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중수교 30주년..갈등·협력·공존의 '뉴노멀' 모색

조성민 2022. 8. 2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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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 47배 커졌는데 미중 전략경쟁에 외교·경제안보 리스크
전문가 "한국사회 내부 합의·뜻맞는 국가들과 공동대응 필요"

한국과 중국이 24일 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양국은 24일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열리는 공식 기념행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각각 주빈으로 참석해 양국 정상의 축하 서한을 대독할 예정이다.

그러나 갈수록 격화하는 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 속에 수교 30주년에 즈음한 한중 기류는 미묘하다. 경축 분위기와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서로 경제적으로 밀접하지만 언제든 안보 요인이 한중 관계를 흔들 수 있음을 양국민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는 데다 양국 국민감정이 과거 어느 때보다 악화한 상태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지모고성군란호텔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외교부서 수장이 행사에 참석해 정상 메시지를 발표하기로 한 것은 ‘기본’은 하는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10년 전 베이징에서 열린 수교 20주년 행사에 차기 지도자로 사실상 내정된 상태였던 시진핑 국가주석(당시 국가 부주석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 ‘깜짝’ 참석했던 것과 비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요인도 있지만 수교 30주년을 성대한 축제로 치르기보다는 실무적으로 치르려는 분위기가 양국 수도에서 공히 감지된다.

한국전쟁 이후 적대 관계를 이어가던 양국은 탈(脫)냉전의 훈풍을 타고 1992년 8월24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와 1989년 6·4 톈안먼유혈진압 이후 덩샤오핑의 외교적 고립 탈출 시도 등 쌍방의 전략과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양국 간 교역은 1992년 64억달러에서 2021년 3015억달러로 47배 성장했다. 지난해 중국은 한국의 1위 교역 대상국(전체 교역의 24%)이었다. 한 해 무역흑자의 80%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나왔다.

수교 당시 선린우호 협력 관계로 출발한 양국은 ‘21세기를 향한 협력 동반자’(1998년)→‘전면적 협력 동반자’(2003년)→‘전략적 협력 동반자’(2008년)로 점점 관계의 수준을 높였다. 그러나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 한중 관계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을 모색해야 할 전환점에 섰다.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국의 ‘핵심 이익’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 경쟁하고 갈등하는 와중에 한중 관계도 미·중 전략경쟁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미·중 관계에서 협력과 경쟁의 영역이 명확해지고, 충돌 방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면 한국의 외교적 활동 공간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지금의 흐름은 이런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중평이다. 미·중 관계가 악화할수록 한국을 끌어당기려는 양국의 압박은 강도를 더할 것이며 그때마다 한국은 군사안보·경제안보 영역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전망이다.

중국은 한국에 양면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도입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해 ‘3불(不)’(사드 추가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한미일 군사동맹 불참)을 넘어 ‘1한(限)’(기존 사드 운용 제한)까지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한국 안보에 필요한 것이라도 미·중 전략경쟁 속에 중국 안보를 해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지난 9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5개 응당’을 내세우며 ‘외부’의 간섭을 견제하고 한국의 독자적 외교를 촉구한 것도 사실상의 압박이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면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에 맞서 한국과의 반도체 분야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며 양국 경제의 연결을 더 긴밀하게 만들려 하는 것은 중국의 또 하나의 일면이다. 동맹인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중국의 급부상이 가져올 국제 질서의 변화를 경계하고 견제하는 동시에 중국과 경제, 북핵 문제 등에서 경쟁할 부분은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 부분은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열되는 미·중 전략경쟁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한국사회 내부의 합의를 도출하고, 다자외교를 강화해 뜻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공동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는 지적했다.

한국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우리의 가치, 정체성, 국익을 정부와 국민이 합의하는 과정이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에 기반해 미·중 사이에서 주요 현안별로 우리 정책의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런 다음에 특정 현안에서 입장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공동 전선을 펼 수 있는 다자외교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가 등에서 한국은 뜻을 같이하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했기에 중국이 한국에만 문제 삼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한중간 전략대화 채널을 확고히 제도화해 잠재적 갈등 현안에 대해 선제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갈등이 불거졌을 때 관계 손상의 정도를 제한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상황에 따라 한중 대화 채널을 단절하려고 하면 그것이 미·중 전략경쟁 구도 하에서 중국에도 손해가 되는 일임을 중국에 분명히 알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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