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시선] 명당(明堂)

김진하 2022. 8.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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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양양군수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는 구전설화가 있다. 옛날에 효심이 지극한 형제가 있었다. 형은 용인에 살고, 동생은 어머니를 모시고 진천에 살았다. 그런데 형제는 어머니를 서로 모시고자 다툼을 벌였다. 결국 형이 진천 원님에게 가서 탄원했다. 효심이 지극한 형제를 본 진천 원님은 “살아서 모시는 것과 죽어서 모시는 것이 같으니,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진천에 사는 동생이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 산소를 용인에 써서 형이 제사로 모시도록 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머물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는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이처럼 용인은 명당 가운데 명당이다. 지리적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1시간 내에 위치하고 전형적인 남향의 지형을 이룬다. 고관대작(高官大爵) 치고 용인에 땅 없는 이가 없을 정도로 투기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용인 땅은 단골 메뉴로 등장하기도 한다. 일부 풍수학자들은 대통령 궁이 있을 만한 명당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하천도론(交河遷都論)’으로 알려진 파주 또한 명당으로 유명하다. 1612년(광해군 4년) 조정에서는 서울을 현재의 파주시 교하면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역적의 변란이 계속되어 민심이 동요되는 상황에서 지리학에 밝은 이의신은 서울 지역이 쇠하여 왕기(王氣)를 잃었으므로 교하로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왕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삼사(三司), 즉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명하여 파주 교하 일대의 지도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조사를 마친 후 천도의 찬부(贊否)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임진강의 치수가 관건이 되어 결국 천도는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파주는 이런 논의가 이루어질 만큼의 명당임이 분명하다.

지금 수도권에는 2000만 명이 살고 있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가운데 누구나 한번쯤은 치열한 삶 속에서 벗어나 명당을 찾아 산수 어우러진 곳에서 평온한 전원의 시간을 꿈꿔본다. 이러한 수도권 시민들의 욕구에 맞추어 서울을 중심으로 1시간대의 인근 지방은 모두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양양(襄陽) 또한 좋은 자리를 찾아 많은 이들이 이주해오며 명당 중의 명당이 된 지 오래다.

이런 명당 양양지역의 최우선 과제는 외래인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해 주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와 폐쇄라는 지적에서 벗어나 외래인을 인정하고, 문을 열기 시작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외래인을 지역민으로 동등하게 인정해 주면 오히려 그들이 더욱 봉사하고 헌신하지 않을까?

우리는 로마인들의 개방과 포용정신을 높이 살 필요가 있다. 로마는 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영웅인 로물루스가 남자 3000명을 데리고 세운 나라인데 후일 유럽을 다스리는 제국으로 발전했다. 그 중심에는 로마인들의 개방과 포용정신이 크게 작용했다. 그들은 타 부족을 정복하면 그날부터 그들을 똑같은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인정해주었다. 대표자에게는 오늘날의 국회인 원로원의 의석까지 주었다.

이는 형식적으로만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러했다. 로물루스가 죽은 후, 로마와 합병한 사비니족 중에서 그것도 원거주지에 남아있던 사람 중 가장 학식과 덕망이 높은 자를 2대 왕으로 초빙해 올 만큼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이러한 포용정신이 없었다면 로마는 없었을 것이다.

‘남대천의 은어가 날뛰면 작살을 맞는다’는 말이 있다. ‘잘난 척하면 죽는다’는 의미로 듣기만 해도 섬뜩하고 소름이 돋는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종교도 취향도 생김새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양양이라는 세계 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같이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외래인들이 양양 땅에 뼈를 묻고 싶은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피라미드는 굉장하지만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명당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진정한 명당은 마음의 울타리를 거두고 포용과 배려로 사랑이 넘치는 곳이다. 포용력이라는 가치에 대한 재편이 없이는 썩 좋은 자리인 명당(明堂) 양양에 살고 있는 사람도 내쫓는 형국이 되고 말 것이다. 금세기 최고 명당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형국이 초래될까 조심스레 염려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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