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누리가 쏴올린 '인공태양' 꿈..한국 기술로 키운다

한겨레 2022. 8. 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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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쏙 과학 ㉟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보는 '케이스타'와 한국 핵융합 기술

기후위기, 폭발 위험, 핵폐기물 처리…. 이 모든 걸 걱정할 필요가 없는 핵에너지가 있다? 태양처럼 청정하다고 해서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핵융합 에너지다.

만약 이 인공태양에 대한 과학 영화가 나온다면 한국이 등장할 것만 같다. 연료인 헬륨3(³He)가 묻힌 ‘보물지도’ 부분에서든, 그것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핵융합 원자로 부분에서든.

지난 5일 발사에 성공한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의 임무 중 하나는 감마선분 광기로 헬륨3 등 달의 자원이 어디 있는지 찾아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달에는 최소 1543조 달러, 우리 돈 202경5959조원 가치의 헬륨3가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국립과천과학관에 있는 국제 핵융합 실험로(ITER) 모형.

다누리, 달에 있는 헬륨3 조사 등 임무
헬륨3는 1g당 1400 달러 ‘21세기 금광’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핵융합 원료

다누리와 함께 케이스타 활약도 ‘눈길’
‘1억 도 플라즈마 운전’ 20초 기록 세워
‘국제핵융합실험로’에서 중요 역할 기대

핵융합 발전=‘태양 방식’ 에너지 생산
‘20세기 핵분열 발전’, 전쟁 산물이지만
‘21세기 핵융합 발전’은 희망·발전 산물

다누리가 보물지도를 그리는 사이, 대전 유성구에서는 케이팝만큼이나 흥분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한국형 초전도 핵융합 장치, 케이스타(KSTAR, 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Research)다.

한국형 초전도 핵융합 장치(KSTAR) 모형.

2008년 첫 플라즈마 발생 성공 이래 이 장치는 2020년 세계 최초로 ‘1억 도(이온온도 기준)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을 20초 동안 지속하는 기록을 세웠다. 2021년엔 운전시간을 30초로 늘려 자신이 보유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그뿐인가? 인류 최대(20조원), 최장(60년)의 공동 연구개발사업인 ‘국제 핵융합 실험로(ITER)’에서 한국 기업들은 초전도 도체 등 핵심 부품을 담당하고 있다. 원천 기술덕분이다. 성충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핵융합 원자로 건설 분야, 운전기술 분야에 강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핵융합 원자로가 뭔지, 핵융합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KSTAR가 있는 대전이나 ITER가 있는 프랑스 카다라슈까지 갈 필요는 없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국립과천과학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본관 2층에 자리 잡은 첨단기술 1관에 들어서자 거대한 원형 모형 2개가 시선을 끌었다. 먼저 우주선 발사기지처럼 생긴 것에 붙은 설명을 읽었다. KSTAR 모형이었다.

“구리로 만든 일반적인 전자석을 사용한 이전의 핵융합 장치는 자기장과 함께 저항이 발생하여 장시간의 운전이 어려웠지만, KSTAR는 저항이 없는 초전도 전자석으로 설치되어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장시간 운전기술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KSTAR 모형 오른쪽엔 거대한 사과의 단면 같은 설치물이 있었다. ITER의 토카막, 즉 초고온 플라즈마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가두는 장치의 모형이다. 사과 속 부분에는 ‘플라즈마’, 그것을 둘러싼 부분에는 ‘진공용기’, 그 바깥에는 ‘폴로이달 코일’이라 적혔다.

여기서 잠깐! 핵융합 발전의 원리부터 살펴보자. 국립과천과학관의 유튜브, ‘해설(SSUL)이 있는 과학뉴스’에서 최민수 국립과천과학관 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핵분열 발전은 무거운 원소가 나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고, 핵융합 발전은 반대로 수소 원자핵 2개가 융합해 헬륨 원자핵 1개로 바뀔 때 생기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구에 있는 모든 수소가 핵융합발전의 원료로 쓰일 수 있는 걸까? 그건 아니다. 핵융합에 쓰이는 건 중수소와 삼중수소다. 자연 상태의 수소(H)는 거의 대부분 양성자 1개를 지녔다. 가볍다고 ‘경(輕)수소’라 불린다. 여기에 중성자 하나가 붙으면 중(重)수소, 중성자 2개가 붙으면 삼중수소가 된다.

