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착각하고 계십니다"

최문선 2022. 8. 24.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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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체조 금메달리스트 서선앵 선수의 평균대 연기에 흠뻑 빠졌다.

최근 기사 주제는 '사람은 왜 잘 모를수록 더 용감해지나'였다.

풀어 쓰자면 '조금만 알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조금만 아는 나머지 스스로 조금만 안다는 사실도 모르는 상태'다.

피험자들은 그러나 다트 게임 영상을 본 것만으로 능력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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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체조 금메달리스트 서선앵 선수의 평균대 연기에 흠뻑 빠졌다. 난생처음 평균대에 오르자마자 다리를 일자로 찢으며 점프하려다 무릎만 찢어졌다. '보기만 한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던 것이다.

국내외 계보를 꿰고 있을 정도로 의학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 외과의사들이 수술하는 장면을 몇 천 개는 봤겠다. 수술실 용어도 꽤 안다. 그렇다고 내가 메스를 잡는 건 의료가 아닌 살상 행위다. '많이 들어 본 것'과 '지식으로 아는 것'은 다른 것이다.

국제부장이 된 뒤 영국 BBC방송의 '직장생활(Worklife)' 연재를 종종 읽는다. 밥벌이란 왜 이리 고된가를 알고 싶을 때다. 최근 기사 주제는 '사람은 왜 잘 모를수록 더 용감해지나'였다. 말 안 되는 지시를 강압적으로 내리고, 틀린 말을 요란하게 하고, 자기 능력을 과대포장하는 직장인의 심리를 분석했다.

'잘 안다는 착각(Illusion of knowledge)'이라는 인지편향 때문이라는 게 기사의 결론이다. 풀어 쓰자면 '조금만 알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조금만 아는 나머지 스스로 조금만 안다는 사실도 모르는 상태'다.

인용된 심리 실험 결과를 보자. 다트 판 정중앙에 화살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화살을 던져 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피험자들은 그러나 다트 게임 영상을 본 것만으로 능력을 확신했다. 20번 본 사람이 1번 본 사람보다 큰소리를 쳤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기꺼이 목숨도 걸었다. "조종사가 쓰러졌다. 비행기를 직접 착륙시키겠는가." 조종사 얼굴을 찍은 영상을 본 피험자가 나선 비율이 영상을 안 본 피험자보다 30% 더 높았다. 정작 착륙장치 작동 장면은 나오지 않아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는데도 겁내지 않았다.

피험자들은 매일 변기를 쓰므로 변기 물을 내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속속들이 안다고 믿었다. 익숙한 물건 앞에서 자신감이 차오른 것이다. 5분 전에 바지 지퍼의 작동 원리를 구글에서 검색해 봤다는 이유로 토네이도 발생 원리도 술술 써낼 수 있다고 착각했다. 세상의 지식이 곧 제 지식이라고 혼동한 결과다.

BBC는 이러한 지적 자만이 위험한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①노력과 훈련을 방해한다. "내가 안 하는 거지 못하는 게 아니야. 내 능력은 짠 하고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고!" ②무모한 도전을 조장해 개인과 조직을 위험에 빠뜨린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나라고 왜 못해?" ③팀플레이가 우스워 보인다. "오늘의 나를 만든 건 오직 위대한 나야. 사람은 대충 뽑아 쓰면 돼!"

오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BBC의 팁은 심플하다. 덤비기 전에 자기 실력을 의심할 것. 더 잘난 사람에게 조언을 들으며 스스로를 점검할 것. 한계를 직시하고 겸손할 것. 요컨대, 나를 회의하는 것이 회의를 여러 번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할 수 있어"와 "할 수 없어"를 외칠 상황을 분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의 모든 문장에서 뜨끔했다. 빨간 사인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손을 떨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 정책과 정치 초보인 채로, 그러나 용기백배하여 대통령이 된 뒤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용산의 그분' 말이다.

최문선 국제부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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