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9.5억이던 집이 7.5억까지 내려갔어요"..'발 동동'

오세성 2022. 8. 23. 07: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세시장, 매물 쌓이고 보증금 떨어져
서울 아파트 전세, 1년 사이 56% 급증
1000가구 입주 앞둔 용두동..전세가 '급락'
집주인 보증금 반환 난항..사고액 '역대 최대'
오는 31일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 엘리니티'.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다. 전세 수요가 급감하면서 집주인은 보증금을 못 돌려줄 처지가 되거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23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일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3034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만1123건에 비해 56.3% 늘어났다. 이는 2020년 8월 10일 이후 2년여 만의 최대치다.

당초 시장에서는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도입 2년을 맞아 보증금을 한 번에 올리는 전세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가 급등하면서 예상을 빗나갔다. 금리 인상 여파에 전세대출 이자보다 저렴해진 반전세 등 보증부월세 수요가 늘어났고, 전세 세입자는 귀한 몸이 됐다.

여기에 더해 집값 하락과 거래절벽 장기화로 매매가 되지 않은 매물도 전세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22일 기준 605건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4679건에 비해 87%나 감소했다. 올해 2월(819건)에 이어 월간 역대 최저 거래량을 밑돌 가능성이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이달에도 122건에 불과하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급매물을 내놔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차라리 전세로 돌려 급한 불을 끄겠다는 집주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중개사무소에 전·월세 안내문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시장 전반에 전세 수요가 쪼그라든 가운데 신규 입주 물량이 몰린 곳에서는 역전세난도 벌어지고 있다. 동대문구 용두동에서는 1048가구 규모 '래미안 엘리니티'가 오는 31일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약 550가구가 전·월세 매물로 시장에 나왔다.

용두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두 달 전 9억5000만원 내외였던 전용 84㎡ 고층 전세 보증금이 최근에는 7억5000만원까지 내려왔다"며 "말 그대로 '세입자 모시기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도 "보증금 8억5000만원에 나왔던 전세 매물이 며칠 전 7억원으로 몸값을 낮췄지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달 1일 입주를 시작하는 관악구 신림동 '힐스테이트 뉴 포레'도 역전세난에 호가가 연일 하락하고 있다. 신림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8월 전세대란을 예상하고 9억~10억원대에 내놓은 전용 84㎡ 전세 매물이 많았다"며 "현재 같은 면적 전세 보증금은 8억원 정도로 내려왔다"고 귀띔했다. 이어 "전용 44㎡ 투룸 물량도 적지 않은 탓에 인근 빌라 전·월세 시장도 움츠러드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세입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가다 보니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세입자가 임차권 등기에 나서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세입자가 임차권등기를 하겠다고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4억5000만원에 집을 구매하고 3억원 전세를 줬다는 글 작성자는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처음에 강경하게 대응했더니 현재는 둘 다 감정이 격해졌다. 세입자 구하는 데 협조도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내달 1일 입주를 앞둔 관악구 신림동 '힐스테이트 뉴 포레'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보증금을 줄 수 없는 상황으로 세입자와 마찰을 빚고 있다는 집주인의 호소도 눈에 띈다. 한 누리꾼은 "등기부등본에 임차권이 설정되면 문제 있는 집으로 분류돼 세입자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큰소리를 쳤다", "어떻게든 대출받아 돌려줘야 한다"는 비판과 조언도 이어졌다.

임차권 등기는 세입자가 계약 만료일까지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전출하는 경우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 등기부등본에 보증금에 대한 권리를 기재하는 일이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보증금을 받기 어려워진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고민하고 있다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한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 계약이 만료된 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고 액수는 지난달 872억원(421건)으로 집계됐다. 금액과 건수 모두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최다를 기록했다. 상반기 사고액도 3407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 여파에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아파트 매매 및 전셋값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입주가 집중되는 곳은 기존 주택 매도 지연에 따른 미입주나 역전세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