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철수 재정정책 비판'으로 검찰 조사 앞둔 이상민이 안 의원께 드리는 공개 질의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2. 8. 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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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준헌 기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다지 안녕하지 못합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님이 저를 고발하셔서 경찰 조사, 검찰 조사를 받는 게 제가 안녕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의원님은 대통령 후보 시절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에서 국가부채 개념을 잘못 설명했습니다. 저는 의원님이 언급한 개념이 잘못됐다고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지적했습니다.

안 의원 측은 제게 유튜브 콘텐츠를 삭제 또는 수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제 비판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수정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다만 의원님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면, 의원님을 대리하는 어떤 사람과도 공개토론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내심 토론이 이뤄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공개토론을 통해 국가부채의 정확한 개념이 알려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토론 대신 고발장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토론을 요청했습니다. 토론만 하면 잘잘못이 정확히 드러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의원님이 제 토론 요청에 전혀 응하시지 않아 이렇게 공개 질의서를 드리게 됐습니다.

첫째, 안 의원님은 대선 후보 시절에 삼프로TV에서 국가부채는 D1, D2, D3, D4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D1, D2, D3까지는 작성하지만, D4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저는 안철수 후보님이 언급한 D4 개념은 안 의원님이 창조한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안 의원 측은 국제통화기금(IMF)에 D4라는 단어가 존재하기에 안철수 후보가 창조한 게 아니라는 취지로 저를 고발했습니다. 여기까지의 기본적 사실은 인정하시지요?

둘째, D4라는 단어는 다양한 용례가 존재합니다. 예컨대 정도진 교수는 ‘우리나라 국가부채 산출과 관리방안연구(2018)’에서 D4를 ‘금융공기업까지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라고 창조적으로 정의했습니다. 즉, IMF에 D4라는 형태의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정도진 교수가 언급한 D4는 정 교수가 창조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셋째, IMF는 D4라는 형태의 단어를 다양한 개념으로 활용합니다. 정부회계 통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IMF 정부재정 통계 매뉴얼(Government Finance Statistics Manual, GFSM)에는 D4를 ‘정부 자산 발생 소득’으로 정의합니다. 이렇게 칭하는 IMF의 D4와 안철수 후보가 발언한 D4는 단어의 형태만 같을뿐 동일한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하시지요?

요는 단지 D4라는 단어의 형태가 기존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정도진 교수 또는 안철수 후보가 D4라는 단어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D4라는 단어의 형태가 아니라 D4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내용의 일치성 여부입니다. 기표와 기의가 동일해야 같은 개념의 용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넷째, 고발장에서 언급한 IMF의 D4는 IMF 스태프 토론 노트(Staff discussion note)에서의 D4입니다. 그러나 IMF 스태프 토론 노트에서의 D1, D2, D3는 대한민국 기재부의 D1, D2, D3와는 단어의 형태는 같지만 다른 개념입니다. IMF 스태프 토론 노트에서의 D1, D2, D3는 부채의 수단(Debt instruments) 기준이며, 기획재정부의 D2, D3는 정부의 범위(Level of government)에 따른 분류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획재정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의원님은 기재부가 밝힌 대로 기재부의 D1, D2, D3와 IMF 스탭 토론 노트의 D1, D2, D3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시지요?

다섯째, 기획재정부의 D2(일반정부 부채)는 IMF의 공공섹터 부채 통계(Public Sector Debt Statistics, PSDS)에서의 총부채(Gross debt)와 일치합니다. 이는 기재부에서 제공하는 D2 수치와 IMF 공공섹터 부채 통계의 총부채 수치가 같다는 사실로 확인 가능합니다. 결국 기획재정부 D2와 IMF의 공공섹터 부채 통계에서의 총부채(Gross debt)는 동일한 개념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시지요?

여섯째, IMF의 총부채(기획재정부의 D2) 설명을 보면, IMF 스태프 토론 노트에서의 D4에 해당하는 보험(Insurance), 연금(Pension) 등의 부채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 기재부의 D2는 정확히 IMF의 공공섹터 부채 통계에서의 총부채(Gross debt)이며, 여기에는 IMF 스태프 토론 노트에서의 D4에 해당되는 보험, 연금 부채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정하시나요?

