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사이로 바라본 몸..이방인이 되어 말 건네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몸' 통해 내면 그려내는 김찬송 작가
연작 '낯선 틈' 통해 생경한 시선 표출
감정 배제한 채 두껍게 칠한 살덩어리
낯설지만 매혹적인 새로운 경계 표현
그림 속 오브제는 이야기 상상하게 해
#익숙하면서 낯선, 낯설고도 익숙한 나의 몸
여름은 몸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높은 기온과 습도에 끈적해지는 몸의 표면이 온전히 감각되는 시절이다. 김찬송의 작품에는 이러한 몸, 살, 피부 그리고 그것들의 모호한 경계가 있다. 작업 초기부터 몸을 주제로 삼은 그는 자기만의 작업으로 주목을 모으며 활동하고 있다. “올바로 감각하지 못하고 남겨진 몸 덩어리들이 새로운 경계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림들이다.
작가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을 향한 관심은 몸으로 시선을 옮겼다. 집에서 타이머를 맞추고 자기를 촬영하던 중 우연히 얼굴이 잘린 채 찍힌 몸의 모습을 본 이후였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사진 속에서 “…. 얼굴이 사라진 몸은 낯선 이방인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때로는 그 신체가 그저 덩어리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그 몸은 어떤 경계 바깥에 있다고 느꼈다. 가장 가까운 존재라 믿었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던 찰나의 경험은 불편한 생경함과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자기 몸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익숙한 집을 배경 삼아 스냅 사진처럼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김찬송은 이때부터 몸을 그리는 연작을 ‘낯선 틈’이라고 부른다. ‘Frontier(프런티어)’(2015)는 낯선 틈 사이로 보이는 살을 꺼내어 내미는 작업이다. 화면 한가운데는 얼굴을 제외한 나체의 몸을 가진 여자가 있다. 눈앞의 문을 열고 앞으로 몸을 향하던 여자는 틈 사이로 시선을 느낀 듯하다. 시선 쪽으로 각도를 튼 몸은 가슴과 둔부의 모양을 나타내며 그 부피를 드러낸다. 높이 2m에 달하는 대형 화면 앞에 서면 나체의 살은 덩어리 그 자체로 보는 이에게 쏟아진다.
김찬송은 2015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머물렀다.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만나고 작업에 전념하며 새로운 시도를 펼치게 되었다. 작가로서 적극적으로 화면에 개입하며 회화로서의 회화에도 집중하는 시간을 늘렸다. 에스키스 단계에서 집안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내다보이던 배경을 세트장처럼 구성하기 시작했다. 작업실 한쪽에 놓인 책상 위에 일상 속 오브제를 다양하게 배치해보는 식이었다. 배치를 마무리하면 타이머를 맞춘 뒤에 달려가 그 장면 안에 몸을 섞어 캔버스에 그려질 장면을 완성했다.
‘미완의 편지’(2022)는 이러한 작업 방식을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다. 화면 안에는 한 여자가 얼굴을 가린 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고민하는 듯한 그의 손은 연필을 쥔 채 책상 위 종이에 닿지 못하고 부유한다. 작은 화병이 앞에 놓여 있고 거기에는 꽃이 얇은 줄기 끝에 커다랗게 달렸다. 초록색 구슬은 묵직하게 화병의 반대편에 놓여 있다. 작품 속에서 평소 관련 없던 일상 속 사물들은 작가의 배치로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관람자가 사물을 단서 삼으며 숨겨진 이야기를 스스로 읽어낼 수 있도록 한다. 보라색 연필과 보라색 꽃의 조응, 초록색 구슬과 초록색 배경의 조화, 살색과 초록색의 대비 등에서 작가의 색채 실험도 엿보인다.
작가는 언젠가 파리 근교의 한 마을에서 몇 달간 머물렀다. 모네가 살던 지베르니와 가까운 곳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을 열면 눈앞으로 센강이 흘렀다. 강가는 정비된 파리의 강둑 모습과 달랐다. 수풀이 우거졌고 강물에 떠내려가던 잎새는 거기에 엉겼다. 이렇게 팔레트 위에 뭉개진 물감과 살이 캔버스 위에서 뒤섞이는 순간 김찬송의 작품은 완성된다. 더 정확하게는 펼쳐진다. 김찬송이 말한 “올바로 감각하지 못하고 남겨진 몸 덩어리”들이 만든 경계는 낯설고 모호하다. “지시해야 할 것을 지시하지 않을 작가의 자유”는 보는 이에게 마지막까지 구체적 결말을 보여주지 않지만 감각하게 만든다. 안 보이는 몸의 나라다.
김한들 미술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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