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진의 무비세프 <37> 매즈 미켈슨 (Mads Mikkelsen)
첫인상이 그리 좋진 않았다. 차갑고 날카롭고 까다로운 인상에다 어떤 푸근함이나 따뜻한 면모가 보이지 않았다. 뭐랄까 선한 역보다는 악역이 오히려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이 배우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본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이 배우의 영화와 자주 마주쳤다. 영화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동료 문인 한 분한테서도 이 배우가 괜찮은 배우라고 들어왔던 터라 이제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로 성큼 다가왔다.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이라는 이름은 잘 외워지지 않았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고 할 수 없다. 할리우드 배우들 이름에 익숙해서인지 이름 이미지가 좀 낯설고 뭔가 형상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영화 ‘007 카지노 로얄’(2006년, CASINO ROYALE)에서 처음 본 듯하다. 국제 테러 조직 자금책 르 쉬프르(매즈 미켈슨 분) 역이었다. 악역이다. 주인공인 007(다니엘 크레이그 분)과 포커 치는 장면이 생각난다. 어마어마한 판돈이 걸린 도박판의 긴박감 넘치는 표정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실제로 포커 프로 자격증이 있고 2006년 Bet24가 주최한 포커 토너먼트에서 덴마크 프로 포커 선수를 상대로 ‘올인’해서 승리했다. 그 포커 토너먼트에서 이긴 패가 007 제임스 본드에게 이겼을 때 그 패(pocket Jacks)였다고 전한다. 또 한 번은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로 이겼을 때를 들 수 있는데 너무 좋아서 상을 끌어안고 울며 잤다고 한다.
영화 007에서 악역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한쪽 눈동자 속에 구름이 떠 있는 것처럼 정상이 아니었다. 일종의 분장술이었겠지만, 매즈 미켈슨의 이상야릇한 얼굴 이미지에 잘 어울렸다. 영원히 악역만 할 것 같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아무리 험상 굿게 생긴 배우라도 그가 펼치는 연기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가 바라는 착하고, 쌈 잘하고, 싸나이답고, 능력 있고, 의리 있고, 부조리함에 대항하여 용감할 줄 아는 배우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매즈 미켈슨은 좋은 남자, 나쁜 남자, 이상한 남자, 아주 이상한 남자, 지성적이고 젠틀한 남자, 억울한 남자 이 모든 역할을 아우르는 연기를 하는 실력파 배우다. 덴마크인이라 그런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영웅을 연기하더라도 능글맞은 영웅 모습과는 좀 다르다. 비장함이 강하게 스민 연기라 할 수 있다. 특유의 ‘묘하게 피곤한 듯한’ 표정이 다소 관능적이라는 의견이 있어, 덴마크에서는 섹시한 남자 상위권에 선정되곤 했다. 또한 덴마크에서는 국민 배우 칭호를 얻어 처음엔 다소 의아(?)하기도 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 복수극을 주로 본 듯하다. 너무너무 억울한 역할을 잘 소화해낸 영화 ‘더 헌트’에서 그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더 헌트(The Hunt/ Jagten)’는 2012년 공개된 덴마크 영화다. 이 영화가 잘 떠오르지 않아 트레일러를 찾아보았더니 내가 본 영화다. 특히 꼬마 배우 아니타 베데르코프(클라라 역/ 2004년생)의 역할과 능청스럽고 다소 얄미운 연기 덕분에 진짜 미워할 뻔했다.
영화의 모든 비극은 은 클라라의 거짓에서 시작한다. 성추행당했다고 거짓 증언하는 바람에 성범죄 누명을 쓴 유치원 교사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의 인생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 남자의 비극적 삶을 담고 있다. 뛰어난 연기, 영화 전체에 퍼지는 우울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영화로 21세기 마녀사냥의 한 형태를 다뤘다. 과연 공동체의 ‘정의’란 것이 늘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이다. 집단이기주의에 관한 영화이자 누명에 관한 영화다.
