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점프라도 더 높이 보이게.. 엄청 연습했죠"
러 '마린스키의 별'로 명성
'발레 슈프림' 갈라 공연서
중력 거스른 듯 환상 연기
서양인보다 못한 신체조건
테크닉 등 장점 키워 극복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아"
지난 18~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 대극장에서 진행된 갈라 공연은 김기민의 소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20일 오후 6시 마지막 공연 때도 그랬다.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김기민과 파트너인 영국 로열발레단 간판급 발레리나 마리아넬라 누녜즈 등 세계적 무용수들이 환상적인 춤과 연기를 보여줬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전 수석 무용수 알리나 코조카루와 최초 한국인 단원 최유희,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도로테 질베르,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이사벨라 보일스턴,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줄리언 매케이,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프리드만 포겔, 다닐 심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마이아 마카텔리를 비롯한 해외 명문 발레단 무용수 16명과 국내 양대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출신 등 모두 19명이 ‘해적’,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오네긴’ 등 유명 작품들의 하이라이트 독무와 2인무(파드되)를 공연해 갈채를 받았다.
특히 각각 1부와 2부 마무리 하이라이트를 책임진 김기민·마리아넬라 누녜즈의 ‘해적’, 다닐 심킨·마이아 마카텔리의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는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짧고 강렬한 갈라 공연의 특성상 그토록 황홀한 춤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마치 최고급 요리를 살짝 맛만 보게 하고 치워버린 것처럼.
발레 무용수는 보통 28∼34세가 전성기이지만 김기민은 42∼46세를 전성기 목표로 잡고 매일 근력운동을 하는 등 체력 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다. 마린스키 극장의 총감독인 세계적 지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탓에 겪는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없을까. 김기민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간략히 언급했다. “예술과 정치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쟁은 무조건 빨리 끝나야 하고요. 솔직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해외 언론에서 (러시아에 남은) 저를 공격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전쟁과 관련한) 예술인 각자의 선택을 편견 없이 존중합니다.”
김기민은 한국 발레 교육 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치면서, 국내외 발레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무용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 발레 선생님들 수준은 정말 높은데 입시 때문에 아이들이 시험에만 맞춰진 발레를 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왜 발레를 하고 싶어하는지 꿈을 꾸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기본기를 충실히 다질 수 있는 교육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 무용수가 되겠다는 욕심보다 한국이나 세계 발레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무용수가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저로 인해 윗세대나 다음 세대가 좋은 영향을 받는 무용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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