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 거장 파보 예르비 "폭력과 침략 실패로 만들어야" 푸틴과 러시아군 겨냥 비판

이강은 2022. 8. 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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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쟁과 폭력에 반대합니다. 전쟁이 우리(에스토니아)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인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철의 장벽이 무너지고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되찾은 것도 고작 30년 전의 일입니다. 전쟁은 개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사건이고 개개인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폭력과 침략을 실패로 만들어야 합니다.”

23일 클래식 공연기획사 빈체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불리는 에스토니아 출신 지휘 거장 파보 예르비(60)가 4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하며 “전쟁은 야만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군을 겨냥해 우크라이나 침공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예르비는 2011년 아버지 네메 예르비와 창단한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다음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4일 통영국제음악당, 5일 경기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에스토니아에서 매해 여름 개최되는 패르누 뮤직 페스티벌의 상주 음악단체로, 스칸디나비아·독일·러시아 음악에 큰 영향을 받고 성장한 음악가들이 모여 있다. 

2018년 알파 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페르누 음악 페스티벌에서 녹음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과 신포니에타가 수록된 데뷔 음반을 발매했다. 2020년 에르키 스벤 튀르 작품을 녹음해 디아파종상을 수상했다.

예르비는 오케스트라 창단 배경과 관련해 자국 젊은 연주자들의 음악 활동 보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에스토니아의 젊은 연주자들은 연주 실력과 별개로 타국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연주자들에게 전 세계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제가 지휘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프로페셔널한 방법으로 연주자들을 서로 소개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는 에스토니아 연주자뿐만 아니라 1바이올린 단원인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은 등 다양한 국적의 연주자로 구성돼 있다. 예르비는 단원 선발 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길까. “저는 전 세계를 돌며 지휘할 때, 잠재력 있는 연주자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정말 좋은 연주자이지만 우리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연주자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여기 진짜 멋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함께 하자’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한번 함께 하게 되면 항상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합니다.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아직 한 명도 본적이 없어요.”

이경은도 비슷한 방식으로 합류했다.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종신단원이기도 한 이경은은 “마에스트로(예르비)와 처음 만난 건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오디션 장소였다”며 “파이널 라운드 끝나고 마에스트로께서 백스테이지로 오셔서 처음 인사했고,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대해 소개해주셨다. 2019년 일본 투어가 첫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경험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 투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르비와 경험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일본 투어 중 다른 도시로 가는 과정에서 신칸센을 이용했는데, 마에스트로는 1등석, 단원들은 2등석에 앉아있었어요. 이동하면서 마에스트로가 심심하셨는지 2등석으로 넘어와 신칸센 내에 팔고 있는 모든 술을 저희(단원)에게 쐈어요. 그 술이 꽤 많았는데, 저희 때문에 신칸센에 술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을 만큼 정말 재미있게 이동했어요.”  

예르비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선보일 작품의 작곡가 중 하나인 에르키 스벤 튀르(Erkki-Sven Tüür)에 대해선, “학창시절을 함께 했는데 둘 다 젊은 시절 록 음악에 빠져 있었다”며 “튀르는 잘 알려진 록 뮤지션이었고 에스토니아에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활동을 했다. 이를 계기로 에르키 스벤은 작곡을 시작하게 됐고, 오랜 세월동안 밴드를 위해 작곡활동을 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의 음악은 굉장히 독특해서 오케스트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여러 층의 소리를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소리가 끊임없이 흐르게 한다”며 “강한 리듬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음악을 더욱 매력적이고 리드미컬하게 만드는데, 이는 그가 이전에 작곡했던 록 음악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르비는 올해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두 차례 내한공연을 하게 된 것을 두고, “한국과 한국 관객들을 사랑하는 저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 그동안 한국에 자주 방문하면서 이 나라와 관객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며 “저에게 정말 특별한 두 오케스트라와 함께 방문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태어난 파보 예르비는 탈린 음대에서 타악기와 지휘를 전공했고, 1980년 미국으로 이주해 커티스 음대와 LA 필하모닉 인스티튜트에서 전설적 지휘자 중 한 명인 레너드 번스타인을 사사했다.

예르비는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면서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인정받으며 전 세계를 무대로 바쁘게 활동한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NHK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인 그는 오랜 시간 함께한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또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계관 지휘자, 신시내티 심포니 계관 음악감독, 에스토니안 내셔널 심포니의 예술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이 외에도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던 파리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정기 무대에 서고 있다. 이번 시즌 그는 이들 오케스트라와 함께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LA 필하모닉,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홍콩 필하모닉 무대를 선보인다. 

예르비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독일 음악계·문화계 전반에 눈에 띄는 업적을 이룬 공로로, 2019년 라인가우 음악상을 수상했다. 또 에스토니안 내셔널 심포니와 함께한 시벨리우스 칸타타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2015년 그라모폰(영국)과 디아파종(프랑스)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음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 문화예술공로훈장 받았다. 핀란드 작곡가 음악을 대중에게 널린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시벨리우스 훈장도 받았다. 2013년엔 에스토니아 대통령으로부터 에스토니아 문화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화이트 스타 훈장(Order of White Star)을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에스토니아 출신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와 에르키 스벤 튀르 ‘L’ombra della croce’ 작품이 연주되며 특히 예르비와 튀르는 오랜 음악적 동반자로 에스토니아 고유의 정서적·문화적 특징을 담아낸 음악관이 그대로 재현된다. 협연에는 에스토니안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 겸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 트린 루벨과,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 일원이자 올해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첼로부문 3위를 차지한 에스토니아 출신 첼리스트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가 무대에 올라 브람스(1833∼1897, 독일) 이중 협주곡을 연주한다. 2부에서는 에스토니아 바로 옆에 위치한 러시아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된다. 경기아트센터에서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대신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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