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갈팡질팡, 윤석열 외교 정책은 어디에

김은지 기자 2022. 8. 24.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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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 패싱'으로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당장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더 큰 문제는 미·중 전략 경쟁 시대를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8월3일 경기도 오산 미국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주한 미국대사관 트위터 갈무리

2022년 8월 아시아사(史)를 기록한다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비중이 꽤 클 것이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그는 8월1일에서 5일까지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타이완, 한국, 일본을 차례로 찾았다.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은 후폭풍이 거셌다. 타이완 방문을 두고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타이완행 강행으로 미·중 관계 악화일로’ 기사 참조). 동아시아의 긴장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의례적인 고위급 인사의 행사가 아니었다. ‘비용’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행보였다. 타이완 방문 직후 한국을 들렀다. 펠로시 의장이 가져온 청구서가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했다. ‘한국은 타이완 이슈에서 미국의 편에 설 것이냐.’ 그 반대편에 중국이 서 있는 것 또한 분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윤 대통령의 휴가와 겹쳐 처음부터 만날 계획을 잡지 않았다고 8월3일 대통령실은 밝혔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헤징(hedging·위험회피)’할 명분을 잃었다. 당초 지방에서 휴가를 보내려던 윤 대통령은 계획을 취소하고 서울에 머물렀고, 공교롭게도 펠로시 의장이 방한하던 8월3일 밤 연극을 보는 장면을 노출했다.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장의 방한 당일인 8월3일 몇 차례 ‘메시지 혼선’을 보였다. “안 만난다”라고 했다가 “만남을 조율 중”이라고 말을 바꿨다가 다시 “조율한 적 없다”라고 최종 입장을 밝혔다. ‘펠로시 패싱’에 대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이 더욱 거세지자, 대통령실은 8월4일 윤석열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전화 통화 일정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최영범 홍보수석은 “모든 것은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휴가였기에 불가피하게 만나지 않았다는 앞서의 주장을 뒤엎는 말이었다. 이후 이뤄진 “만나지 않은 것은 중국을 의식해서가 아니다”라는 국가안보실 관계자의 브리핑과도 상충되었다.

서구 언론은 “중국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펠로시를 무시(snub)했다(〈파이낸셜타임스〉)”와 같은 보도를 쏟아냈다. 반면 중국 언론은 “한국이 예의 바르면서도 국익을 지키는 조치를 했다(〈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라고 전했다. 한 외교관은 “미·중 양쪽의 평가 모두 한국 국민으로서도, 윤석열 정부로서도 달갑지 않은 얘기다”라고 말했다.

당장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외교부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이번 ‘펠로시 패싱’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아마추어적 대응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을 회사 사장에 비유하자면, 사장이 회사를 속속들이 이해해서 크게 볼 줄도 알고 작게 볼 줄도 알면서 지휘하면 제일 좋다. 하지만 지금 사장은 이쪽 분야에는 전혀 트레이닝도 안 되어 있고, 배경지식도 없다. 그럼 누군가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든가,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어가면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다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펠로시 패싱’이 해프닝이 아니라면, 더 큰 의문이 남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의 큰 방향이 바뀌었느냐는 지점이다.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한·미 동맹 약화, 대중 굴종 외교, 주종의 남북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적극 공격하며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시사IN〉 제753호 ‘미국과 중국 사이, 후보들은 어디에 서 있나’ 기사 참조). 사드 추가 배치를 하겠다는 한 줄 공약도 남겼다.

지난 2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 현안이 생길 때마다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한국은 오랜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고 중국 쪽으로 기운다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세 가지 불추진)’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지나치리만큼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다”라고 쓰인 국문 번역본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포린 어페어스〉 영어 원문에는 해당 부분이 ‘overly accommodating gestures(지나치게 유화적인 태도)’라고 쓰여 있다).

6월29일 스페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자격으로 초청된 윤석열 대통령(맨 오른쪽). ⓒ연합뉴스

선거 캠페인과 현실 외교는 다르다

그러나 당선 이후 보여준 외교·안보 메시지는 선거 캠페인 때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5월2일 인사청문회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중요한 것은 안보 문제로 인해서 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날인 5월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외교·안보·국방과 관련해서는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항목에 18가지가 들어갔다. 사드 추가 배치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동아시아 외교 전개’ ‘북핵·미사일 위협 대응능력의 획기적 보강’과 같은 추상적인 말들이 한 줄 공약을 대신했다. 당시 이에 대한 평가는 “尹 외교전략 ‘현실론’으로(〈중앙일보〉)”와 같았다.

외교안보 정책을 선거 캠페인에 동원하는 것과 행정부를 운영해야 하는 ‘현실’이 다르다는 고백으로 비쳤다. 미국의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6월29일 공개한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친미·친중 정서의 차이는 조사 대상국 19개 중 한국이 가장 크다(〈그림 1〉 참조). 향후 미·중 사이 중국의 경쟁력에 대한 한국인의 전망은 가장 ‘짠’ 편에 속한다(〈그림 2〉 참조).

ⓒ시사IN 최예린
ⓒ시사IN 최예린

이런 여론에 편승하거나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다루며 책임지고 설득해야 하는 차원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는 “세계적 차원의 미·중의 탈동조화 추진이 가능한지부터 묻고 싶다. 지금 우리는 이념과 가치를 깃발에 걸고 십자군전쟁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실론’과 함께 국제정세를 다루기에는 상황이 더욱 녹록지 않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이 대중국 포위망에 적극적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지난 6월29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상징적이었다. 북미·유럽 국가의 정치·군사 동맹에 한국을 비롯한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파트너국으로 초청받았다. 이 자리에서 나토는 12년 만에 ‘전략 개념(Strategic Concept)’을 채택했다. 나토의 전략 개념은 활동 목표와 대응 범위 등을 담는 핵심 비전이다.

1949년 출범한 나토의 역사상 전략 개념을 바꾼 건 앞서 7차례에 불과했다. 그만큼 큰 변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장 크고 직접적인 위협)와 함께 중국이 언급됐다. 나토의 ‘2022 전략 개념’에 “중국의 명시적인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은 우리의 이익, 안보, 가치에 도전한다”라는 부분이 포함됐다. 윤석열 정부가 중국과는 거리를 두고 미국에 더 다가갔다고 해석할 수 있는 행보다.

아직도 “학습 과정을 겪는 중?”

여기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신냉전 질서가 격화하는 시기에 ‘윤석열 정부는 어떠한 대응책과 전략을 준비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펠로시 패싱’으로 미국이 받은 충격은 “타이완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더 힐〉)”라는 보도로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가 처한 현실은 한국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해외 석학에게도 포착된 바 있다. 스테판 해거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UCSD) 석좌교수가 지난 7월8일 한미경제연구소(KEI)에 기고한 글의 한 대목이다. “한국은 신냉전을 완전히 받아들일지 아닐지에 대한 전략적 문제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 그러한 선택들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다룬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윤석열 정부는 외교안보 이슈를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것 같아 보인다. 국내의 정치적 제약과 국제정치의 구조적 제약, 가치 외교와 국익 외교 사이의 모순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습 과정을 겪는 중일 수도 있다.”

국정 운영은 실전이다. ‘학습의 시기’는 빨리 끝내야 한다. 모든 선택은 기회비용을 남긴다.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선택이라면 더욱 그렇다. ‘펠로시 패싱’이라는 선택 이후 윤석열 정부가 보인 모습은 우리 앞에 놓인 어떠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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