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돌봄은 있는가
단어 앞에 한국형이라는 의미로 영어 K를 붙이는 게 유행이다. 한류가 어느 순간부터 K팝, K드라마 등으로 분화되더니, 최근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K방역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K돌봄, 즉 현재 지속되고 있는 저출생과 노령화의 문제에 직면한 우리가 풀어야 할 돌봄의 숙제를 한국적 맥락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것을 새 정부에 권고하려고 한다.
K돌봄을 논의하자면 돌봄의 위기와 관련하여 한국적 특수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돌봄 위기는 이를 앞서 경험한 다른 사회와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첫째, 지속되고 있는 초저출생의 문제와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 1.3 이하의 초저출생 상태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나라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우리가 유일하며, 현시점 고령화의 속도를 보자면 역시 가장 빠른 수준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돌봄위기의 긴박함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K돌봄의 구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둘째, 가족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2%가 1인 가구로 사실상 가장 흔한 가구 구성에 해당한다. 연령대별로는 돌봄 필요도가 높은 6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 전체 1인 가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가족 내 주로 여성에 의한 사적돌봄 모형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사회적 돌봄을 기반으로 한 K돌봄 모형의 구축이 주민 모두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이유다.
셋째,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 사회적 돌봄 체계의 문제이다. 요양·보육 등 주요 돌봄과 장애인 활동지원 등 사회서비스 공급자의 절대적인 비중을 개인 등 민간영역이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이와 같은 민간주도성은 지난 30여년간 우리 사회 돌봄 체계의 특수성이었다. 문제는 주로 공공이 지불하는 서비스 이용료에 기대고 있는 사회서비스 제공 환경에서, 수익 창출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민간의 공급자는 ‘최소한으로 적정화된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유인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돌봄노동에 대한 인정은 끊임없이 부차화되었고, 적절한 인정을 받지 못한 노동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는 질을 보장할 수 없었다.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결핍의 문제가 여전한 배경에 이와 같은 민간주도의 공급구조가 있음을 많은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K돌봄 모형에 사회서비스 공급구조 전반에 걸쳐 공공의 비중을 확대하는 기조가 적극 반영되어야 하는 배경이다.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한 돌봄 모형 구축이라는 급박하고도 명확한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새 정부 출범 이후 세 달여가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K돌봄의 그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초등학교 입학연령 조정계획 발표는 돌봄의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과 고민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취학 아동에 대한 돌봄 공백의 문제와 이에 대한 대책 부재로 인한 주민의 불안과 분노가 그 배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이제라도 알기를 바란다. 또한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의 다변화 및 규모화’와 ‘사회서비스 혁신’의 강조에 중첩되는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의 과잉강조, ‘사회서비스의 확대’를 강조하지만 필수 사회서비스에 대한 국가 보장 약속의 부재, ‘더 필요한 국민께 더 두껍게 지원’이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선별적 접근의 원칙 천명 등 지금까지 드러난 돌봄과 복지정책의 철학과 접근법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한 K돌봄의 모습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K돌봄의 큰 그림도 보이지 않은 채 조각조각 드러난 모습들은 우려스럽다.
취임 100일을 넘긴 윤석열 정부가 받아든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성공한 정부로 가는 첫걸음을 K돌봄 모형의 구축을 위한 진단에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떤가?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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