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한국병합늑약

역사학자 정재정은 “마치 비상계엄 상태와 같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언론과 출판이 엄격히 통제되었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은 그 사실조차도 잘 알지 못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한국 병합이 발표되자 각 신문이 기념호를 발행하고, 집집마다 일장기를 내걸어 축하했다”(‘교토에서 본 한일통사’)고 한다.
시인이자 국문학자 조지훈에 따르면 8월16일 데라우치가 이완용에게 병합안을 제시한 이후 8월22일 어전회의를 열어 오후 3시에 병합안을 결정하고 오후 5시에 조인을 끝냈다. 8월29일 이완용 등이 양국조서(讓國詔書)를 만들어 순종황제에게 바치고 옥새를 위협으로 찍게 하니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한국민족운동사’). 이날 두 나라 황제의 조서와 함께 공식 공포됐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고종태황제는 덕수궁 이태왕으로, 순종황제는 창덕궁 이왕으로 격하됐고 데라우치는 조선총독에 임명됐다.
‘조선귀족령’에 따라 귀족 75명에게 작위가 주어졌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1907년 사법권·행정권을 빼앗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등 국권 침탈에 모두 관여한 이완용은 백작이 됐다가 훗날 후작으로 승격됐다.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침략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일본도 이 나라에서 전래되어 온 지배 체제를 활용하여 지배층에게는 어느 정도의 특권을 존속시키며 그들을 이용하고, 또 한편으로 그들과 더불어 백성에 대한 수탈을 꾀하려 했던 것”(‘장강일기’)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일제 식민통치를 무려 35년 간 견뎌야 했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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