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점프라도 더 높이 보이게.. 엄청 연습했죠"

이강은 2022. 8. 21. 19: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년 만에 고국무대 선 발레리노 김기민
러 '마린스키의 별'로 명성
'발레 슈프림' 갈라 공연서
중력 거스른 듯 환상 연기
서양인보다 못한 신체조건
테크닉 등 장점 키워 극복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아"
“(러시아에 머물지만) 늘 한국 무대에 서길 바라고 어떤 작품으로든 한국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평소 친한 사이인 각 발레단 스타급 무용수들과 함께하는 갈라 무대로 좋은 에너지를 한국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기뻐요.”
239년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유일한 동양인 수석무용수이자 ‘간판스타’ 발레리노) 김기민이 지난 18∼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발레 슈프림 2022’ 갈라 공연에서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를 하던 중 힘차고 우아한 도약을 하고 있다. 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제공
‘발레 슈프림 2022’ 갈라 공연을 위해 약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간판스타’ 김기민(30)은 공연을 앞두고 지난 16일 인터뷰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레 슈프림 2022’ 갈라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발레 페스티벌의 갈라 무대처럼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 발레 갈라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지난 18~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 대극장에서 진행된 갈라 공연은 김기민의 소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20일 오후 6시 마지막 공연 때도 그랬다.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김기민과 파트너인 영국 로열발레단 간판급 발레리나 마리아넬라 누녜즈 등 세계적 무용수들이 환상적인 춤과 연기를 보여줬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전 수석 무용수 알리나 코조카루와 최초 한국인 단원 최유희,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도로테 질베르,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이사벨라 보일스턴,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줄리언 매케이,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프리드만 포겔, 다닐 심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마이아 마카텔리를 비롯한 해외 명문 발레단 무용수 16명과 국내 양대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출신 등 모두 19명이 ‘해적’,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오네긴’ 등 유명 작품들의 하이라이트 독무와 2인무(파드되)를 공연해 갈채를 받았다.

특히 각각 1부와 2부 마무리 하이라이트를 책임진 김기민·마리아넬라 누녜즈의 ‘해적’, 다닐 심킨·마이아 마카텔리의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는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짧고 강렬한 갈라 공연의 특성상 그토록 황홀한 춤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마치 최고급 요리를 살짝 맛만 보게 하고 치워버린 것처럼.

그럼에도 중력을 거스른 듯 뛰어올라 우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몸놀림으로 관객 탄성을 자아낸 김기민은 팬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그는 1783년 설립돼 고전 발레의 꽃을 피운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유일한 아시아인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는 발레계 월드 스타다. 마린스키 단원은 270명가량으로 수석무용수는 김기민 포함 13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2011년 아시아인 발레리노 최초로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하고, 2015년 최연소(23) 수석무용수가 된 김기민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201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았고, 수석무용수라 해도 뛰어난 실력은 물론 대중적 인기도 있어야 자기 이름을 걸고 서는 단독 무대를 2019년과 지난해 두 차례나 선보였다. 그야말로 마린스키 극장의 ‘간판’으로 티켓 값도 가장 비싸지만 금방 팔려나간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재능을 꽃피우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밑바탕이 됐다.
‘해적’ 갈라 공연 중인 김기민(왼쪽)과 마리아넬라 누녜즈 모습. 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제공
그는 인터뷰에서 장점은 더 부각하고 서양 무용수보다 신체 조건이 달리는 단점은 가리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고 했다. “나만의 장점인 표현력이나 테크닉, 점프, 음악성 등을 더 크게 부각하려 많이 노력했고, (서양 무용수에 비해) 같은 점프를 하더라도 더 가볍게 높이 뛰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습을 엄청 했습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아요.”

발레 무용수는 보통 28∼34세가 전성기이지만 김기민은 42∼46세를 전성기 목표로 잡고 매일 근력운동을 하는 등 체력 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다. 마린스키 극장의 총감독인 세계적 지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탓에 겪는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없을까. 김기민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간략히 언급했다. “예술과 정치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쟁은 무조건 빨리 끝나야 하고요. 솔직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해외 언론에서 (러시아에 남은) 저를 공격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전쟁과 관련한) 예술인 각자의 선택을 편견 없이 존중합니다.”

김기민은 한국 발레 교육 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치면서, 국내외 발레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무용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 발레 선생님들 수준은 정말 높은데 입시 때문에 아이들이 시험에만 맞춰진 발레를 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왜 발레를 하고 싶어하는지 꿈을 꾸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기본기를 충실히 다질 수 있는 교육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 무용수가 되겠다는 욕심보다 한국이나 세계 발레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무용수가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저로 인해 윗세대나 다음 세대가 좋은 영향을 받는 무용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