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탈인간]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한겨레 2022. 8. 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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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간다는 건 뭘까? 그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희망을 나 아닌 남에게서 찾는 것이다.

단지 너무도 중요하고 긴급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스스로 희망이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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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탈인간]

스페인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전세계에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동시에 벌어진 2019년 11월29일(현지시각) 포르투갈 리스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 청소년이 지구를 구해달라는 ‘에스오에스’(SOS)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리스본/AP 연합뉴스

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늙어간다는 건 뭘까? 그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앉아서 찾는 것이다. 희망을 나 아닌 남에게서 찾는 것이다. 아니 찾지도 않으면서 관전평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일이 진심으로 걱정돼 무슨 행동이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겨 거리로 나가는 대신, 그렇게 나선 이들을 치기 어리거나 한심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태극기 부대도 거리로 나가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 부대의 문제는 그들의 늙음이 아니라 태극기다.)

늙음에 대한 자각이 머리를 스친 것은, 말라리아약을 처방받기 위해 찾은 리스본 열대병연구소 대기실에서 우연히 텔레비전 뉴스를 봤을 때였다. 리튬광산 반대 시위대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수년 전 <인류와 환경> 수업에서 만났던 콘스탄사였다. 그녀와 교정에서 포르투갈 북부 바호주 리튬광산에 관한 대화를 나눴을 때만 해도,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는 비슷했다. 포르투갈을, 유럽을, 전세계를 점점 옥죄는 기후위기, 그에 대한 대응이 화석연료 퇴출에 집중되면서 리튬 같은 광물 채굴은 미래 녹색산업으로 포장되는 현실, 스마트폰 사용 증가에 비례해 폭발적으로 느는 리튬 수요, 그 광산 때문에 황폐해지는 지구촌 이곳저곳, 이에 반대하는 소수의 시민운동…. 이 모든 걸 알게 된 뒤 내가 아무것도 안 한 사이, 그녀는 현장으로 달려가 저항운동의 일부가 돼 있었다. 화면에서 그녀를 목격한 그 1초가 뇌리를 떠나지 않고 거울이 되어 나를 비췄다. 지난 몇년간 쌓여온 무력감이 나를 겹겹이 감싸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네가 발로 뛰던 시간 동안, 난 기후위기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소식들이 밀려올 때마다, 남은 인류애마저 사라진다며 한탄만 했지. 우리가 다 너처럼 한다면, 각자의 안전지대에서 한발짝씩 나와 주관적인 기준에서라도 급진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들이 모인다면, 적어도 1968년보다 큰 전세계적 움직임이 형성될 텐데. 왜들 못 그러지? 바빠서? 코가 석자라서? 하지만 콘스탄사, 너는 한가했나? 너 역시 바빴고, 여유가 없었고, 무용수가 되고픈 꿈도 있었지만, 이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을 외면하지 않은 거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않았지.

지금 기후위기는, 집단행동이냐 집단자살이냐의 갈림길에 있다고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 거야. 그래, 과격한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너와 같은 포르투갈인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야. 위기란 말이 무색한 행태를 보여주는 인류, 특히나 책임이 막중한 이들을 보면, 난 페루의 아마존 원주민에 관한 소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이야기꾼>이 생각나. 깊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아주 작은 상처에도 삶의 의욕을 잃고 강변에 널브러져 죽기만 기다리는 마치겡가족의 이야기. 적어도 그들은 진짜 생존의 궁지에 몰리기라도 했지, 우린 해결책을 알면서도 그 과업의 크기에 압도돼 비관에 빠져 있어. 기후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질수록, 탈탄소화만으로는 부족해 현대 산업을 뜯어고치지 않고는 해결 못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을수록, 비관·방관론자는 점점 늘겠지. 아니 사실 지금도 충분히 팽배해 있지. 너는 어떻게 낙담과 냉소와 체념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고 희망을 택했어?

그렇게 혼자 물으면서도, 이미 답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는 희망을 의식하지도, 굳이 찾지도 않았으리라. 단지 너무도 중요하고 긴급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스스로 희망이 된 것이리라. 이것이 내가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남은 건 어떤 행동이냐뿐이다.

(제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사르 바예호의 시집 제목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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