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초등생 때부터 사상 규제 사상과 이념, 표현 자유 억압
[국보법 연재 (18)] 냉전시대에 등장해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도 위세 부려
[미디어오늘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이 나라에 태어나면 누구나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국가보안법 등에 의해 점검을 마친 교재로 교육을 받게 된다. 그 결과 북한은 이 지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불법 정치 집단으로 세뇌를 당하게 된다. 북한이 하는 말과 행동은 부정되고 불법 시 된다. 젖먹이 때부터 국보법의 지배 속에 성장한 세대들은 통일을 왜 하느냐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심지어 통일이 거북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국보법은 남한 내부의 친북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고 그 결과 정부 당국은 일반 국민을 향해 '주변에 이적세력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식의 파괴적 논리를 마구 살포하고 있다. 이 사회의 청년들은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면서도 북한을 경제공동체 삼아 남북이 윈윈하는 전략 등은 생각치 못한다. 6·15공동선언, 10·4선언이 왜 세계적으로 박수갈채를 받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국가보안법이 이 사회에 존속케 만든 기성세대 탓이다.
국보법의 지배 속에 성장한 세대 “통일을 왜 하느냐”는 의식 갖게 돼
국보법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친일파를 집권 기반세력으로 삼으면서 수구보수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만든 희대의 악법이다. 이 법은 제정 초기, 최대의 민족적 과제였던 친일 청산을 저지한 악법이었으며 선거에서 상대를 빨갱이로 모는 매카시즘이 상시 동원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사상과 이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진정한 진보세력이 남한에 등장하거나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 반인륜적 악법이다.
국보법은 총칙, 죄와 형, 특별형사소송규정, 보상과 원호 등 4개 장과 부칙으로 이루어졌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국가단체의 구성 또는 가입하는 자 및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하면 처벌된다.
반국가단체는 정부를 참칭 하거나 국가를 변란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구체적으로 갖춘 단체를 말한다. 또한 이런 목적으로 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 즉 북한의 노동당 및 재일 조총련 등도 반국가단체로 본다.
이 법은 1948년 제정된 이래 반공법과 비슷한 규정이 포함되는 등 여러 번 개정되었으며, 최종적으로 1997년 1월 개정되었다. 국보법은 국제사면위원회와 유엔 인권이사회가 1999년부터 점진적 폐지를 권고해 왔으며,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폐지의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4년에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했고, 같은 해 9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폐지를 주장했다. 2008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미국 대표가, 2015년 10월에는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제7조 찬양 고무죄 조항의 폐지를 권고하는 등 이 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보법은 너무 오랫동안 이 사회에서 막강한 강제력을 행사하면서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항상 국보법을 의식하면서 대소사에 상상의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는데 익숙해지고 그런 것에 대한 심적 부담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악취 진동하는 사막과 같은 사회가 되었다. 이 법의 적용 범위의 애매성과 국민의 기본권 제한의 문제점에 대해 장호순(순천향대 교수)의 글 가운데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진보네트워크센터 2002년 6월4일).
--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이고, 세계인권선언에 반하는 반인권적인 법률로 지난 수십 년간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국가보안법 제7조로 인해 국가안보와는 무관하게 양심과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국가보안법 제7조, 소위 "찬양.고무" 조항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19조,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2조 등과 상충된다.
표현의 자유를 국제인권규약의 “핵심적인 권리(a core right)”로 규정한 유엔인권이사회는 국가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는 "국가전체에 직접적인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경우"로 국한시켰다. 국가안보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정당한 근거로 인정을 받는 것은 "진정으로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때"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규제는 명확히 규정되어 "누구나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 알고, 무엇이 제한을 받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
이상에서 발췌 소개한 장 교수의 논리를 통해 국보법 7조의 독소조항이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 법은 냉전시대에 등장해서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서 위세를 부린다. 남북한은 유엔 회원국이고 7·4공동성명, 6·15공동선언 등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국보법에 규정된 북한의 위상은 혼란스럽다. 이러니 잘 나가가는 권력자들과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은 국보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
1961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는 매일 한 건 꼴 발생
국가보안법이 지배해 온 지난 70여 년 동안 양심과 언론 자유, 민주주의는 처참하게 유린돼왔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961년부터 2008년 2월까지 1만4000여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는 매년 298건이 기소된 것으로 거의 매일 한 건 꼴로 국보법 위반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남북간에 7·4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이 나왔지만 이같은 남북 합의는 남한의 국보법과 같은 실정법보다 하위개념의 수준에서 머물 뿐이다.
국보법은 이승만 정권이 지난 1948년 12월1일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좌익 활동과 반정부활동을 탄압한다는 구실로 만든 법이다. 그러나 실제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제한하고, 정권수호를 위한 반민주적인 악법이었다. 이 법은 탄생 당시부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우려되면서 일종의 한시법이자 형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적 성격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기세등등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승만 정권이 1958년 12월 날치기 통과시킨 국보법 개정안은 간첩의 개념을 확대하고 허위 또는 왜곡된 사실의 유포를 막는다는 미명 아래 실질적으로 언론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다.
4·19혁명으로 등장한 제2공화국은 언론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고 언론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한다는 방침을 언론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도 역시 반공주의에 국한된 언론자유였다. 박정희 군사쿠데타와 그의 피살에 이은 전두환 정권까지 27년간 동안 안보를 앞세운 철권통치가 자행되면서 이 땅의 민중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군인 정치인들은 공포정치를 자행하기 위해 국보법을 휘둘러 인권을 탄압하고 정치적 자유를 유린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도언론은 정권이 양산하는 갖가지 국보법 사건에 대해 발표문을 받아쓰는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었다.