누명을 쓰고 죄 없이 몇 년 감옥에 수감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절로 몸서리쳐진다. 이 영화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는 오늘날 전 세계의 상황이며,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가짜 뉴스’도 이와 무관치 않다. 몇몇 영화 전문가의 한 줄 감상평을 들어본다.
인간, 집단이 두렵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걸까? - 유지나
공동체 안에서 인력이 척력으로 변하는 순간의 폭력에 대한 섬뜩한 보고서 - 이동진
진실을 위해 필요한 건 밝은 눈과 용기 - 이용철
악당 없는 악의 무서움. 함부로 사냥하지 말라 - 김혜리(나무 위키 참조)
클라라의 거짓 진술만 듣고 루카스가 마녀라고 판정을 내린 동네 사람들의 이러한 확증편향과 상태유지편향의 근원은 어디서부터일까. 결국 루카스를 오해해 죄인으로 몰아넣은 것은 우리의 잘못이며 루카스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즉 동네 사람들 각자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가해자들이 가지는 방어기제라고 볼 수도 있다.
결말의 경우 누가 루카스를 쐈느냐며 의견이 분분하다. 누가 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총을 쏜 자도 밝혀지지 않고 영화는 끝난다. 결국 아무리 누명에서 벗어난들 결국 그 상흔은 지워지지 않음을 강조한다. 루카스에게 총을 쏘는 누군가 역시, 끝끝내 자신의 죄(멀쩡한 사람 하나를 범죄자로 몰아넣고 그러한 취급을 한 것)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의 방어기제와 편향이 낳은 끔찍한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에서 아동성범죄는 ‘밑밥’ 구실을 한다.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는 확인되지 않는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는 대중이다.
매즈 미켈센(마스 미켈센 1965년생)은 덴마크 배우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안데르센이 생각난다). 유년기에 기계체조를 했고 19살 때 스웨덴의 발레학교로 진학했다. (스웨덴의 요정, 영화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도 스웨덴 왕립 발레학교를 다녔음) 1996년 연기학교에 가 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직업적인 춤꾼(춤예술가)로 10년 가까이 활동했다. 데뷔 작은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데뷔작 ‘푸셔’이다. 2021년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에서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으로 출연했다.
춤꾼으로 활약한 덕분에 몸맵시가 보기 좋다는 찬사를 받는다. 스웨덴의 발레학교로 진학할 때 ‘남자 무용수는 게이’라는 사회 인식이 있었다. 이에 대해 매즈는 ‘그렇다면 내가 들어가서 여자들 많이 만나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머리가 길고 수염 길렀을 때와 면도하고 머리를 짧게 하였을 때와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 신장은 프로필에 183㎝로 돼 있다. 영어권 남자 배우들과 같이 있을 때는 큰 편이지만 북유럽계 남자 배우들과 같이 있으면 보통 키다. 오히려 그들보다 조금 작아 보이기도 한다.
매즈 미켈슨 출연의, 복수를 주제로 한 영화 3편 중 ‘웨스턴 리벤지’(The Salvation, 2014년)를 가장 먼저 본 듯하다. 그야말로 복수심에 불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도 떠오른다. 영화 ‘웨스턴 리벤지’는 가족을 잃은 존의 분노와 복수가 핵심 이야기다. 7년 만에 덴마크에서 가족을 미국으로 이주시킨 주인공 존(매즈 미켈슨 분) 은 얼토당토않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한순간, 한꺼번에 가족을 눈앞에서 잃어버린다.
어린 아들은 길바닥에 내팽게쳐져 죽음을 맞이하였고 사랑하는 아내는 악당에게 겁탈당한 채 살해당한다. 가족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던 존은 사랑하는 이들을 앗아간 악당에게 서릿발 같은 복수의 마음을 다짐한다. 칼을 갈고 총을 빼 들었다. 하지만 존이 복수한 그 악당이 하필 마을의 절대 권력자 델라루의 동생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복수가 복수를 부른다는 전형을 보여준다. 존은 델라루의 무자비한 공포 정치를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의 밀고로 붙잡히고 그 과정에서 남은 가족, 동생마저 잃고 만다.
