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설렘이 '팡' 희망이 '톡' 터졌다
2011년 창단해 전국 3000여명 '어린이 단원' 활동
클래식 전문홀서 홍진호·대니 구 등 전문 연주자들과 첫 협연
지난 17일 오후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아트센터 인천. 바다와 어우러진 탁 트인 경관을 자랑하는 이 중후한 공연장 콘서트홀에 이날 특별한 오케스트라가 도착했다. 앳된 얼굴의 연주자들은 경기 군포에서 온 ‘꿈의오케스트라’ 단원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까지, 단원 50여명 전원이 아동·청소년으로 이뤄졌다.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바쁜 10대들이지만, 무대에 올라서자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자, 긴장들 하지 말고. 리베르탱고부터 시작해 볼까요?” 양재영 지휘자(꿈의오케스트라 군포 음악감독)가 단상에 올라 리허설을 시작했다.
이날 공연은 꿈의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전문 연주자들이 함께한 ‘설렘팡 희망톡 콘서트’. 올해로 창단 12년차를 맞은 꿈의오케스트라가 전문 클래식홀에서 여는 최초의 협연 연주회다.
꿈의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 빈민가에서 출발해 ‘기적의 오케스트라’로 불린 엘 시스테마의 교육 철학을 본떠 2011년 공식 창단했다. 모든 지역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해온 사업이다. 단원이 되면 무료로 악기를 대여해주고 악보 보는 법부터 연주까지 가르친다. 단원 대부분이 이곳에서 악기를 처음 접했다.
2010년 전국 8개 시범 거점기관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12년이 흐른 현재는 전국 51개 거점기관에서 단원 3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음악이란 문화적 경험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지역사회엔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로 부를 수 있는 교육·문화 공동체 역할도 한다.
이번 콘서트는 지난 2일부터 18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과 아트센터 인천에서 잇달아 열렸다. 16일부터 사흘간 아트센터 인천에서 열린 공연엔 꿈의오케스트라 공주, 통영, 군포, 강릉 등 여섯개 거점 지역의 단원 500여명이 차례로 참여했다.
이날 군포 단원들이 연주한 곡은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와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리허설 중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 보며 활을 긋던 단원 한 명이 “너무 어려운 곡”이라며 한숨을 푹 내쉬자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매주 2회씩 모여 연습을 하지만, 여름방학 기간이라 이번 콘서트를 앞두고선 합주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양재영 지휘자가 단원들을 독려했다. “너무 기죽지 말고, 자신있게!”
이날 연주회에는 단원들이 기다려온 특별한 손님도 있었다. 사회자의 소개로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첼리스트 홍진호씨가 무대에 오르자 단원들이 ‘물개 박수’로 이들을 맞이했다. 둘은 오늘 ‘꿈의오케스트라’와 함께할 협연자들. 객석을 등진 채 오케스트라를 향해 선 두 연주자는 단원들에게 들려주는 ‘깜짝 음악선물’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리 모두 음악 하는 사람들이니까, 인사도 음악적으로 하고 싶어서 준비했어요.”(대니 구) 두 연주자가 피아졸라의 ‘세 개의 탱고’ 중 첫 번째 곡을 들려주자 단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오픈 리허설과 콘서트로 이어진 이날 협연은 두 협연자와 단원들이 함께한 ‘일일 클래스’이기도 했다. 콘서트는 밀도 높은 교육을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했다.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공연 ‘핑크퐁 클래식 나라’에서 진행을 맡아와 아이들에게 “대니 쌤”으로 친숙한 대니 구는 단원들과 눈높이를 맞춰가며 세심한 조언을 건넸다. “이런 공연장엔 소리가 잘 울리는데, 이 부분은 최대한 작게 연주해야 해요. 25마디부터 다시 해볼까요?”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탁, 탁, 탁, 탁! 짧게 해봐요.”
“반짝이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뭉클…제도적 지원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리허설을 마친 뒤 마침내 시작된 본 공연. 3층 규모 객석은 비어 있었지만 단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를 마쳤고 첫 협연을 자축했다.
올해로 6년째 꿈의오케스트라에서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신예준군(16)은 “우리끼리 연습할 때는 그냥 오늘은 이 정도 배웠다는 느낌이었는데, 유명한 선생님들과 같이하니 평소보다 훨씬 떨리고 또 설레기도 했다”면서 “선생님들이 리허설 때 들려준 음악이 특히 뭉클했다”고 말했다.
바이올린 파트의 성연아양(12)도 “합주를 두 번밖에 못해보고 리허설을 해 틀릴까봐 걱정했는데, 대니 쌤과 홍진호 쌤이 하나하나 잘 설명해주셔서 즐겁게 연주할 수 있었다”고 첫 협연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꿈의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는 연아양은 “혼자 파트 연습을 할 때와 다르게 합주를 할 때 악기와 악기 소리가 만나며 생기는 쾌감이 있다”고 했다.
이틀간 단원들과 합을 맞춘 두 연주자는 “놀랍고, 뭉클한 순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처음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까, 원동력이 뭘까 궁금했어요. 이 잠깐의 협연을 위해 몇시간씩 버스를 타고 정말 멀리서 온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연주를 같이해보고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그 진심이 그 원동력인 걸 알게 됐어요. 지역마다 해온 기간도 다르고 실력 차가 있을 거라고 관계자 분들이 미리 귀띔을 해주셨는데, 막상 연주를 시작하니까 귀로 들리는 연주 실력보다 아이들 눈빛이 먼저 보이더라고요. 소리가 아직 영글지 않고 투박해도, 그 반짝반짝하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진심 때문에 뭉클하고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어요.”(홍진호)
“저희 둘 다 어린시절 오케스트라를 해봤기 때문에 그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지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런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미국에서 바이올린을 취미로 하다가 고3 되기 직전에 전공하기로 결정했는데, 만약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음악 레슨이) 비싸서 엄두를 못냈을 것 같거든요. 꼭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어린시절 접한 클래식 음악이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하고요.” (대니 구)
‘꿈의오케스트라’를 통해 처음 악기를 접하고 전문 연주자의 꿈을 꾸는 학생들도 있다. 18일 열린 ‘설렘팡 희망톡 콘서트’에선 꿈의오케스트라 출신 한국예술종합학교 호른 전공 학생 최민서씨(22)가 한예종 스승인 이석준 교수와 함께 특별 연주 무대를 선보였다.
홍진호씨는 “이번 콘서트는 마무리됐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음악교육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한때의 추억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음악이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도록 사업이 제도적·정책적으로 확장되고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니 구는 꿈의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음악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합을 맞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음악인이죠.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박수를 보내줄 관객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다음번엔 관객이 가득 찬 공연장에서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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