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농구하는 필라테스 강사! 데상트마스터욱 장민길

서호민 2022. 8. 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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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서호민 기자] 올해부터 조금씩 활성화 조짐을 보이는 3x3 코리아리그 여자부는 남자 못지않은 명승부가 펼쳐지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유독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뿜는 이가 있다. 멀리서 봐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수려한 외모는 기본, 171cm의 훤칠한 신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슈팅. 그녀를 코트에서 가장 빛나게 하는 매력 포인트다. 3x3 전문선수로 활동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는 데상트마스터욱의 장민길이 그 주인공. 본업인 필라테스 강사로서의 삶과 3x3 선수로도 무한한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그녀를 만나봤다.

※본 기사는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민길’이라는 이름이 점프볼 독자들에게 낯설 수 있는데요, 인사 먼저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3x3 여자팀 데상트마스터욱에서 활약하고 있고, 본업으로는 필라테스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장민길입니다(웃음).

Q. 올해부터 전국 단위 3x3 대회에 참여하고 있어요. 3x3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있었을까요?
작년에 NYS 소속으로 코리아투어 대회에 딱 한 번 나가보고 정식으로 클럽에 들어가 대회에 참가한 건 올해가 처음이에요. 같은 팀에 속한 구기연 선수가 ‘언니 우리 팀에서 같이 운동해볼 생각 없나요’라며 저를 꼬드기는 거에요. 그전까지는 농구를 자주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동료들과 추억도 쌓을 겸 데상트마스터욱 소속으로 처음 3x3와 연을 맺게 됐어요.

Q.3x3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작은 공간에서 6명의 선수가 치열하게 엎치락 뒤치락 하며 경쟁하는게 정말 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공수전환도 매우 빠르고요. 처음에는 룰도 생소하고 몸싸움도 치열해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어요. 예전 선수 때만 생각해서는 큰 코 다치겠더라고요.

Q.여자 3x3도 점점 붐이 일어나고 있어요. 같이 상대해 본 선수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선수들이 있었다면요.
1EYE한솔 소속의 이소정 선수와 박은서 선수요. 확실히 국가대표는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기량도 기량이지만 확실히 오랜 기간 3x3를 전문적으로 해왔던 선수들이라 ‘진짜 잘하는구나’라는게 느껴져요.

Q.데상트마스터욱 팀에 대해서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김기욱 대표님께서 농구에 대한 열정이 많으시고 진심이세요. 제가 올해 3x3는 처음이기 때문에 지적도 해주시고 때로는 부상 당할까봐 걱정도 해주세요. 열정적인 대표님 덕분에 팀 분위기가 항상 업 된 느낌이에요. 또, 팀에서는 (임)희진 언니 다음으로 나이가 많아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Q.팀에 미녀 선수들이 많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본인 외모 순위는 몇 등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팀이 그래도 비주얼로는 어딜 가서도 꿀리지 않거든요. 하하. 아마 그중에선 제가 독보적이지 않을까요(웃음). 농담이고요. 팀원들이 다 예뻐서 저는 묻어가는 편이에요.

Q.농구적으로는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공격적인 부분은 다른 팀원들 능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궂은일을 주로 담당하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외곽포 능력도 갖추고 있어서 슈터 역할도 겸하고 있답니다.

Q.5월 달 코리아투어 1차 서울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어요.
사실 올해 첫 대회였던 4월 달 KXO 서울투어에서 저희 팀이 전패했어요. 큰 부담없이 놀러간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나갔는데 막상 경기를 다 지고나니까 자존심이 상하는거에요. 그때 이후로 마음가짐을 달리해 팀원들과 정기적으로 연습도 하고 훈련을 하면서 3x3 종목에 대한 적응력도 높였던 것 같아요. 두 번째 대회였던 코리아투어 대회에서 독기를 품고 악바리 정신으로 임했는데 준우승을 했어요. 경쟁팀인 야핏 언니들이 저희 보시더니 눈빛부터가 달라졌다고 하는거에요. 아쉽게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팀원들과 열심히 훈련한 보람을 느꼈어요. 또, 저 개인적으로 3x3에 대한 흥미도 더 느끼게 됐습니다.

