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칼럼] 정당정치 훼손하는 습관적 비대위 체제

2022. 8. 2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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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3당 모두 비대위 체제 가동
당내 갈등·국정동력 상실 악순환
보·혁 정치 그만.. 공천혁신 필요
정당 민주주의 시스템 구축해야

여야 3당 모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하는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이다. 대선에 승리한 국민의힘조차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 만에 비대위를 구성했고, 대선과 지방선거에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3개월 만에 두 번째 비대위를 가동하고 있다. 정의당은 지선 패배로 비대위를 꾸려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과연 비대위가 필요한 절박한 상황인지 공감대가 부족함에도 이처럼 관례적으로 비대위 체제를 꾸리는 것은 정당 스스로 허약한 체질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당의 조직과 운영이 예측 가능한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지 않고 특정인 혹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칙적으로 움직이면 당 내부의 권력 다툼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선거에 승리하더라도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재명을 위한 정당으로 변모하며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대선에 대패한 후보지만 재·보선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고 이제는 당권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당헌 80조의 개정 혹은 삭제를 추진하고 있다.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 시스템이 아닌 개인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연이은 세 번의 선거에 패배한 원인을 잊어버리고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선에 승리해 여당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100일 정도에 불과하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20%대에 머물러 있고 이준석 전 대표를 둘러싼 당내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당의 권력이 대통령과 그 측근에 집중되다 보니 이 전 대표는 포용되지 못하고 분란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삼권 분립이 원칙인 대통령제에서 여당은 입법부의 주체로서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오히려 대통령에 종속되어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힘의 내홍은 본질적으로 당내 민주주의 시스템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당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지 못하고 특정 세력에 의해 최고위원회 생존과 비대위 구성이 결정되는 변칙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은 현재와 같은 여당의 위기는 소위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과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고 이 전 대표의 책임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대표 징계와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당내 민주주의가 국민 눈높이에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당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 소재 공방과는 별개로 이 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던진 몇 가지 화두는 정당정치 개혁을 위해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우선 과도하게 양극화한 보·혁 갈등의 정치를 바꾸는 것이다. 보수정당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당내 논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증세가 반드시 진보만의 가치가 될 수 없고 서민 경제와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 동의를 구해 실행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정당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배신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내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토론이 가능해야 제대로 된 민심을 정치와 정책에 담아낼 수 있다. 때로는 일사불란하고 통일된 정책 입장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다양한 의견 개진을 보장해야 권위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 전 대표가 던진 세 번째 시사점은 예측 가능한 공천시스템의 필요성이다. 어쩌면 최근 여야 당내 갈등이 첨예한 근본 원인은 2024년 총선 공천을 둘러싼 헤게모니 장악일 것이다. 그동안 선거에 임박해야 공천이 마무리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항상 진행형이고 분당과 창당의 역사 또한 반복되고 있다. 정당정치 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해 최소한 선거 1년 전에 공천 방식을 확정하고 이후에는 변경이 불가능하도록 공직선거법에 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특정 인물 중심의 권위주의적 계파 정치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습관적인 비대위 체제 가동은 위기에 처한 우리 정당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극화된 정치 구조와 권위주의적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개혁하고 예측 가능한 공천시스템을 구축해야만 정당정치가 민심을 대변할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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