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100일..'일국 장관' 아닌 '정치 장관' '소통령' 행보
야당과 막말 설전 불사..자신이 비판하던 추미애 등 닮아가
4·3 직권재심 청구 확대 등 진영 논리 벗어난 행보 보이기도
5월17일 취임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4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한 장관은 석달여 동안 대통령에서 일선 검사로 이어지는 검찰 직할체제를 완성했고, 시행령 꼼수로 검찰 수사권 축소 무력화에 나섰다. ‘청와대 인사검증’ 기능까지 넘겨받으며 “일국의 장관”을 넘어 ‘윤석열 정부 소통령’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과 막말 설전을 불사하는 그를 두고 정무직 장관이 아닌 ‘정치인 장관’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직할체제 완성
한 장관은 취임 다음날 검사장급 인사를 곧바로 단행한 뒤, 이어진 두 차례 인사로 윤석열 사단 특수통 검사들을 주요 보직에 전진 배치했다. 지난 18일 윤석열 사단인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검찰총장 후보자로 임명제청하면서, ‘대통령-법무장관-검찰총장-주요 수사팀’으로 이어지는 검찰 직할체제를 완성했다. 법무·검찰 ‘빅4’로 불리는 핵심 요직 네 자리는 모두 윤석열 사단으로 채웠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 김유철 대검 공공수사부장,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대표적 친윤 검사로 꼽힌다.
검찰 수사는 권력의 시선이 머무는 쪽을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나서 군불을 떼고, 곧바로 검찰이 대대적 수사에 나선 북한 선원 북송, 서해 공무원 피살, 월성 원전 조기 폐쇄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이들 사건을 통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안보라인 핵심 인사 대부분을 수사선상에 올려두고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세 사건 모두 최종 목적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반면 윤석열 정부에 부담이 되는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2월 핵심 피의자들을 기소한 뒤 8개월째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고발사주 사건 역시 지난 5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기소의견 수사 결과를 넘겨받고도 석달 넘게 뭉개고 있다.
수사권 복원 시도
한 장관은 검찰권력 복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시행을 20일가량 앞둔 검찰 수사권 축소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법무부 시행령을 통해 사실상 무력화했다. 국회는 검찰 직접수사 범위를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했는데, 법무부는 ‘등’ 한글자를 최대한 활용해 검찰 수사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이를 두고 검찰 수사권 축소 위헌성을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취지와 상호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법무부는 개의치 않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한 장관 이름으로 낸 청구서에서 “수사권 축소 법안으로 수사가 제한돼 헌법의 검사 소추권(공소권) 행사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정법의 수사권 축소를 기정사실로 전제해야 가능한 주장이다. 법무부는 다음달 27일로 예정된 헌재 공개변론에서도 같은 취지 주장을 펼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는 시행령 꼼수 논란이 일자 “개정법에 따라 수사 대상을 확대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상반된 주장을 동시에 하고 있다. 한 장관은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일한 법을 두고 동시에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고 지적하자, “시행령은 이 법률이 시행됐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로직(논리)이 다르다”는 법리적으로 논란이 되는 답변을 내놓았다. 법무부의 모순적 태도는 헌재 공개변론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질 전망이다.
인사검증은 글쎄
‘한동훈 법무부’는 ‘소통령’ 논란 속에 대통령 고유 권한인 인사권 일부까지 대통령실로부터 이양받았다. 공직자 인사검증 정보를 법무검찰에 몰아줄 경우 권한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한 장관은 인사검증 시스템을 배우겠다며 미국 출장길에 연방수사국(FBI)까지 들르기도 했지만, 지난 6월 출범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윤석열 정부의 잇단 인사검증 실패 후폭풍을 모두 뒤집어쓰는 상황이 됐다. 인사정보관리단이 설치된 뒤 첫 검증 대상자였던 송옥렬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제자 성희롱으로 지명 6일만에 자진 사퇴했다.
국회서는 야당 도발
전 정부에서 추미애·박범계 등 정치인 출신 법무부 장관의 발언과 인사 등을 강하게 비판했던 한 장관이지만, 본인 역시 국회 업무보고 등 입법부와 공식적인 관계에서 막말 설전을 불사하는 등 정치인 못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22일 국회 법사위에서 ‘시행령을 통한 검찰 수사권 확대는 삼권분립 훼손 아니냐’는 질문에 “질문 같지도 않다”고 답한 게 대표적이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무위원 자격을 망각한 도발적 태도이다. 국민의 대표인 의원에 대한 무시와 비하”라고 비판했다.
한 장관은 검찰 사무를 제외한 일반 법무행정에서는 진영 논리를 벗어난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제주 4·3 사건 직권재심 청구 대상 확대, 인혁당 사건 피해자 지연이자 면제, 이민청 설립 검토 등이 대표적이다. 또 교정시설 과밀화 해소, 교정공무원 처우 개선, 외국인 보호시설 내 인권보호관 제도 도입 등 법무부 안에서 소외되던 교정·출입국본부 등 업무에서도 개선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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