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자유 위배" ..일본, 아베 국장 반대 여론 53%
도쿄도에서 연일 국장반대 시위
지난달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을 두고 일본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가운데 국장은 추모를 강요해 사상의 자유를 옥죄는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마아니치신문은 사회조사연구센터와 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찬성 응답은 30%, 반대는 53%로 나타났다고 22일 보도했다. 17%는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자민당 지지층의 66%가 국장에 찬성했지만 야당은 물론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지지층에서도 반대가 우세했다. 교도통신이 지난달 30~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국장 반대 여론은 53.3%로 찬성(45.1%) 여론을 웃돌았다.
일본 정부는 아베 전 총리 국장을 다음 달 27일 도쿄의 실내 경기장인 일본무도관에서 치를 예정이다. 1967년 사망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장례 이후 국장은 거의 반세기만이다. 역대 총리의 장례는 대부분 국민장, 내각·자민당 합동장 등의 방식으로 치러졌다.
국장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장이 결정됐으며 아베 전 총리를 신격화한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개헌 반대 단체들은 연달아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지난 20일 도쿄도에서 집회를 주최한 청년 모임 ‘선거 걸스’의 한 회원은 “국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국회 논의도 없이 국장을 결정했다.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거 걸스는 투표연령 하향 등 청년의 정치 참여를 목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집회에 참여한 한 여성 직장인(24)은 “아베 전 총리가 신격화돼버렸다”고 말했다. 자민당과 통일교의 유착 의혹도 국장 반대 여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6일 도쿄 신주쿠역에서 열린 국장 반대 집회에 참여한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77)는 “모리토모 가케 학원 의혹과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을 해명하지 않고 국장을 치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1000여명이 참석했으며 ‘민주주의는 국장을 거부한다’는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 등이 눈에 띄었다고 도쿄신문이 전했다. 도쿄도에서는 다음 달 1일에도 국장 반대 집회가 예정돼 있다.
전 총리의 국장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인문·예술 분야를 다루는 74개 출판사로 구성된 일본출판자협의회는 지난 12일 아베 전 총리 국장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에서 “특정비밀보호법이나 안보 관련법 등 아베 전 총리의 업적은 찬반이 크게 나뉜다. 이런 상황에서 국장 강행은 아베 전 총리를 찬양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며 “국장을 통해 조의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국장이 법령 근거 없이 추진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헌법학자인 기무라 소타 도쿄도립대 교수는 “국장은 법 앞의 평등에 위배된다”고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시민단체 ‘권력범죄를 감시하는 실행위원회’는 요코하마와 사이타마의 지방재판소에 아베 전 총리 국장 반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앞서 도쿄 지방재판소가 같은 내용의 가처분 신청에 각하 결정을 하자 다른 지역의 법원에도 신청한 것이다. 이 시민단체는 국장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확인받겠다는 방침이다.
국장 절차를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다. 자민당은 아마리 아키라 전 자민당 간사장에게 아베 전 총리의 추도사를 맡기려 했으나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철회했다. 일본에서 현역 정치인이 사망하면 추도사는 같은 지역구의 라이벌 정치인이 맡는다. 화합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담긴 관례였다. 관행대로라면 야당 정치인이 추도사를 맡아야 한다. 하지만 자민당이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원한다는 이유로 비리 의혹을 받는 인물이자 아베 전 총리의 오른팔과 같았던 아마리 전 간사장에게 맡기려 하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서 추도사를 맡을 사람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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