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민영화 20년③] 35년 KT맨, CEO 잔혹사 대물림 끊을까

심지혜 2022. 8. 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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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정치적 외풍 자유롭지 않았던 역대 KT CEO들
'자의반 타이반' 연임 임기 못채우거나 검찰 수사받아
'미래 KT' 좀먹는 CEO리스크…중장기 전략 짤 수 없어
구현모 대표 연임 성공 여부에 촉각…민영기업 완전 독립 가르는 시험지
이사회 투명성 강화…"소유구조 달라져야" 목소리도

【서울=뉴시스】 구현모 KT 대표가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가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2년간의 성과와 향후 KT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2022.3.1 (사진=KT 제공)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공기업 KT가 어떻게" "공적 책무를 외면하고...."

KT가 민영화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소속 상임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이를 헷갈려하는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다. 국정감사 때면 번번이 KT CEO를 부른다. 혹자는 이를 KT의 업보라 말한다. 뚜렷한 주인이 없어 아직까지 '공기업'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KT의 최대 주주는 20년째 국민연금(지분율 11.23%)이다. '주인이 나요' 외칠 소유주가 없다는 얘기다. 민영화 당시 특정 재벌에 특혜를 주기보다 '국민기업'화 하겠다는 취지였는데 거꾸로 KT의 장기비전에 발목을 잡아온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국민기업은 흔히 '주인없는 공(空)기업'으로 치부된다. 이런 기업의 최대 리스크는 오너십 부재다.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KT CEO 자리도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 CEO 자리도 공기업처럼 으레 차지해야 할 일종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정치인도 아직 남아있다.

실제 역대 KT CEO 중 남중수 사장, 이석채 회장이 정권 교체기를 맞아 배임 등 혐의로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다 ‘자의 반 타의 반’ 자리를 내놨다. 황창규 전 회장의 경우 연임 후 정치후원금 등 여러 이유로 수사를 받았다. 공(空)기업 CEO들의 끝없는 수난사다.

올해 임기가 끝나 연임 도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구현모 KT 사장은 경우가 다르다. 정치적 낙하산도, 외부인도 아니다. KT에 입사해 35년 외길을 걸어온 정통 KT맨이다. 게다가 그의 전임자인 황창규 회장은 경찰 수사를 받긴 했지만 연임 임기까지 무사히 완주했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외풍이 작용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KT 민영화 이끈 역대 CEO들

민영화 KT의 초대 CEO는 이용경 사장이다. 그는 사장추천위원회 심사 통과 후 2002년 8월 20일 임시주총에서 KT 대표로 선임됐다. 이 사장은 취임식에서 "민영화는 형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내용을 바꾸는 변화와 혁신 과정을 의미한다"며 "불합리한 관습과 절차를 없애고 사업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진정한 민영화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담대한 의지와 달리 KT는 민영화 이후 CEO 리스크가 반복됐다.

후임인 남중수 사장은 2005년 8월 19일 KT 민영화 2기를 이끌 대표로 선임됐다. 2007년 임기 만료 후 연임이 결정됐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중도 낙마했다.

KT가 외부인 CEO 시대를 맞은 것도 이때부터다. 2009년 1월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KT 대표 자리에 앉았다. 정치적 외풍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친 이명박계로 분류된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2012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며 '자의반 타의반' 자리에서 물러났다. 채용비리 청탁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CEO 시절 검찰이 수사했던 배임 등의 혐의는 무죄로 판결 받았다.

후임인 황창규 회장 역시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삼성전자 CEO출신으로 '황의 법칙'으로 이름을 날렸던 반도체 전문가였지만, 통신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는 문외한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임기 말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결국 연임 기간을 모두 채우고 물러났다.

외부 CEO들의 재임시절 공과를 떠나 '정치적 낙하산'이란 색인은 끝내 이들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외부적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정치권 윗선’들의 요구를 쉽게 떨쳐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적 낙하산 인사·채용 부정의 온상으로 KT가 지목돼온 배경이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CEO 선임 구조에 대한 개선 논의가 본격화된 건 황 회장을 이을 다음 CEO를 물색할 때부터다. 황 회장은 지배구조위원회가 CEO 후보 심사 대상자를 선정하면 이사회가 결정하는 식으로 바꿨다. 기존의 추천위는 심사 기능만 갖도록 했다. 후보 심사 기준에는 기업경영 경험 항목도 추가했다. 정치인 낙하산을 배제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이에 더해 KT는 한 번 더 쇄신 과정을 거쳤다. KT 이사회는 회장후보 선정과정 중 후보자들에게 회장이라는 직급을 없애고 대표이사 사장 제도로 바꿀 것과 급여 등의 처우도 이사회가 정하는 수준으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또 CEO 임기 중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 또는 부정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사회의 사임 요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요구했다.

이런 과정 끝에 12년 만에 내부 출신 CEO 선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구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KT그룹을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업, 국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구 대표 임기가 올해로 끝난다. 그는 늦어도 11월 전 연임 도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지난 3년간 KT가 거둔 안정적인 매출 성과에 2013년 6월 이후 9년 만에 시가총액 10조원을 재돌파하는 등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점을 감안하면 연임 자격은 이미 충분하다. 그의 경영성과가 KT 안팎에서 검증된데다 앞서 전임자인 황창규 회장이 연임을 완주한 만큼 과거처럼 외부에서 쉽게 흔들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과적으로 구 대표의 연임 성공 여부가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KT가 완전히 독립했는지를 가르는 리트머스지가 될 전망이다.

오너 없는 지분구조의 굴레 끊어야…이사회 투명성 강화 지적도

구 대표의 연임 여부와는 상관없이 KT가 궁극적으로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현재의 소유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KT 소유구조의 취약성이 '미래 KT'의 발목을 잡아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새로운 CEO가 취임하면 전임자가 수립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은 곧잘 용도 폐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KT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과거 이석채 회장 시절 인수했던 렌터카 사업(현 롯데렌터카)을 KT가 계속 키웠더라면 아마도 카카오모빌리티를 능가하는 KT판 모빌리티 서비스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며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나 글로벌 사업 등 투자가 계속됐다면 상당한 성과로 이어졌을 과거 사업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CEO 리스크가 임직원들이 3년 이상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단기 실적에 연연할 밖에 없는 KT의 구조적 한계였다는 지적이다.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통신 경쟁사는 물론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빌 빅테크들과 제대로된 경쟁을 벌이려면 중장기적이면서 공격적인 투자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선 소유구조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기간통신사 지분을 15% 이상 소유하려면 정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최대 주주가 변경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KT 지분이 없지만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돼왔다.

하지만 더 이상 통신업이 '황금알 사업 특혜'가 아닌 현 시대적 상황에서 연속성을 갖고 크고 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소유주를 물색하는 방안도 배제하진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이사회 구성에 대한 투명성이라도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KT 관계자는 "미국의 대기업을 보면 대주주가 있기도 하지만 탄탄한 이사회 구성이 뒷받침하고 있다"며 "KT는 이사회를 통해 CEO 인선이 이뤄지는 만큼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선출 절차부터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m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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