쉬운 산수 문제 하나 풀어보자. 중수소(양성자1 + 중성자1)에 삼중수소(양성자1 +중성자2)를 더했더니 헬륨(양성자2 + 중성자2)이 나왔다. 빠진 건 무엇일까? 답은 중성자 1개다.

이때 ‘질량 결손’이 일어나면서 핵융합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식이 등장한다. ‘E=mc2’. 아인슈타인이 만든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다. 에너지(E)는 질량(m)과 광속도의 제곱(c2)을 곱한 값이다. 광속도, 즉 진공 상태에서 빛의 속도는 약 3억m/s. 1초에 약 3억m를 간다.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도는 속도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광속도 값에 제곱을 해서 질량을 곱하면 에너지 값은 어떻게 될까? 더욱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다.

성 교수에 따르면, 1g의 연료를 기준으로 할때 핵융합(3억5천만kJ/g)은 석유(40kJ/g)에 비해 875만 배 더 큰 에너지를 만든다.

어려운 문제는 지금부터다. 첫째, 지구는 태양 같은 항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의 중심온도는 1만5천 도, 외부온도는 6천 도, 무게는 지구의 33만 배에 이른다.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원자핵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플라즈마’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태양정도 무거워야 플라즈마가 흩어지지 않고 뭉쳐 있을 수 있다.

해법이 있다. 낮은 중력 대신 초고온으로 플라즈마를 만들고, 플라즈마의 전기적 성질을 이용해 자기장에 가둬두는 것이다. 자기장을 만드는 게 도넛 모양으로 둘둘 감긴 코일이다. 이 코일에 자칫해서 태양보다 뜨거운 플라즈마가 닿으면 녹아버릴 터. 과학자들은 플라즈마를 진공 상태로 띄워 코일을 보호한다.

성 교수는 “이온온도 1억 도 이상의 고온 플라즈마를 고밀도 상태에서 장시간 유지해야 전력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KSTAR는 2026년까지 이 상태를 300초이상 유지하는 게 목표다. ITER의 목표는 500MW 이상의 핵융합 에너지를 400초 이상 생성하는 것이다.

인터랙티브 애니메이션으로 핵융합 에너지에 대해 설명하는 국립과천과학관 전시물.

둘째 문제는 원료다. 중수소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바닷물 1ℓ당 0.03g이 들어 있다. 가격도 1g당 13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삼중수소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 리튬-6에 중성자를 쏘아 만들거나 중수로형 원전 가동 중 나온 폐기물에서 추출해야 한다. 가격은 1g당 3만 달러. 다이아몬드 가격과 맞먹는다.

대안은 두 가지다. 삼중수소 대신 헬륨3를 원료로 쓰는 것이다. 헬륨3는 지구상에 없지만 달엔 풍부하다. 학자들은 달의 헬륨3가 1g당 1400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추정한다. 삼중수소보다 싸다.

중수소끼리 융합하는 길도 있다. 성 교수는 “바닷물에 들어 있는 중수소만 이용해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기술도 개발 중인데, 개발에 성공할 경우 인류가 10억 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꿈의 에너지는 언제 실현될까? 한국정부와 연구기관들은 2050년대에 핵융합에너지의 생산을 실증하고 상용화까지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기업들의 로드맵은 더 공격적이다. 미국에선 3년 안, 영국에선 8년 안에 핵융합 발전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스타트업들이 나왔다.

핵분열 발전은 원자폭탄과 함께 전쟁과 분열의 시대에 나온 기술이었다. 핵융합 발전은 다르다. 융합 속에 발전한다. ITER 참여국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한국·중국과 일본, 인도와 유럽연합 등 20세기에 대립했던 나라들이 힘을 합치고 있다. 기후위기, 에너지위기라는 인류 공통의 문제 앞에서 핵융합은 인류 융합의 희망을 품게 한다.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자료: ‘삼중수소 연료의 부족은 핵융합 에너지를 빈 탱크로 남길 수 있다’(<사이언스>, 2022년 6월), ‘달 헬륨3 핵융합 자원 분포1’(해리슨 슈미트 등 위스콘신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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