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문체부 장관 "불편부당, 통합의 리더십 배워야"

이가람 2022. 8.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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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우관 각당헌에서 '청련 이후백의 학문과 관료정신'을 주제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문화체육관광부]

우리 사회의 분열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라고 나눠 정치, 사회, 산업, 지역, 세대 등 각 부문에서 충돌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리적인 국정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정치사회구조가 돼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우관에서 열린 조선중기의 청백리이자 최고의 공정인사로 명성을 지닌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선생 탄생 500주년 기념학술대회 행사가 열렸다.

이후백은 1520년 경상도 함양에서 연안이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전라도 강진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호남지역의 기라성같은 학자들, 하서 김인후, 석천 임억령, 미암 유희춘, 금호 임형수 등 선배학자들과 교류했다. 고봉 기대승, 송천 양응정, 사암 박순, 송강 정철 등 뛰어난 문인·학자들과도 교류하며 학문의 높이를 키워갔다.

그는 36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명종과 선조대에 걸처 학문과 실천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경세가가 됐다. 이조·호조·형조판서를 지내면서 인재를 등용할 때는 아랫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기용했다.

특히 이후백은 공과 사를 분명히 했고 뇌물을 받지 않은 청백리 삶을 살면서 당파와 상관없이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다. 실례로 그가 이조판서 때 친척의 인사청탁을 받았지만 단호히 물리첬다. 이후백은 그 친척에게 앞으로 벼슬을 할만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보여주면서 그 자리에서 그 친척의 이름을 삭제했다. 이율곡은 "이후백 같은 공정한 마음은 근세에는 비할 사람이 없다"고 전한 바 있다.

청련 이후백 초상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는 서인 기호학파와 남인 영남학파의 대립과 적대가 격화되던 시대에 화합과 균형의 가치를 깊게 내면화해 통합의 행보를 보인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했다. 을사사화의 근원이 사악한 권신들에 의해 명종의 이목을 가린 것을 명백히 밝혀냈고 신원되지 못한 인물들을 복권시키기도 했다. 또 국조유선록 서문을 써서 김굉필, 조광조, 이황으로 이어지는 도학의 계통을 확립했다.

박보균 문화체육부장관은 이날 기념축사를 통해 "선배 사림과 후배 사림으로 분열됐을 때 당시 선배 사림에 속했던 이후백 선생은 불편부당하고 청백한 처신과 공정한 인사를 통해 후배 사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이후백 선생의 정신은 지역과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요즘 시대가 반성적으로 본받아야 할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이후백은 뛰어난 문장과 학식,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으로 영남과 호남, 노론과 남인의 대립과 갈등을 명쾌하게 해결하고 통합한 이상적인 정치가, 학자, 문인이었다"며 "이율곡과 송시열, 류성룡으로부터 높은 평가와 존경을 받은 유일한 경세가였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이경학 연안이씨 청련공파도문회 부회장과 정수환 한국계보연구회 총무이사가 사회를 맡았고,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강제훈·심경호 고려대 명예교수, 김봉곤 원광대 교수,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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