복수가 무엇일까. 14세기 명실상부한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는 복수를 정의에 대한 갈망이 앙심과 증오로 변질된 것으로 봤다. 심리학 측면에서는 긍정·부정 감정이 동시에 발생한다. 긍정 감정은 목표에게 죄값을 치르게 했다는 만족감이고, 부정 감정은 그 과정에서 무고한 자들이 죽었다는 것이라 한다. 또 그 뒤 찾아오는 공허감은 목표를 이룬 뒤 오는 것이고, 새로운 목표를 찾을 경우 공허감은 사라진다고들 하나 심신 탈진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정익진의 무비세프’ 20회에서 다루었던 매혹적인 눈빛의 프랑스 여배우 에바 그린(1Eva Green, 1980년생)을 보게 될 줄 몰랐다. 약간은 끔찍한 분장을 하고 나와 조금 놀랐다. 에바 그린은 인디언에 의해 목소리를 잃고 잔혹한 무법자 델라루(제프리 딘 모건, Jeffrey Dean Morgan)에게서 도망치고자 하는 한 마리 야생마 같은 강인한 여인 마델린을 열연했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Michael Kohlhaas)은 2013년 공개된 영화이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포스터 한 장. 등 뒤에 검 한 자루를 차고 세찬 바람결에 휘날리는 머리키락, 까칠한 수염, 허공을 응시하는 차가운 눈빛, 있는 대로 어금니를 다문 그야말 비장한 표정의 매즈 미켈슨의 모습이다.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본 메즈 미켈슨 출연의 두 번째 복수극이다.
복수극을 보다 보면 주인공에게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악당의 죄질이나 그 악당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에 따라 증오의 농도가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저러한 억울한 사건으로 미하엘(매즈 미켈슨 분)은 무려 세 번 고소했으나 그 고소가 기각되자 그는 직접 공주에게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미하엘의 요구는 심플했다. 자신과 하인의 피해를 보상하고 헤코지 당한 말을 이전 상태로 회복시켜달라는 것이다.
요구는 무산됐고 분노한 미하엘은 농민 폭동 주동자가 된다. 하지만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하층민의 영웅적인 봉기와 승리 등등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다. 미하엘의 고뇌, 그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당시 종교·정치·법적인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던 주인공의 신념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다른 차원의 질문을 건넨다.”
“모두가 당한 대로 행한다면 세상에는 더 이상 질서도 정의도 없을 것”이라며 “자기 마음대로 정의를 행한다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내가 남작을 용서할 때까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지 말라.” 이러한 대비되는 말들 통해 이 영화의 내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겠다.
<추신>
복수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들어본다. 중국의 경우 “부(父)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형제의 원수는 병기를 거둬들이지 않고 항상 휴대하고, 친구의 원수는 같은 나라에서 살 수 없다. ‘예기(禮記)’의 ‘곡례(曲禮)’
영화 ‘대부’도 알고 보면 ‘복수’다. 마약 유통 사업을 거절한 비토(말론 브란도 분)가 타탈리아 패밀리에게 저격당하고 루카 브라씨가 살해당한다. 비토의 맏아들 소니(제임스 칸 분)가 그 복수로 필립 타탈리아의 맏아들 브루노를 죽였다. 마이클(알 파치노 분)은 아버지를 저격하고 루카 브라씨를 살해한 인물인 버질 솔로초를 죽이고 시칠리아로 피신했으며 타탈리아는 그 복수로 소니를 죽였다. 이후 시칠리아에서도 자동차 폭탄으로 마이클을 죽이려다 마이클의 아내를 죽인다.
마이클은 대부가 된 뒤 타탈리아를 포함한 형의 죽음에 책임이 있거나 협조했던 인물을 싸그리 죽임으로서 복수한다. 하이먼 로스는 마이클의 의해 죽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마이클의 목숨을 노렸다. 결국, 마이클은 큰형을 잃었고 첫 아내와 매제와 둘째 형을 죽였고 은퇴를 앞둔 말년엔 딸을 잃는다. 이렇게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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