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여름이 가는 소리

김희선 2022. 8.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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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 고무신이 고인 섬돌 엷은 그늘에선/ 질질 계절을 뽑아내는/ 작은 실솔이여" 실솔(실솔)은 귀뚜라미를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그러고 보면 밖에서 들려오는 줄 알았던 벌레 우는 소리는 그 귀뚜라미가 내던 소리였을까요? 귀뚜라미는 수컷만이 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암컷 귀뚜라미들은 수컷이 내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 걸까요? 놀랍게도 귀뚜라미들의 청각기관은 앞다리에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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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한자어로 '실솔'
이수복 '계절 뽑아낸다' 표현
8월부터 10월까지 성충 활동
가을 오는 길목부터 우는
수컷 귀뚜라미 소리에
옅푸른 가을 떠올라
김희선 소설가

“옥색 고무신이 고인 섬돌 엷은 그늘에선/ 질질 계절을 뽑아내는/ 작은 실솔이여”

실솔(실솔)은 귀뚜라미를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옥편을 찾아보면 참 기이하게 생긴 글자라는 생각이 들지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귀뚜라미의 생김새를 닮은 듯도 여겨집니다.

이수복 시인(1924∼1986)의 ‘실솔’이란 시에서 귀뚜라미는 섬돌 옆 그늘에 숨어 노래합니다. 그것을 ‘계절을 뽑아낸다’고 하였으니 참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엊그제 환기를 한 뒤 깜빡 잊고 방충망을 닫지 않았더니 그 틈을 타서 귀뚜라미 한 마리가 들어왔나 봅니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한가운데 귀뚜라미가 앉아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귀뚜라미는 어둡던 방이 갑자기 밝아지자 당황한 듯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전까진 아주 작게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고 보면 밖에서 들려오는 줄 알았던 벌레 우는 소리는 그 귀뚜라미가 내던 소리였을까요?

귀뚜라미는 수컷만이 운다고 합니다. 한쪽 날개를 다른 쪽 날개의 오톨도톨한 면에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건데요, 영역 표시를 하거나 자기 영역에 들어온 다른 수컷을 위협할 때, 그리고 짝을 찾을 때 그리도 구슬프게 운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암컷 귀뚜라미들은 수컷이 내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 걸까요? 놀랍게도 귀뚜라미들의 청각기관은 앞다리에 있다고 합니다. 앞다리에 있는 감각신경은 워낙에 예민해서 동료 귀뚜라미의 작은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밤에 곤충을 먹이로 찾아다니는 박쥐가 내는 초음파까지 감지할 정도입니다.

귀뚜라미들이 가을이 올 때쯤에만 노래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귀뚜라미들은 알 상태로 겨울을 나고 오직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 즉 8월에서 10월까지만 성충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러고 보면 깊은 밤 창밖에서 소리높여 우는 귀뚜라미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자세로 짧은 생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다시 씻어 발라매는 문비 곁으로/ 고향으로처럼 날아와 지는…/ 한 이파리 으능잎사귀”

이수복 시인은 같은 시에서 또 이렇게도 읊습니다. ‘으능잎사귀’는 은행잎사귀의 옛말인데, 소리 내어 발음해보면 아직 노랗게 물들진 않은 옅푸른 은행잎이 떠오릅니다. 문비는 문짝을 뜻하고, 아마도 여기선 사립문을 말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다시 씻어 발라맨다고 하였으니까요. 파랗게 높은 하늘을 배경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은행잎은 시인의 눈엔 고향으로 날아와 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곧 추석이 다가오기에 그렇게 노래했던 걸까요? 혹은 나무의 뿌리가 땅을 향한다면 그 잎들이 떨어져 내리는 지상은 그들의 고향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을은 한 해가 다시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길목이기도 하지요.

그런 생각을 하며, 방 한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귀뚜라미를 조심스럽게 잡아 창을 열고 보내줬습니다. 컴컴해서 보이진 않았지만, 우아하게 날아오른 귀뚜라미는 화단 수풀 속에 사뿐히 내려앉았겠지요. 방충망을 닫는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고, 저는 속으로 ‘이제 여름이 가는 건가’라고 중얼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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