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가 던진 질문들

황예랑 기자 2022. 8. 2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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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1427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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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기사가 어제 드라마 <우영우> 에피소드를 다룬 실제 사례라고 해서 트위터에서 엄청 화제네요.’

8월의 어느 금요일 오전, <한겨레> 디지털 부문을 총괄하는 부문장이 텔레그램으로 <한겨레21>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2013년 3월 제952호에 실렸던 글(‘무모한 사람을 만든 씩씩한 언니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095.html)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회사마다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던 1999년, 농협에서 사내 부부인 직원들을 ‘상대적 생활 안정자’로 분류하면서 특히 ‘아내’ 직원의 사표를 강요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 ‘아내’ 직원 두 명이 성차별적이라며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맡았던 김진 변호사가 쓴 칼럼이었다.

전날 방송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농협 대신 ‘미르생명’에서 일어난 일로 그려졌다. 우영우 변호사가 속한 대형 로펌 ‘한바다’와 맞서 싸우는 인권변호사 류재숙(이봉련) 변호사의 실제 모델 격인, 김진 변호사에게 예전 글이 화제가 된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20년 전 사건인데, 거참. 그만큼 한국 사회가 안 변했다는 걸까요?”

이 글은 2013~2015년 <한겨레21>에 연재됐던 ‘7인의 변호사들’이라는 칼럼 가운데 하나였다. 7인의 변호사는 법무법인 지향에서 일하는 김수정, 김진, 남상철, 류신환, 박갑주, 이상희, 이상훈, 이은우 변호사(중간에 필진이 교체돼 실제 글을 쓴 변호사는 8명)다. 이들은 노동, 여성, 과거사, 정보인권, 양심적 병역거부 등 한국 사회 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여러 편의 좋은 글을 연재해줬다. 이날 <우영우>의 인기 탓인지, 법무법인 지향의 누리집이 다운됐다고 한다.

<우영우>에는 ‘7인의 변호사들’에 언급됐던 다른 사건들도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했다. 은행에 자동현금지급기(ATM)를 공급하는 회사가 실용신안권 침해를 두고 의뢰했던 사건(제994호), 지리산 천은사를 상대로 문화재 관람료 1천원을 돌려달라고 개인이 냈던 소송(제1002호) 등이다.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 드라마여서, 라고 하기엔 동성애자, 탈북민,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 발달장애인 가족 등 이른바 사회적 소수자, 차별받는 이들이 <우영우>에 자주 등장했다. 나아가 드라마는 질문을 던졌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인가, 장애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어디까지 보장돼야 하는가, 채용에서의 불공정을 따지는 준거는 무엇이 돼야 하는가 등등. 그동안 아동학대, 디지털성범죄 등을 다룬 드라마가 없지 않았으나, 김효실 <한겨레> 엔터팀 기자가 이번호에 썼듯이 <우영우>처럼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진 드라마, “이 시대 시청자와 교감”한 드라마는 많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 아쉬움은 남지만 말이다. “한국 드라마 역사 가운데 어딘가 나름의 이정표를 남긴” 이 드라마가 종영하는 8월18일, 우영우가 던진 질문들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표지이야기로 담은 이유다.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는 “만약에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게 있다면, 이 드라마를 계기로 쏟아져 나오는 여러 이야기 덕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우영우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드라마 자체보다는 드라마에서 다룬 이슈에 시민들이 감응하고 교감하고 있다.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의 자유, 개발 논리에 휘둘려 베여나갈 위기에 처한 수백 년 된 팽나무처럼 모르지 않았으나, 모른 척했던 문제에도 새삼 관심이 쏠린다. 그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수족관에 갇혀 있던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바다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제주도 현장을 고한솔 기자가 다녀왔다. 류우종 기자는 이틀간의 기다림 끝에 비봉이가 야생적응 훈련을 하는 가두리 주변을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 무리의 사진을 찍었다. 김양진 기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잔뿌리가 있는 땅을 밟는 탓에 ‘가뭄 현상’이 나타나는 경남 창원의 ‘우영우 팽나무’와 다른 보호수들의 아픔을 살폈다.

이번호 <한겨레21> 표지는 사상 처음으로, 두 버전으로 인쇄된다. 디자인주 장광석 실장의 작품인 일러스트, 류우종 기자가 찍은 남방큰돌고래 사진, 두 종류다. 정기구독자 여러분께는 둘 중 하나가 무작위로 발송된다. 어느 쪽이라도 마음에 드시리라 믿는다.(일러스트 버전의 표지는 온·오프라인 서점 등에서 추가 구매가 가능하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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