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당헌 80조' 늪으로 들어간 이재명, 왜?..열흘여 동안 바뀐 그의 말

박홍두 기자 입력 2022. 8. 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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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지난 14일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자 전북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유력 당권 주자인 이재명 의원이 최근 ‘당헌 80조 개정 논란’에 대한 자신의 언급으로 인해 당 안팎의 비판에 직면했다. 검·경 수사를 받고 있는 자신에 대한 ‘방탄 개정’ 논란 속에서도 “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가 당 소속 의원들과 여론의 비판이 쇄도하자 “의미 없는 논쟁”이라며 사실상 입장을 바꾸면서다. 강성 당원들의 거센 개정 요구에 대해서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자제 당부’로 바뀌었다. 당내에선 그의 입장 변화를 놓고 ‘이재명식 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정 고려할 필요”에서 “의미없는 논쟁”으로

이 의원이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의 자격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 개정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은 지난 9일 CBS라디오 주최 당대표 후보 토론회가 처음이었다. 그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특히 검찰의 야당 탄압의 통로가 된다라는 측면에서 저는 (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당시 5만명이 넘는 당원들이 온라인 당원청원으로 해당 당헌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 등 당 지도부는 곧바로 당헌·당규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이 의원은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재차 밝혔다. 지난 10일 TJB 대전방송 주최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는 “이 조항에는 뇌물수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를 저지른 경우라고 돼 있는데, 제가 돈 받은 일이 있다고 하나? 아무 해당이 없지 않나”라고 항변했다. 16일 JTV 전주방송 토론회에서는 “무죄추정 원칙, 검찰공화국이란 엄혹한 상황을 고려해 기소된 후 조치할 게 아니라 유죄 판결이 난 후에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야당 인사들에 대한 공격 우려를 적극 설명하는 식으로 개정 필요성을 밝힌 것이다.

전준위는 16일 회의를 열어 당헌 80조 개정안을 의결했다. 직무 정지 기준을 ‘기소’에서 ‘하급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등으로 수정했다. 전준위의 추진과 달리 당 안팎의 반발은 증폭됐다. 같은날 의원총회에서는 친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 의원들 간에 당헌 개정을 놓고 정면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의원의 입장은 17일을 기점으로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광주 KBS 토론회에서 이 의원은 “(해당 당헌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당)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싸워가면서 강행할 필요가 있었나 생각했다. 지도부가 나름대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존중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전준위의 개정안과 달리 당헌 80조를 유지하기로 한 것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비대위에서는 전준위가 개정안을 내고 강성 당원들의 요구가 강했지만 이 의원에 대한 방탄용 개정 논란과 ‘혁신 후퇴’ ‘내로남불’의 재현 등을 부담스러워해 반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은 지난 20일 전북 지역 합동연설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뇌물수수, 불법 정치자금 수수 같은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것이고, 기소시 직무의 자동 정지도 아니고 사무총장이 정지시키고 윤리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는 조항이라 실제로 큰 의미가 없다”며 “더 이상 이런 것으로 논란을 벌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대위 결정 이후 더 거친 목소리로 항의하고 나선 강성 당원들을 향해 자제를 당부한 것이다.

이재명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방탄 논란’ 뻔히 알면서도 왜 언급했나

이 의원의 입장이 열흘여 사이에 바뀐 것을 놓고 당 안팎에선 이재명식 정치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자신의 결백함을 강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으로 해석되지만 강성 지지자들의 요구에 휘둘려 개정 논란에 스스로 뛰어든 셈이 됐다는 지적이 먼저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이 의원 측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이 의원이 해당 논란에 대해 전당대회 내내 아예 언급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방탄 개정’ 논란 상황에서 가타부타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그런 점을 알면서도 언급을 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결국 이 의원의 삶과 정치 역정과 연결하는 시각도 나온다. 힘든 어린 시절과 성남시장, 경기지사를 거치면서 자기 존재와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걸어온 이 의원으로선 그만큼 외부의 압력·공격에 방어적이고 반발감이 크다는 해석이다. 한 재선 의원은 21일 통화에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언급을 피하거나 상황을 관망하지 않고 직접 자기에 대한 공세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며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딸’ 등 강성 지지자들까지 얽히면서 민심과는 괴리된 측면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당시 이 의원을 도왔던 중진 우원식 의원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강성 당원들에 대한 자제를 부탁한 이 의원을 겨냥해 “비대위 결정 전에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의원이 더 이상의 논란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을 놓고 당내에선 그나마 안도하는 시각도 나온다. 당대표가 된다면 당을 자기 중심으로 장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권과 여당에 맞서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더 우선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인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한 중진 의원은 “이 후보가 야당 대표가 되려면 당헌 개정 논란에 스스로 뛰어든 모습보다는 전략적이고 자중하는, 민심을 바라보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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