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이효석문학상] 심각한 죽음을 맑고 밝게 갈무리하는 놀라운 상상력

2022. 8. 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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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표현에 절로 미소가
완독 후 눈물짓게 하는 매력

◆ 제23회 이효석 문학상 / 최종 심사평 ◆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오정희 소설가(가운데)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구효서·편혜영·오정희 소설가, 김동식·이경재 평론가. [이충우 기자]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치열한 예술혼을 가진 작가들의 빼어난 작품이 여러 편이어서 심사는 고되다기보다 즐겁고 보람찬 시간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여섯 편의 작품이 모두 고유한 개성으로 환하게 빛나는 가운데,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를 제23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김지연의 '포기'는 독특한 음색으로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의 일상과 감각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었다. 위수정의 '아무도'는 불륜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다루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위수정의 불륜은 정념이라는 뜨거운 열을 속에 깊숙이 감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러한 특징은 뜨겁지는 않지만 화상을 남길 정도로 치명적인 드라이아이스의 이미지에 압축돼 나타난다. 이주혜의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는 코로나 소설이라고 할 만큼 우리가 지난 3년여간 경험해온 코로나 시대의 풍경이 실감 나게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동시에 코로나로 감춰진 관계의 균열과 적대를 여성 혐오의 문제와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정한아의 '지난밤 내 꿈에'는 한센병력을 가진 할머니로부터 시작해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이야기다. 그릇된 통념과 남성적 폭력에 의해 상처받은 여성들이 끝끝내 삶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분투하는 가운데, 나름의 보상과 해원에 이르는 과정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은 소설의 정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만 년 후에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현대소설의 샘플을 보여달라고 할 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소설로서 갖춰야 할 모든 장점을 갖춘 작품이었다. 앵무새와 나누는 우애의 시간을 통해 상상적인 방식으로 딸과 화해하는 과정, 혼자 사는 삶과 더불어 사는 삶의 아이러니적 관계에 대한 천착 등이 심사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는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저승사자에 해당하는 '가이드'가 망자의 여행을 이끄는 이야기다. 자살이라고 해도 무방한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이토록 맑고 밝은 상상력으로 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특정한 문장이나 대목을 뽑아내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작품 전체가 온통 개성적인 양질의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그러한 장점이 단순한 휘발성 재미로 소모돼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사건을 맞이한 후에도 자신의 정체성과 인과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과 이어진 사람의 꿈으로 가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한국 문학이 가닿은 가장 본원적인 차원의 윤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귀여운 상황과 표현으로 읽는 내내 독자를 미소 짓게 하지만, 결국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한 번쯤 눈물짓게 하는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다.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는 새로운 감수성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수작이었으며 한국 문학이 지닌 가능성의 진폭을 확장시켜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의가 크다고 판단했다. 최종심에 오른 나머지 작품들 역시 오랫동안 한국 문학사에 기억될 것을 확신하며 우수작품상 수상자들에게도 축하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 주최 : 매일경제신문사 / 이효석문학재단

■ 주관 : 이효석문학재단

■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 평창군

■ 협찬 : NH농협금융 / 농협중앙회

[이경재 평론가 대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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