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바이든의 조급증

박영준 2022. 8. 2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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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소비자물가상승률 전월比 감소
바이든 '제로 인플레이션' 발언 논란
경제 침체·중간 선거 위기감 반증
尹정부, 경제문제 인식은 하고 있나

지난 16일 오전 방문한 백악관은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식 만찬장인 스테이트다이닝룸에 방송 장비가 설치되고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여름 휴가 기간, 한산하던 백악관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백악관에서 550마일(약 880㎞)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키아와섬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에 돌아왔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와 부자 증세 등을 담은 이른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서명하고, 법안의 의미를 설명하는 연설을 하고 다시 휴가를 떠났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최근 40년 만에 최고 수준의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며 경제 분야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통과는 가뭄에 단비 같았을 것이다. 법안 통과도 통과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성과 홍보도 급한 상황이다. 주말마다 빠짐없이 델라웨어주 자택을 찾고, 지인의 고가 저택에서 ‘공짜 호화 휴가’를 즐긴다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바이든 대통령이 휴가 도중 백악관에 복귀한 것을 두고 경제 문제에 대한 ‘조급증’이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포함해 반도체산업 육성 법안 처리를 끌어내고, 휘발유 가격을 안정시켰다면서 “며칠간 바빴다” “내가 해냈다”고 자화자찬한 것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물가상승률 결과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문제적’ 발언은 경제 문제에 대한 조급증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미국 노동부가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발표한 지난 10일 바이든 대통령은 “7월에 우리 경제가 0%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제로(0)”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달에 어떤 물건의 가격은 올랐지만 다른 물건의 가격은 같은 금액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지난달 인플레이션이 0%가 됐다”면서 “나의 경제 계획이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덧붙였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하루아침에 0%가 됐을 리 만무하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을 기록했다. 전월인 6월 9.1%보다 상승폭이 크게 감소하면서 물가 상승이 정점을 찍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제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어떻게 나왔을까. ‘전월 대비’, 그러니까 6월 대비 7월의 물가상승률이 0%를 기록한 점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세가 꺾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정도가 지나쳤다.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0%를 수차례 강조하면서도 ‘전월 대비’라는 언급 역시 하지 않았고, 0% ‘증가’라는 설명 없이 0% 또는 인플레이션 제로라고만 표현하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트위터에 ‘7월 인플레이션이 0%’라는 똑같은 글을 게시하자 경제전문가와 언론인 등이 거짓말이라는 비판 댓글을 쏟아냈다.

한 칼럼니스트는 정치전문매체 더힐 기고에서 “3쿼터까지 42대0으로 지고 있던 팀이 4쿼터에 두 팀 모두 득점을 못하고 42대0으로 경기가 끝나자 4쿼터 결과만 놓고 비겼다고 우기는 꼴”이라고 비꼬았다. 공화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백악관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개소리(BS·bullshit)”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전월 대비 물가 상승률이 0%인 것은 사실이고, 물가 상승세가 꺾이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이 없는 달”이라고 썼다. 바이든 행정부가 고용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바닥을 치던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반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 침체에 대한 위기감도 읽힌다.

통계 해석을 두고 전월 대비냐, 전년 동월 대비냐 하는 논란은 한국에서도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단골 소재다. 선거를 앞두고 성과 홍보를 위해 무리수를 두고, 여야가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것도 닮았다. 다만 윤석열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처럼 경제 문제에 조급증을 내고 있는지는 물음표가 남는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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