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내달 총파업한다는데.. 소비자들 시선은 '싸늘'

허지윤 기자 2022. 8. 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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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은행 영업 시간 짧아 불편" vs 노조 "주 36시간 근무 시행하라"
은행 "자율적으로 결정 못 해"
금융노조 9월 16일 총파업 가결.. 찬성률 93.4%

“왜 이렇게 문을 빨리 닫나요? 은행 일 보기 너무 불편합니다.” (소비자)

“오후 3시 30분에 영업이 끝나도, 은행원이 퇴근하는 게 아니에요. 은행원도 휴가 쓰고 은행에 갑니다.” (시중은행 직원)

‘은행 영업·근무 시간’이 은행권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선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으로 은행 영업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불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은행 노사는 ‘주 36시간 근무’ 도입 등 근무 시간 단축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서울시내 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노조들이 속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이 오는 9월 16일 총파업에 나선다.

금융노조가 지난 19일 전국 39개 사업장에서 조합원 9만777명을 대상으로 쟁의 행위에 대한 찬성 반대투표를 진행한 결과, 투표에 참여한 7만1958명 가운데 6만7207명이 찬성표를 내 총파업이 가결됐다. 투표율은 79.27%, 찬성률은 93.4%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는 지난 2016년 이후 6년 만에 총파업을 단행할 예정이다.

파업에 나선 노조는 ‘주 36시간 근무(4.5일제 실시)도입’ 등 근무 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금융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은행 영업 시간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조의 ‘올해 임금 6.1% 인상’ 요구에 대해서도 일반 대중의 시선은 대체로 싸늘하다.

코로나19 이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던 시중은행 영업점은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거리두기 조치를 이유로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으로 영업시간을 줄였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 해제 이후에도 은행 영업 시간은 원상 복귀되지 않고 있다.

경기 성남에 사는 직장인 박 모(34)씨는 “최근 모바일로 할 수 없는 은행 업무 때문에 하루 회사 연차를 내고 영업 개시 시간에 맞춰 은행을 방문했는데, 이미 40명이 대기 중이었다”면서 “소비자에게 필요한 금융 혁신은 메타버스 도입 같은 대단한 게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정 모(31)씨는 “노조 요구대로 근무시간을 줄이면 소비자의 은행 업무 불편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은행 서비스의 질이나 이용자 편의성은 더 도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반면 은행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이번 파업이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오후 3시 30분에 영업이 끝난다고 해서 은행원의 일이 끝나는 게 결코 아니다”라면서 “오후 3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당일 시재 업무를 마감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은행원은 “영업 시간을 늘리면 은행원 퇴근 시간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사측이 인력을 대폭 늘리면 되지만 은행 기조가 영업 지점 및 인력 확대에 인색하기 때문에 근무 강도가 더 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과격한 설전으로 번지고 있다. 재직 중인 은행이 공개되는 공간임에도 일부 은행원들은 “맛집도, 병원도 줄 서서 기다리면서 은행에서 기다리는 건 왜 그리 불만이냐”, “바빠서 은행 일 못 본다는 건 핑계”라는 등 소비자를 향한 원색적인 글도 쏟아냈다.

이에 대해 각 은행은 은행 영업 시간 정상화는 개별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개별 은행이 나서서 결정하기엔 여러 부담이 따르는 이슈”라며 “노사 간 협상 결과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이 소비자의 불편을 덜고 노조 측 요구대로 근무시간을 단축하려면, 인력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비대면 시스템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은행들은 늘어나는 비용 대비 수익성을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은 이자이익을 거두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 영향으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대출 금리와 각종 수수료 등은 더 오를 수 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조합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은행의 용역업체 철저한 관리·감독, 인원 감축과 임금 저하 철회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사들이 디지털 금융으로 체제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고용·근무 안정성과 소비자의 서비스 만족도와 편의성에 대한 불만과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4대 금융지주가 이달 제출한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의 점포 수는 작년 3303개 지점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2754개 지점으로 줄었다. 은행들은 방문 고객이 적은 영업지점을 통폐합하는 한편, 직원 대신 디지털기기로 운영하는 무인점포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총파업 전후로 금융권의 노사 갈등은 고조될 전망이다. 은행 콜센터 용역업체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국민은행 용역업체의 관리·감독, 인원 감축과 임금 저하 철회 등을 촉구했다. 노조 관계자는 “내달 16일 총파업을 앞두고 이달 23일 수도권·기타지역, 25일 대구·경북지역, 내달 1일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금융노동자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파업을 결의한 금융노조의 올해 주요 요구안에는 ▲금융공공기관 자율교섭 보장 ▲산업은행 지방이전 반대 ▲적정인력 유지 ▲주 36시간 4.5일제 실시 등 근로시간 단축 ▲일반 정규직(6.1%)과 저임금직군(14.4%)의 임금격차 해소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개선 ▲재택근무시 사생활 보호와 근로조건의 결정 ▲남성 육아휴직 1년 의무화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3개월 확대 등 성평등 및 모성보호 확대 등이 담겼다.

내달 금융노조가 예고대로 총파업을 강행하면, 6년 만의 총파업이다. 2016년 9월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와 관치금융 철폐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당시 금융노조의 총파업 찬성률은 95%를 웃돌았으나, 실제 참여율은 저조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당시 파업에는 1만800명, 전체 은행원의 15%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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