자신이 입학 가능한 학교를 세심하게 파악해서 가장 높게 지원하는 사회 분위기는 아니다. 달리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학교'를 보통은 너무 낮게 책정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에 비해 이른바 ‘좋은 대학’ 진학을 둘러싼 압력이 약하고, 상당히 뛰어난 학생도 ‘옥스브리지는 나에게 안 맞는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는 것을 나도 주위에서 자주 목격해왔다. 그 때문에 대학 입학 경쟁이 과열되지 않는 영국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그 관점에서는 그동안 대대적으로 실행돼온 지원 장려 정책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지원한 학생들 가운데 잘 뽑으면 되지, 어째서 ‘너도 옥스브리지에 갈 수 있어' 하며 경쟁 분위기를 조장하는가? 실제로 내가 얼마 전 동료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러면서 한국같이 모두가 ‘좋은 대학'을 지망하는 문화의 문제점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한 동료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반응했다. 자기 자신이 가난한 배경을 안고 옥스퍼드에 진학해서 교수까지 된 그는 약간 놀랍게도 오히려 ‘한국의 경쟁 분위기가 옳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의 입장의 핵심은 한국 국민은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진학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올바른 정보란 바로 사회 속에서 학벌의 중요성이다. 즉, 학벌은 좋든 싫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상당히 중요한 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을 한국민은 직시하고 있지만 영국민은 대체로 ‘속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영국의 가난한 계층은 경제-사회적 상승을 시도하지도 않는 패배주의를 대학 선택에서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회에서 학벌의 중요성을 직접 비교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좋은 학벌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혜택의 근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국에는 이 문제를 여러 해 동안 연구해온 ‘서턴재단'이라는 복지기관이 있다. 그들은 ‘명문 대학 학위는 사회계층 상승의 가장 확실한 원동력'이라는 원리를 표명하면서 교육문화 개선을 통한 사회 개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몇년 전에는 ‘8개 명문 고등학교의 옥스브리지 입학생 수가 하위 4분의 3 학교 입학생 수와 같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그 외에도 최근엔 고등법원 판사의 75%, 그리고 정부 내각의 과반이 옥스브리지 출신이라는 통계도 발표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여러 면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엘리트 교육의 중요성이 별로 놀랍지 않다. 더군다나 엘리트 대학 입학에 기부금 등을 통한 재력의 공공연한 작용이 사회적으로 묵인되는 특이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좋은 학벌이 주는 극단적인 혜택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예를 들자면 상위 500개 기업(‘포천 500') 대표의 약 8%가 하버드대학 출신이다. 이와 비슷하게 프랑스의 경우에는 비교적 최근까지 가장 큰 회사 40개 대표 가운데 80% 이상이 단 세개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통계가 있었다. 20세기 후반 대학 서열이 거의 없어졌던 독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제적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 아래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하는 ‘우수 대학 선정 계획'을 실행하면서 성과가 높은 대학에 주는 혜택을 계속 증가시켜왔다.

학벌의 사회적 비중을 줄이고 싶은 열망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학벌이 지금처럼 중요한 현실 속에서, 국민이 그 사실을 직시하고 경쟁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나에게 새로운 관점이었다. 학문이 가져다주는 내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학자로서 그런 의견에 동의하기는 당연히 어려우면서도, 교육과 사회문제의 복잡 다양한 양상을 생각하게 하는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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