안 의원님이 상기된 6가지 질문을 모두 인정한다면, 결국 안 의원님이 틀리고 제가 맞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재부는 D1, D2, D3까지는 작성하나 IMF 스탭 토론 노트 상의 D4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안철수 후보의 발언은 잘못된 발언이라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삼프로TV>에서 대한민국이 작성해야 할 부채로써, 처음에는 연금충당부채를 언급하다가 나중에는 연금수지 적자 규모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연금충당부채와 연금수지 적자 규모는 전혀 다른 개념임에도 이를 모두 D4라고 묶어서 설명했습니다.

두 개 이상의 전혀 다른 현상(기의)을 D4라는 동일한 개념(기표)에 담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안철수 후보가 D4라는 개념을 창조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님이 언급한 연금충당부채는 물론 연금수지 적자도 IMF의 정부 재정 통계 매뉴얼에서의 D4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마찬가지로 IMF의 스태프 토론 노트에서의 D4와도 전혀 다른 ‘동명이개념’에 불과합니다.

정리하면 단어의 모양이 우연히 같은 D4는 기존에 존재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의 D4는 IMF 재정 통계 매뉴얼 D4와 다르며, IMF의 스탭 토론 노트 D4와도 다르고, 정도진 교수의 D4와도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경찰 조사에서 저는 경찰 수사관에게 위와 같은 말을 장시간 설명했습니다. 수사관은 저의 기나긴 말을 다 듣고 하나의 질문을 했습니다.

수사관: “그래서 IMF에 D4가 있다는 말인가요? 없다는 말인가요?”

이상민: “D4라는 단어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것도 많습니다.”

이를 보고 한 네티즌은 “안철수가 향유고래를 자꾸 대왕고래라고 해서 고래전문가인 이상민 위원이 그건 향유고래라고 알려줬더니 안철수는 대왕고래가 맞는다며 고발했고, 경찰은 “그래서 그게 고래이긴 고래인 거죠?”라고 했다고 평가하기도 하더군요.

안 의원님은 고발장에서 “이상민은 안철수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삼프로TV>에서 허위사실을 말한 것은 제가 아니라 안 의원님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안 의원님을 고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말과 토론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정치란 모름지기 말과 토론의 힘을 믿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회의 갈등을 법으로만 풀어야 한다면 정치는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토론과 논쟁을 통해 타협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정치의 필요성을 공감합니다.

상기된 6가지 질문을 모두 인정하고, 안 의원님이 이제는 본인이 틀리고 제가 맞았다는 사실을 느끼셨다면, 고발을 취하하시고 제게 공개 사과를 해야 합니다. 또 여당의 유력한 정치인의 정책을 비판하면 고발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모든 연구자에게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타협과 설득을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는 정치적 행위가 소중하다고 믿는 모든 국민에게도 사과를 해야 합니다.

만약 아직도 의원님이 맞고 제가 틀리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래서 아직도 억울한 감정이 있으면, 형사고발이 아니라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근대 국가의 핵심은 민사와 형사를 나누고 국가는 형사사건에만 개입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떨어뜨릴 목적으로’라는 관심법의 영역을 형사사건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공인과의 정책 논쟁을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사건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사고발은 국가의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불기소돼도 고발인인 안 의원님의 손해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국가의 행정비용이 낭비됩니다. 그리고 피고발인인 저의 아까운 시간과 비용도 소요됩니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에게 고발당했다는 사회적 낙인과 그에 따른 두려움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아직도 의원님이 맞다고 생각하시면, 의원님 개인 돈으로 소송비용을 마련해 민사소송을 제기하시기 바랍니다. 의원님의 패소 비용으로 저를 도와주시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속한 법률대리인들의 소송비용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거듭된 토론 요청에도 응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6개 문항을 공개 질의합니다. 6개 문항을 보시고 본인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다면, 고발 취하와 함께 공개 사과를 하셔야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정치라는 행위의 필요성을 믿는 전 국민에게 공개 사과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본인이 맞는다고 생각하신다면, 안 의원님 본인 돈으로 부디 민사소송도 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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