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면죄부 주는 '공소기각' 속출..'처벌 불원 조항' 논란 지속

김혜지 기자 2022. 8.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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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 우려" vs "추가 피해 막는 효과"
전주지검 "구체적 기각 사유 통계 파악 어려워"
ⓒ News1 DB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 #. A씨(36)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분 단위로 아내에게 욕설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로 협박했다. 2020년 8월부터 별거 중이던 아내가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하자 화가 나서다.

그런데도 아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급기야 지난해 12월19일 아내가 사는 집에 찾아가 주먹을 휘두르고 현관문을 부쉈다.

아내의 신고로 A씨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정작 이 법으로는 처벌받지 않았다. 상해와 재물손괴 혐의 등으로만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 B씨(22)는 2개월간 동거하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자 '스토커'로 변했다. 지난해 1월30일부터 3월1일까지 전 여자 친구에게 50여 차례에 걸쳐 '다시 만나 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전화로 계속 괴롭혔다. 심지어 자해한 사진을 전 여자 친구에게 보내고, 부모 집까지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지난 2월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B씨에게 '두 달간 피해자(전 여자 친구)나 그 주거 등으로부터 100m 이내에 접근하지 말고 휴대전화 또는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지 말라'는 잠정조치 결정을 내렸지만, B씨는 이를 어기고 또다시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다.

B씨도 스토킹 처벌법 위반으로 법정에 섰지만, 재판부의 '공소 기각' 선고로 처벌은 면했다.

A씨와 B씨 모두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지만,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것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여서다. 공소 기각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공소권이 없는 경우 법원이 공소를 무효화해 소송을 종결하는 재판을 말한다.

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가해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공소 기각' 사례가 속출하면서, 주된 기각 사유로 꼽히는 '처벌 불원' 조항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부부·연인이거나 회사 동료, 지인 등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실제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설사 어렵게 재판까지 가더라도 보복이 두려워 막판에 가해자에게 처벌 불원서를 써주고 합의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한다.

권지현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소장은 "스토킹 처벌법은 피해자가 주로 여성인 데이트 폭력 등을 예방하기 위해 논의됐던 법인데 채무 관계에서 벌어지는 원치 않는 접촉 등으로 인한 범죄까지 포괄하고 있어 애초 법 제정부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대부분이 가해자 주변인과 엮여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합의에 이르는 등 '처벌 불원' 조항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스토킹 처벌법의 '처벌 불원' 조항 폐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우아롬 변호사는 "가해자들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면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토킹 처벌법은 반의사 불벌죄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민종 변호사는 "처벌 불원 조항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가해자가 피해 회복에 노력하거나 다시는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등 추가 피해를 막는 효과가 있다"며 "기소되면 무조건 처벌받는 상황에서는 가해자가 수사 단계부터 혐의를 극구 부인하거나 보복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

전주지방검찰청./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이와 관련, 최원석 전주지검 인권보호관 겸 전문공보관(부장검사)은 22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강압에 의한 합의로 처벌 불원서를 냈다면 뒤늦게라도 처벌 불원서에 대한 취소가 가능하다"며 "사기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주변인 등의 강박에 의해 고소를 취하할 수 있지만, (스토킹 범죄의 경우) 처벌 불원서까지 제출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합의가 아닌 스스로 판단했다고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여성계는 그간 "스토킹 처벌법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외려 가해자인 스토커를 보호하는 법으로 전락했다"며 법 개정을 촉구해 왔다.

이에 법무부는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 강화' 여론을 반영해 지난 17일 살인·성폭력 등의 범죄에만 부착할 수 있는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스토킹 범죄자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스토킹 범죄가 감금·폭행·살인 등 다른 강력 범죄로 이어지거나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스토킹 범죄는 전국적으로 느는 추세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월별 스토킹 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11월 277건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 3월 기준 2369건 발생했다.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전북에서 스토킹 범죄로 입건된 건수는 모두 180건으로, 이 중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125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실제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지검은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전주지검에서 해당 법률 위반으로 기소한 건수는 모두 41건"이라고 밝혔다.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더욱 줄어든다. 전주지법에서 현재까지 스토킹 범죄 관련 1심 선고가 나온 건 3건뿐이다. 이마저도 피해자의 '처벌 불원'으로 공소 기각된 사례가 2건이라고 전주지법은 전했다.

하지만 검찰은 현재 스토킹 범죄 관련 공소 기각 통계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전주지검은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혀 공소 기각된 통계는 따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공소 기각될 경우 항소 또는 상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검찰 입장에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게 전주지검 측 설명이다. "공소 기각 사유가 공소 시효 초과부터 피고인 사망까지 무려 10가지에 달하는 상황에서 스토킹 처벌법 관련 '처벌 불원'만 따로 보려면 사건마다 공소 카드를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스토커를 법정에 세우고 이른바 공소 유지를 통해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검찰이 피해자 보호와 재범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최 공보관은 "피해자 처지에선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 10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까지 축적돼야 법령에 대한 보완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다"며 "강간죄의 경우에도 친고죄가 폐지될 때까지 40년 정도 걸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죄 등도 반의사 불벌죄에 속하는데 특정 범죄(스토킹 범죄)만 따로 공소 기각 사유를 분류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 뿐더러 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할 문제"라고 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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