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 돋우는 식초.. 갈고, 터뜨리고, 뿌리고, 올려 먹자!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2022. 8. 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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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맛' 이야기]
발사믹식초로 드레싱한 샐러드. [Gettyimage]
나는 요리할 때 양념을 다양하게 쓰는 편이 아니지만 요리 욕심이 넘치던 결혼 초에는 온갖 종류의 양념과 소스를 끌어 모았다. 한식과 양식은 당연하고 중식, 일식, 동남아, 유럽, 남아메리카 스타일까지 갖다 놨다. 한중일 간장 종류가 대여섯 가지, 마요네즈도 두 가지, 찌개용 고추장은 따로 두고, 두 종류의 된장, 매운 맛이 나는 온갖 소스, 여러 질감의 머스터드, 스테이크 소스인 A1과 우스터소스는 필수였다. 오일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한두 끼 먹으려고 구입한 양념은 결국 냉장고에 감금됐다가 유통기한을 넘기고 버려졌다. 그렇게 샀다 버리기를 반복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딱 한 가지 식초만은 여전히 여러 종류를 쓴다. 양조식초, 화이트식초, 포도식초, 감식초, 농익은 발사믹식초 등이 있다.
검붉은 색의 발사믹식초는 고기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Gettyimage]
신맛을 유난히 즐기는 게 아님에도 식초는 여러 종류가 필요하다. 양조식초 그중에도 주정을 발효해 만든 것은 마트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다. 음식에도 넣지만 과일 세척과 청소에 쓰고, 초파리가 모이는 곳에 뿌리는 등 쓰임이 다양하다. 식품을 넘어 생활용품이라고 할 만하다. 화이트식초는 사과로 만드는 식초다. 맛이 아주 깔끔하고 향이 거세지 않으며 색도 없어 여러 요리에 마음 놓고 쓸 수 있다. 포도식초는 말 그대로 포도로 만든 식초인데, 정확히는 화이트 발사믹을 구해 쓴다. 싱싱한 레몬이 항상 집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샐러드에 넣어 산뜻함을 살리기 아주 좋은 재료다. 검붉은 색의 발사믹식초는 숙성 기간이 짧고 저렴한 것, 10년 이상 숙성해 점성이 있고 비싼 것을 갖춰 둔다. 숙성을 짧게 한 발사믹식초는 초간단 소스를 만들기에 좋다. 별 다른 재료 없이 그저 식초를 뜨거운 프라이팬에 붓고 부글부글 끓여 살짝 졸이면 된다. 구운 고기에 곁들여 먹는 일이 많다. 발사믹식초는 색도 독특하지만 숙성 중에 배는 고유한 향이 있다. 또한, 단맛에 겹쳐 있는 새콤한 맛이 통통 튀지 않고 묵직하고 둥글둥글 부드럽다.

다양한 형태로 즐기는 복분자식초

화이트 식초는 사과로 만든다. [Gettyimage]
이런 와중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식초가 있어 한번 구입해 먹어봤다. 전북 고창에서 만든 복분자식초다. 여러 가지 과일로 만드는 식초는 이미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지만 이번에는 좀 남다르다. 하나의 식초로 세 가지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단단한 블록, 탱탱한 젤리 같은 구슬, 그리고 액체다.

블록식초는 삼각형으로 두툼하게 잘라 파는 치즈를 꼭 닮았다. 딱딱하지 않고 탄력이 있으며 쫀쫀하고, 밀도가 촘촘해 묵직하다. 마치 두껍고 부드러운 고무덩어리 같아 치즈 그레이터나 슬라이서를 가지고 원하는 입자 크기로 갈거나 필요한 두께로 저며 내기가 무척 수월하다. 탱글탱글 투명한 젤리처럼 생긴 구슬식초는 꼭 생선의 알처럼 생겼다. 표면이 반투명하고 윤기와 빛이 나는 보라색 알갱이로 음식이나 음료의 토핑으로 쓰기에 완벽한 모양새다.

고창 복분자식초는 다양한 형태로 생산돼 풍미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농업회사법인유한회사 제이엔푸드]
액체식초, 블록식초, 구슬식초는 모두 4%의 산도로 생산됐다. 그런데 입에서 느껴지는 맛은 저마다 달라 재밌다. 구슬식초는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순간 새콤한 맛과 향이 함께 팡팡 터진다. 신맛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음식이나 음료, 디저트에 곁들여 올리면, 탄성을 자아내기에 제격인 식재료다. 블록식초는 쫀득한 질감 덕분인지 맛이며 향이 훨씬 녹진하고 은근하게 다가온다. 요리 재료로 쓰는 것도 좋지만 조각조각 잘라 간식으로 꼭꼭 씹어 먹고 싶다. 차진 식감과 맛이 정말 일품이다. 새콤한 맛이 도드라지지 않아, 식초인가 싶을 수도 있다. 액체식초는 달콤한 맛이 조금 더 진하게 나는 것이 영락없는 과일식초의 면모다. 이 식초 삼형제는 모두 고창에서 자라는 복분자로 만든다. 식초를 만들어 고유한 초항아리에서 2년 자연 발효한 후 숙성 시간을 갖는다. 그 다음 복분자 발효액과 섞어 맛과 향의 균형을 잡아 완성된다.

농익은, 값비싼 발사믹식초를 즐겨 쓰는 이유는 강렬한 풍미를 얻기 위해서지만 진득한 점성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요리에 뿌리면 온데간데없이 그릇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가는 대신 여러 식재료에 꼭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덩어리로, 알갱이로 쓸 수 있는 식초가 있다니 미각뿐 아니라 오감이 눈을 반짝 뜨겠다.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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