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지원하면서..갤S·아이폰 '셀프 수리' 국내는 왜 막나
삼성, 이달부터 갤S20·S21·탭S7+ 대상…공식센터보다 저렴
애플은 이미 지난 4월부터…부품 비싸고 종류 복잡해 ‘뭇매’
유럽은 ‘수리 용이성’ 논의 단계, 국내는 ‘수리권’ 법률도 없어
삼성전자·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최근 미국에 ‘자가 수리’ 방법을 공개하고 소비자에게 공식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서구권을 중심으로 비싼 스마트폰을 ‘수리해서 쓸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 업체는 국내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 국내에서도 수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부터 미국에서 갤럭시S20, S21, 탭S7+ 모델을 대상으로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글로벌 온라인 수리업체인 ‘아이픽스잇(Ifixit)’을 통해 삼성전자 정품 부품과 수리 설명서, 수리 도구 등을 제공한다. 삼성전자가 자사 혹은 협력사 서비스센터가 아닌, 사설 수리업체에 정품 부품을 판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컨대 갤럭시S21 사용자가 고장 난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부품과 수리 도구가 포함된 167.99달러(약 22만원)짜리 ‘자가 수리 키트(핀셋, 드라이버, 오프너,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를 사서 설명서를 보고 따라하면 된다. 미국의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S21 디스플레이 교체 비용이 199달러(약 26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30달러 정도 싼 편이다.
앞서 애플도 올해 4월부터 아이폰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판매하는 ‘셀프 서비스 리페어’를 시행했다. 다만 책정된 부품가가 서비스센터 수리 비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애플은 점차 서비스를 안정화해 나가며 올해 말에는 유럽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부족하나마 이들 기업이 미국에서 자가 수리를 지원하기 시작한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소비자의 자체 수리’ 등을 보장하는 ‘미국 경제의 경쟁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수리권’을 옹호하는 이들은 제조업체가 자사 서비스센터에서만 수리할 것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독점해 비용을 높이고, 부품이 없거나 차라리 새 제품을 사는 게 돈이 덜 든다는 식으로 새 제품 구매를 강요해 구제품 폐기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 가격이 비싸지자 1~2년 보증기간 이후에도 수리해 쓰려는 수요가 높아진 것도 ‘수리권’이 등장한 또 다른 배경이다.
나아가 제조사가 ‘자가 수리’를 지원하더라도 수리하기가 복잡하다면 사실상 수리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란 지적도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는 배터리 교체가 어렵기로 유명한 스마트폰이다. 아이폰과 달리 갤럭시는 당기면 접착 테이프가 쉽게 떼어지는 풀탭이 없는 데다, 강하게 접착돼 있어 배터리를 제거하기가 어렵다.
삼성전자가 미국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결합 부품도 교체하려면 뒷면을 열어 NFC 안테나와 스피커, 5세대(G) 통신 안테나, 레이저 AF 모듈 등을 제거한 뒤, 전면부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케이블 등을 뽑는 등 총 41단계를 거쳐야 한다. 다시 역순으로 조립하는 것까지는 총 82단계다. 워싱턴포스트는 “수리를 허용할 의지가 있다면, 애초에 수리하기 쉽도록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이 애플보다 나은 점은 아이폰에는 모양이 제각각인 4가지 나사용 드라이버가 필요하지만, 갤럭시는 업계 표준 십자드라이버를 쓰면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유럽연합(EU)은 제조사가 설계 단계에서 ‘수리 용이성’을 반영하도록 하는 법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유럽의 40여개 조직은 “스마트폰의 배터리 등 수명이 짧은 부품에 대해서는 교체가 용이하도록 기기를 설계할 것을 제조업체에 강제해달라”며 유럽의회와 EU 집행위원회, 유럽 이사회 등을 압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정부 부처와 제조사들은 “제품 개발에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자가 수리 시 배터리 폭발 등 위험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이에 반대한다. 삼성전자와 애플도 국내에는 ‘자가 수리 키트’나 ‘정품 부품’ 판매 등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수리권은 단순히 자가 수리 키트를 지원하는가 여부가 아니라, 소비자가 제품을 오래 쓸 수 있도록 제조업체가 지원하는지가 핵심”이라며 “국내에서도 다양한 전자제품의 수리 설명서와 부품을 제공받기 위한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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