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메이드 인 베트남'이 아녜요, 사람이에요
24시간 집안일, 육아, 농사해도 자기 손으로 들어오는 게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자기 이름으로 된 돈 하나도 없고, 작은 거 하나도 맘대로 못 사고, 친정에 일 생겨도 돈 하나도 못 보내줘요. 자유가 없는 거죠. 그러다 갈등이 생기고, 싸우고, 맞고, 이혼해요. 그 과정조차 어려우니 도망치는 거예요.
부티탄화 |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 농사일 했어요. 하루 두번 소에게 풀을 먹이러 나갔죠. 여섯살 때쯤 일인데, 비 오면 나가기 싫잖아요. 작은 강에서 넘어졌는데, 춥고 힘드니까 소가 미운 거 있죠. 그래도 참았어요. 우리 집 형편이 어려우니까, 소라도 있어 남의 농사일 도와야 돈을 받고, 땅도 빌릴 수 있으니까. 눈물 꾹 참았어요. 다들 그런 줄 알고 일 했어요.
공부하면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학교까지 두시간을 걸어가고, 비옷이 없어서 네모난 비닐에 구멍을 뚫어 얼굴만 내놓고 다녔지만, 열심히 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중국인이 운영하는 신발공장에서 일했어요. 몇천명이 쭉 서서 일하는 공장인데, 가죽에 그려져 있는 무늬대로 망치질했어요. 가죽냄새가 엄청 심했죠. 월 50만동(약 2만5천원)을 받았는데, 아침 일곱시에 일하기 시작하면 저녁 열시에 끝났어요. 그리곤 침대 열개가 쭉 붙어있는 방에 가서, 눈만 붙였어요. 쉬는 날은 없었고요. 일본인이 운영하는 전기선 만드는 공장에서도 일했어요. ‘메이드 인 베트남’이라고 적혀 있는 거. 진짜 힘들었지만, 참았어요. ‘좋은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며 칠년을 보냈어요. 근데도 이상하죠. 똑같이 어려운 거예요.
집에 왔다가 한국에서 일하고 온 동네 오빠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에 가서 돈 버니까 금방 집도 새로 짓더라고요. 이주노동 하고 싶었죠.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데 대우가 다르니까요. 근데 비자 비용만 만불(약 1200만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비싸서 포기했죠. 다른 방법을 찾다가 결혼이주 선택했어요. 한국인하고 결혼해야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할 수 있으니까요. 진짜 떠나고 싶진 않았어요. 가족, 친구, 고향 다 헤어져야 하니까요. 그래도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잘살아 봐야지’라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한국 왔어요. 모든 게 낯설고 쉽지 않았어요. 언어, 기후, 음식, 사람들 모두 새로우니까요. 그래도 누군가한테 나 책임지라고 안했어요. 집에서, 밖에서 열심히 일했어요. 24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어요. 그러다 시아주버님 빵집에서 일하고 20만원 받았어요. 이제야 내 ‘일’이 대우를 받는 거 같아 기뻤어요. 계속 돈 벌고 싶었어요. 돈이 자유니까요. 공장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다녔고, 지금은 깻잎하우스도 빌렸어요. 거기서 깻잎 모종 키우고, 심고, 따는 일을 해요. 비닐하우스 한동 빌리려면 연 200만원 내는데, 전 두동 빌렸어요. 돈 벌려면 진짜 손이 빨라야 해요. 하루에 1만2천장을 따야 손해가 안나거든요. 집과 회사에서 일하다가 저녁이나 주말엔 깻잎하우스에서 일했어요. 그제야 조금씩 형편이 좋아졌어요. 좀 사는 것 같았죠.
그런데 마음 한켠이 늘 무거웠어요. 제가 ‘운’이 좋은 거니까요. 저랑 똑같이 24시간 집안일, 육아, 농사해도 자기 손으로 들어오는 게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자기 이름으로 된 돈 하나도 없고, 작은 거 하나도 맘대로 못 사고, 친정에 일 생겨도 돈 하나도 못보내줘요. 자유가 없는 거죠. 그러다 갈등이 생기고, 싸우고, 맞고, 이혼하려면 그 과정이 어려우니 도망치는 거예요.
이주노동하는 친구도 한국어를 잘 모르는데다가, 직장도 두번밖에 못옮기니까 (부당한 일을 당해도) 말 못해요. 어떤 곳은 월급은 안주면서, 기숙사비만 제 달에 받아가요. (사장님한테 월급 달라고) 말하면 다시 본국으로 가라고 하니깐 어떻게 해요. 비자 만들면서 빚지고 왔는데 일 안하면 못갚잖아요. 그러다가 결국 도망치거나 비자 만료되고, 불법(미등록)이 되잖아요. 그러니 더 말 못하죠. 진짜 죽어도.
그런 현실 바꾸려고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들었어요. 아홉 개 읍·면에서 120명이 모였어요. 우리는 결혼해서 한국에 왔지만, 다 일하려는 사람들이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일’하는 만큼 대우받으려고 열심히 싸우고 있어요. 조례도 만들고, 기자회견도 해요. 이주노동하는 친구들의 사장님 전화 대신 받아서 소통을 도와주고요. 어떨 땐 가서 따지기도 해요. 가정폭력 당하면 경찰에 가서 통번역 해주고, 임시숙소를 달라고 요구도 해요. 이혼하는 친구가 있으면 변호사를 찾아봐 주고, 교도소 간 남편면회도 따라가요. 집 구하는 것부터 애들 학교 상담까지 다 함께하는 일이에요.
또 요즘엔 농촌에 일손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계절근로자라고 정책이 만들어졌어요. 전 그거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비자발급부터 교통수단 제공하는 일, 통번역까지 도와줬어요. 진짜 바쁘겠죠? 그런데요. 그거 아세요? 이건 일이 아니라, ‘봉사’래요. ‘공짜’래요. 낮에는 생계를 유지하려고 돈 벌고, 밤에는 친구들 도와요. 사실 몸이 아파요. 내가 슈퍼맨도 아니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그래서 나 이 말 꼭 하고 싶어요. 나, ‘메이드 인 베트남’ 아니에요. 나는 ‘나’에요. 공짜로 돌릴 수 있는 기계 아니에요. 사고 싶은 게 있고, 먹고 싶은 게 있고, 가고 싶은 게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어요. 내 친구들도 똑같아요. 그래서 우리, 잘 살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내 하루가, 내 삶이 ‘있는 그대로’, 당신하고 똑같이 ‘잘 살고 싶은 사람’으로 대우받길 바라요. 그러려면 내가 부엌에 있어도, 깻잎하우스에 있어도, 공장에 있어도, 이주민 도와주는 일을 해도 모두 중요한 ‘일’로 여겨지고, 돈도 받으면 좋겠어요. 이건 우리가 함께 잘 사는데 소중한 ‘일 들’이니까요. 이 글 그래서 쓰는 거예요. 저를 ‘메이드 인 베트남’으로 보지 않는 모든 분이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나, 함께 잘 살고 싶어요.”
*도움: 한인정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저자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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