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유럽行 가스관 또 잠근다..에너지 대란에 전세계 각자도생

김덕식 2022. 8. 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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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에너지안보 위기
가스 공급망 흔들어 제재 보복
이달말 수리 핑계로 3일간 중단
가뭄·폭염 등 이상기후도 악재
겨울 앞두고 에너지 확보 총력
EU, 가스절약 비상계획 발효
獨은 탈원전 계획 일단 보류해
노르웨이 등 "에너지수출 제한"

◆ 우크라전쟁 6개월 ◆

독일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커진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동원하고 있는 가운데 베를린시는 지난달 말부터 전승기념탑을 포함한 200여 개 역사 기념물의 야간 조명을 껐다. 지난 6일(현지시간) 조명이 꺼진 전승기념탑 모습. [로이터 = 연합뉴스]
일본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에도 '사할린-2' 프로젝트에 계속 참가하겠다고 밝힌 것은 에너지 확보가 시급한 과제라는 판단 때문이다. 러시아와 가스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일본 전력회사들은 이와 별개로 겨울용 추가 에너지 선적분을 구매하기 위한 협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는 일본 정부가 올겨울 전력공급이 빠듯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비해 전력기업에 겨울 전 재고를 비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달 말 에너지 확보를 위해 중동 순방에 나설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반면 러시아에 천연가스를 의존하는 유럽은 전방위적인 대러 제재로 에너지 위기를 맞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에너지난이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폭염과 가뭄까지 겹친 유럽은 수력·원자력발전이 차질을 빚으면서 에너지 부족 우려가 더욱 높아지자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4개국은 새로운 가스관 사업 논의에 착수했다. 이탈리아는 알제리와 가스 공급 확대 협력안에 서명했다. 독일은 탈원전 기조를 폐지하고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등 에너지 수급 정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지만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러시아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독일은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그면 3개월도 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수급을 보조하려는 미국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9달러대로 급등하면서 14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쟁 발발 이후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물량 중 70% 이상을 유럽으로 보내면서 미국 내 공급 우려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의 가스 위기가 셰일가스로 15년간 이어진 미국의 가스 풍요 시대를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에너지 부국인 노르웨이와 호주는 자국 에너지 안보를 위해 에너지 수출 제한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달 말 정비를 이유로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 중단을 밝혔다. 정비작업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전에도 수리를 이유로 가스 공급량을 대폭 줄인 적이 있어 유럽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완전 중단할 것에 대비해 내년 3월까지 최근 5년간 평균치 대비 가스 사용을 15% 줄이는 비상계획에 돌입했으나 강제성이 없어 효과에 의문이 들고 있다.

기후변화도 유럽 에너지난에 기름을 부었다. 올여름 유럽을 강타한 가뭄과 폭염이 경제 각 부문에 영향을 주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 공급에도 예상하지 못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원자로 냉각에 사용되는 강물의 수온이 폭염으로 올라가면서 원자력발전소가 일시적으로 가동을 축소했다.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을 결정한 독일에서는 내륙 수운의 대동맥인 라인강 수위가 떨어지면서 석탄 운송이 지장을 받고 있다. 석탄 운송 화물선은 수송 용량의 3분의 1가량만 운반이 가능한 상황이다.

국민들의 생활 속 불편도 커지고 있다. 독일 정부는 10월부터 기업과 가정에 가스 사용 부담금을 추가로 부과하기로 하면서 4인 가구 기준 연간 484유로를 더 떠안게 됐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변화부 장관은 "부담금을 도입하지 않으면 독일 에너지 시장은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콘월 인사이트는 에너지 요금 상한이 현재 연 1971파운드에서 10월 3582파운드로 높아지고 내년 1월에는 연 4266파운드로 더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차기 총리 유력 후보인 리즈 트러스 외무부 장관은 최근 "영국이 혹독한 겨울을 맞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독일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5% 넘는 가파른 상승률을 보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은 7월 PPI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2% 올랐다고 발표했다. 독일 PPI 상승을 이끈 것은 에너지 가격이었다. 천연가스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63.8%나 급등했고 전기요금은 같은 기간 125.4% 상승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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