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한의원에 나타난 현인들

국제신문 2022. 8.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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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에는 노인 분이 많다.

'건강한 환자'라는 말이 역설적이지만, 가벼운 만성 통증을 가지거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예방 차원으로 한의원을 찾는 분들이다.

오랜만에 한의원 원장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며 그분들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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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에는 노인 분이 많다. 그중 연세는 많지만 건강한 노인 환자도 많다. ‘건강한 환자’라는 말이 역설적이지만, 가벼운 만성 통증을 가지거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예방 차원으로 한의원을 찾는 분들이다. 얼굴이 밝고 인상이 좋은 어르신들과 상담하다 보면 환한 깨달음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한의원에 나타나 원장에게 깨달음을 주셨던 현인(賢人)들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림= 서상균 기자


보약을 처방받으러 오신 70대 후반의 정정한 할아버지셨다. 기업체 대표로 오래 계셨던 이력 때문인지 옷차림도 깔끔하고 말씀도 점잖으셨던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말입니다.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둡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하고 다투는 걸 가급적 피해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으면 당신 말이 맞다고 그래요. 생각이 굳은 사람들끼리 논쟁을 해봤자 결론도 안 나고 내 인생에 득 될 것도 없어요. 결국 자기 생각만 옳다며 끝나요. 그러면 싸웠던 감정이 남아서 저녁 내내 기분이 나쁘기만 하고. 그래서 ‘당신 말씀이 맞소’ 하고 웃어 넘겨요.”

또 다른 할아버지 한 분의 건강 비결은 이랬다. “원장님 내가 이 나이까지 그래도 건강한 비결이 뭔지 압니까? 돈 가지고 다투지 않는 겁니다. 원장님도 한의원 하다 보면 돈 때문에 얽힐 일이 많지요? 저는요 고마 내가 손해 보고 맙니다. 그 돈 손해 안 볼라고 머리 굴려봤자 불안하고, 괘씸하고, 억울하고 결국 나만 손해에요. 잘 해결될 일이라면 처음부터 일어나지도 않아요. 그냥 문제가 생기면 내가 손해 보고 빨리 끝내자 하고 다짐합니다. 오랫동안 돈 안 갚는 사람한테는 내가 먼저 가서 갚지 말라캅니다. 어차피 못 받을 돈, 그 사람도 나도 마음 편하게 사는 거지요. 그라고 나면 편하고 잠도 잘 옵디다. 하하.”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할머니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나쁜 일은 절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내 건강 비결입니데이. 사람은 본디 남의 험담, 나쁜 뉴스에 귀가 솔깃하게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내 귀와 눈에 한 번 들어온 거는 절대 사라지지를 않아요. 어떤 계기가 되면 그게 딱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치더라고. 그래서 나는 나쁜 거는 절대 듣지도 보지도 않을라고 합니다.” 귀신 만화를 많이 본 아들이 밤마다 작은 소리에도 귀신이라며 무서워하는 걸 보면서 이 할머니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사람은 자주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강한 노인은 부정적인 사람과는 과감하게 인연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개한 세 분뿐만 아니라 진료실에서 본 건강한 노인 분은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무조건 잘될 거야’ 식의 긍정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쳐와도 받아들이는 긍정이다. 타고난 성품이 착해서 지나칠 정도로 자기 탓을 하거나, 반대로 자신이 겪은 괴로움을 모두 다른 사람 혹은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삶에 대한 부정이다. 이러한 부정은 몸과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반면 진료실에서 만난 현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기꺼이 수용하는 삶을 선택했다. 인생의 후반부에 그분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괴롭던 순간의 현명한 선택 덕분이리라.


개인 한의원을 했던 2009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의 세월 동안 많은 분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보니 그 이야기들 속에 보물이 있었다. 오랜만에 한의원 원장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며 그분들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아마 지금도 동네 한의원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얘기하며 행복하게 살고 계시지 않을까. 8년간 저와 한의원에서 만났던 모든 현인(賢人)이 여전히 건강하시길 기원해본다.

김영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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