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제로 전략을 아시나요?

길윤형 2022. 8. 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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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난 22일 대만을 방문한 에릭 홀컴(왼쪽)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가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길윤형 | 국제부장

“길 기자, 그래서 대안이 뭔데.”

지난 7월 말에 나온 ‘대만해협 위기’ 문제를 다룬 책 <미중경쟁과 대만해협 위기>(갈마바람)를 펴내면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이따금 언쟁을 벌이곤 했다.

‘글쎄, 대안이 뭘까….’ 이 질문을 붙들고 몇달을 매달렸지만, 처절하게 진행 중인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대만해협의 갈등 완화를 위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꺼낼 수 있는 ‘전략적 묘수’를 생각해내긴 쉽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대만과 관련해 협력을 요청한다면, 한국은 한-중 관계가 파탄에 이르진 않을 만한 아슬아슬한 선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시름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미·중 모두에 트집 잡히지 않을 완벽한 ‘균형점’은 존재할까. 언제나 엉덩이를 반쯤 뺀 자세를 취하는 한국에 실망감을 쌓아온 미국은 그렇다 쳐도, 순전한 방어용 무기인 ‘사드’ 배치에도 경제보복을 일삼은 중국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일본대사관 관계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대만 위기가 발생하면, “한국도 미국을 도와야겠지만, 일본이 하는 것의 60~70% 정도밖엔 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돌아온 것은 “20~30%가 아니고?”란 냉소적 응답이었는데, 20~30%든 60~70%든 결국 추상적인 말장난일 뿐이다. 실제 전쟁이 터져 한·일이 미국을 돕게 된다면, 두 나라 모두 중국과 군사적 대결을 각오해야 한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다.

대만해협에서 실제 전쟁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지난 9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워싱턴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을 상정한 ‘워 게임’을 진행했다면서 그 결과를 소개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하다. 중국은 유럽 전선에 정신을 빼앗긴 미국, 침공에 앞서 시행한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 상태에 빠진 대만, 참전을 망설이는 일본의 허점을 파고들어 다양한 사거리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미국령 괌과 일본령 오키나와(이로써 일본은 자동 참전하게 된다)에 꽂아 넣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항공모함 2척, 함선 20여척, 첨단 전투기 500여기가 파괴된다. 중국은 이 틈을 타 대만섬 남부에 2만2천여명의 병력을 상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선제공격을 받은 미·일은 거센 반격에 나선다. 중국 본토에서 지속해서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날라야 하는 중국의 상륙 함대는 미·일의 가차 없는 미사일과 잠수함 공격에 궤멸한다. 3주 동안의 처절한 전투로 양쪽 모두 엄청난 피해를 보지만, 미국과 대만이 결국 타이베이를 지켜낸다는 게 최종 결론이다. 한두 사람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승자 없는 무의미한 살육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비극을 피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현재 미·일 두 나라가 택한 길은 단순하다. 동맹의 ‘억지력’과 ‘대처력’을 강화해 힘으로 중국을 꺾어 누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힘을 통한 억지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여러 글을 읽다 눈길이 간 것은 일본의 군사평론가 마에다 데쓰오가 <세카이> 2021년 9월호에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그는 중국을 포위하는 ‘억지·대처형 방위’를 통해 군비경쟁으로 나서는 대신, 한·중·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할 수 있는 ‘협조적 안전보장’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미사일 없는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한 과감한 ‘제로-제로 전략’이다. 첫째 제로는 동아시아에서만이라도 사드와 같은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없애는 것이고, 둘째 제로는 상대를 직접 타격하는 중거리 미사일을 제거하는 것이다. 공상같이 들리는 얘기지만 그렇지 않다. 냉전 시기 미·소(이후 러시아) 두 나라가 이 둘 모두를 갖지 말자고 약속하고 지키던 때가 있었다. 이제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1972~2001년)과 중거리핵전력조약(INF·1987~2019년)이다.

물론, 동아시아를 둘러싼 복잡한 안보환경을 생각해볼 때 이 두 협정을 당장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무모한 미-중 대결을 멈출 수 있는 ‘창조적 대안’들을 고민해야 한다. 끝 모를 편가르기에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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