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거용이냐"..공약 후퇴에 1기 신도시 주민 '분통'

이가람 2022. 8. 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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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신도시로 조성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 단지 모습. [매경DB]
1기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8·16 대책을 통해 1기 신도시 재건축 마스터플랜을 내후년께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임기 내 정비사업 첫 삽을 뜨겠다던 대통령직인수위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면서 부동산시장에서는 재건축 사업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1일 매경닷컴이 만난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정비사업 추진까지 공백기가 상당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 착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현까지 사용되고 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일산지역의 한 아파트 조합원은 "선거운동을 하러 왔던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며 "정부의 도움을 받아 보다 수월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언제 또 마스터플랜 내용이 바뀔지 몰라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분당지역의 어느 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사업 추진 계획을 2024년까지 세우겠다는 발언은 결국 실행은 차기 정부에게로 넘기겠다는 의미"라며 "부동산 표심을 얻고자 하나밖에 없는 주거 터전을 담보로 주민들을 이용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도 "1기 신도시 주민들을 호구로 아는 건가", "선거 때 공약을 남발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 "대선에서 재미 봤으니 총선에서 또 써 먹으려는 거냐", "지금이야 노후도가 심하지 않은 도시라서 살기 괜찮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한 듯", "시간이 생명인데 약 2년을 날리라는 소리인지", "이미 나온 이야기 중 발전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뭘 보고 정부를 믿어야 하나" 등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해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1기 신도시는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난 해소를 위해 기획된 도시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이주를 마쳐 오는 2026년이면 모든 단지가 입주 30년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지구단위계획으로 용적률이 제한된 탓에 분당과 일산을 제외하면 재건축 추진이 어려워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로 1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등으로 집계됐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용적률 최대 500% 상향과 토지 용도 변경 등 1기 신도시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인수위도 이르면 올해 말 마스터플랜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이유로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1기 신도시 재건축 공약 파기 논란 관련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다. 한 총리는 "8·16 대책은 주거안정을 위한 검토의 결과로 '향후 5년은 이렇게 가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라며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은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전체 패키지 중에 하나"라고 설명했다.

최상목 경제수석비서관도 같은 날 "도시 재창조 수준의 정비사업은 5년 이상 걸리는 게 통상적"이라며 "대통령 공약대로 최대한 조속히 1기 신도시 재정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대를 밑도는 부동산 정책에 1기 신도시 주민들이 허탈함과 반발심을 느낄 수는 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교통망 확보·이주 전략 등 시간을 충분히 들여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은 역대급 도시정비 사업이라 섣부르게 공급계획을 밀어붙이면 지역 혼잡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고 주민 이주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집값 과열을 막고 공급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제문 창조도시경제연구소장은 "지역주민 설득 과정이 미흡하고 실수요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빠지면서 정부정책 신뢰도가 낮아졌다"며 "시장 상황과 사업 성숙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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