이 법이 만들어진 뒤 강산은 수십 번 변하면서 동서냉전이나 이념 대결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남측은 북측보다 경제력에서 30배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국방예산의 씀씀이도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남측에서 북한의 정치체제나 통치구도 등은 접촉만 하면 감염되는 무서운 괴질과 같은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고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논리를 벗어나면 위태롭다. 북한에 대해 민족의 동반자, 평화통일의 대상이라거나 '북한이 이것만큼은 정말 잘하는 구나'라는 평가를 내놓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보법, 미래 상상할 자유 억압해 미래학 발 못 붙이게 만들어
국보법은 한반도의 미래를 자유 분망하게 상상할 자유를 억압하면서 남한에 정상적인 미래학이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반도 미래학은 남북한을 동등한 존재로 전제 삼아 긍정, 부정적인 모든 면을 고려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인데 국보법에 규정된 북한은 반국가단체로 없애버려야 할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미래학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미래에 대한 전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지만 북진통일, 흡수통합 등에만 매몰된 사고로는 정상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 그 결과 남북한이 상호작용하는 미래의 평화통일 전망 작업 등은 상상할 수 없다. 정보화, 세계화 시대가 심화되면서 상상력이 지구촌 차원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 법은 남한이 4차 산업시대의 파고를 헤쳐 나가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을 궤멸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이 법은 남한 사회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국보법은 적을 약화시키기보다 내부를 병들게 만드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 법은 우리 내부에 적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머릿속 생각만으로 권력에 의해 국사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보편화시킨다. 이어 이웃 간에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상대를 공존하는데 필요한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여기게 만들어 공동체의 구심력을 약화시킨다. 이 법은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법으로 이 땅의 언론은 정부 수립 이래 이 법에 중독된 상태로 기만적인 언론 자유의 개념에 마비되어 있다.
이 법은 이 사회 상상의 자유를 70년 넘게 억압하면서 사회적 상상력을 차단, 변질시키는 폐해를 심화시키고 있다. 국보법은 선거판을 수구보수에게 유리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수십 년간 북풍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공작정치의 발판이 되었다. 21세기 들어 수구보수세력 일부가 이승만을 국부로 떠받들려 시도한 배경이 무엇인지는 바로 해방 이후 모든 선거에서 수구보수가 진보세력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 하겠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가 북미간 문제라고 중국이 외치지만 남한은 남북문제라고 외치면서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 제재와 압박에 나선다. 미국은 국력이나 군사력에서 하늘과 땅차이가 나는 북한에 대해 미국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으로 규정짓고 한국과 함께 군사적 경제적 압박과 봉쇄를 실시한다.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초보수준이고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면서도북한에 대해 자제하라고 윽박지르지만 북한은 마이 웨이를 외칠 뿐이다.
한반도가 유사 이래 강대국들의 손아귀에서 고생했지만 북한과 미국의 수십 년 간에 걸친 대결은 가히 세계사적이다. 이런 모습을 수백 년 뒤의 한반도 후손들은 무어라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은 안할수록 좋다. 국보법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구세력 국보법을 애국법이라면서 “절대 사수”를 외쳐
국내에서 수구세력은 국보법을 애국법이라면서 “절대 사수”를 외치고 있다. 이 법의 개폐를 주장하는 것부터 친북, 종북, 이적행위라고 공격한다. 권력 장악을 다투는 선거판에서 수구 보수 세력은 반대진영에 대해 종북이나 친북이라고 낙인찍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러 범죄 협의를 받으면서 헌재에서 파면되는 과정에서 박근혜 지지 세력은 탄핵 찬성 세력에 대해 툭하면 종북, 친북이라고 매도했다. 건전한 상식이나 토론을 은폐하고 저지하고 차단하는데 국보법에 바탕을 둔 색깔론, 종북 공세가 악용되는 것이다.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이 사회에서 진보 세력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진보는 상상력의 자유를 기본으로 한다. 진보는 현실을 분석하거나 미래를 전망하는데 매우 자유 분망하다. 따라서 진보는 분열하는 것이 당연하다.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는 주장은 악의적이고 부적절한 것이다. 진보의 분리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프레임도 국보법에서 연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상할 자유를 박탈한 국보법이 독기를 뿜어대는 상황이 유지된다면 진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국보법의 유령이 활보하는 한 정상적인 선거 운동이나 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무제한적인 토론이 허용되지 않고 국보법을 전제 삼아 제한적으로 하는 방식이 갖는 한계는 대의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국보법이 사라진 상황에서의 선거가 절실히 요구된다.
남북은 1300여 년 동안 통합된 상태의 단일 공동체
남북은 1300여 년 동안 통합된 상태의 단일 공동체였다. 그런데 그 생명력이 유한한 사상, 이념이 다르다 해서 철천지원수처럼 등지고 으르렁대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념 차이에 의한 동서냉전은 1990년대 전후해 사라졌다. 그러나 국보법은 아랑곳하지 않고 건재하다.
거대 여야 정당은 그 개폐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정치, 경제적인 발밑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분단을 이용하거나 거기에 기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족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국보법이 남북 민족의 소통을 막고 갈등을 조장하는 흉기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구촌의 역사는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역사라는 점에서 남북은 분단을 청산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조상과 후손에 대한 책무다. 한민족이 둘로 나뉘어 다투면서 외세들이 그것을 악용하는 짓을 벌이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외세가 악행을 저지를 빌미는 남북 분단으로 제공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남북은 평화 통일되어야 한다. 남북이 평화 속에 공존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잘한 것은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외세가 비집고 들어와 분단을 악용하는 악행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보법이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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