Q.이쯤에서 돌직구 질문 하나 던질게요. 서울대회 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 신경전을 벌인 장면이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아, 이건 흑역사인데 빼주시면 안 될까요(웃음). 제가 원래 경기 중에 거의 화를 내지 않는 편인데 그날따라 경기에 몰입하다 보니 승부욕이 발동한거에요. 3x3 종목 특성상 몸싸움이 심하잖아요. 저도 모르게 내재해 있던 승부욕이 드러났고 신경전으로 이어졌던 것 같네요. 안 그래도 마스터욱 대표님께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그때 그 신경전 때문에 인터뷰 하는거 아니냐고 놀리시는거에요(웃음). 기자님 진짜 그 일 때문에 저한테 인터뷰 요청주신거 아니죠? ㅎㅎ(이에 서기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

Q.농구는 언제 처음 시작하셨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커서 스카웃 됐어요. 그 당시 키가 160 후반이었거든요. 마침 아버지가 운동을 시키려고 하셨는데 농구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거에요. 처음에는 겁도 많고 해서 동생이랑 같이 시작했어요.

Q.농구의 어떤 매력에 그렇게 빠지셨나요?
사실 농구에 농자도 몰랐어요. 근데 골대에 골인을 하는, 공을 골대에 집어넣는 그 자체가 그렇게 재미있더라고요. 엄마는 처음부터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제가 워낙 즐거워하니까 결국 이해해주시더라고요.

Q.어떤 포지션을 맡았나요?
슛에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슈팅가드를 주로 봤어요. 참고로 어릴 적 롤모델이 박정은 감독님이었어요. 같은 슈터 포지션인 것도 있고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멋있어 보였어요.

Q.실력은 어느 정도이셨나요?
중학교 1학년을 제외하면 고등학교 때까지 꾸준히 주전으로 뛰었어요. 동일전산고 시절에는 지금 태양모터스에 있는 이선화 언니와 같이 뛰기도 했어요.

Q.학창시절에 농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나는 대회나 순간이 있다면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종별 대회였나 결승전에서 선일여중을 상대로 2점 차로 아깝게 져서 준우승에 그쳤어요. 당시 20초를 남기고 공격자 3초 바이얼레이션을 범해서 졌는데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3초 바이얼레이션이 아니었는데...지금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아쉬웠던 기억이 나요.

Q.프로 드래프트에 2번이나 도전장을 내미셨어요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로 선수를 꿈꾸잖아요. 그렇듯 저도 처음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프로무대에서 뛰는 것을 꿈꿨어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드래프트에 도전했는데 뽑히지 못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정말 프로만을 바라보며 열심히 운동했는데 그 꿈이 한순간에 무너져서 그걸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어요. 어떻게든 프로에 가고 싶어 연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빈자리가 없는거에요. 더 절망스러웠죠.

Q.충격이 컸을 법도 한데 드래프트를 마치고 바로 실업팀으로 들어가셨어요
지인의 소개로 실업팀 김천시청에 들어갔어요. 당시에는 드래프트에서 떨어진 좌절감에 농구공이 손에 잘 안 잡히더라고요.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고삐 풀린 듯 미친 듯이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농구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어릴 때부터 ‘넌 꼭 프로 선수가 돼야 한다’라며 엄하게 대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김천시청 감독님께 부탁을 해서 실업팀에 다시 들어가게 됐죠. 그때가 23살이었는데 20살 때보다는 마음가짐이 다르더라고요. 이번에는 ‘주전이 되어보자’며 간절한 각오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 또, 이전까지는 1대1 개인기 위주의 농구만 배웠다면 실업 팀에서는 조직력이 가미가 된 아기자기한 농구를 배워서 재밌게 농구를 했던 기억이 나요.

Q.그리고 두 번째 낙방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렇게 실업 팀에서 간절한 각오로 열심히 프로를 위해 준비했는데 결국 안 되더라고요. 프로 하나만을 바라보며 인생을 살았는데 두 번씩이나 떨어지니까 허탈하고 속상했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부모님께서도 기대를 갖고 아낌없이 지지해주셨는데 너무나 죄송스러웠어요. 저 스스로 ‘내가 여기까지밖에 안 되나 보다’, ‘농구는 여기서 끝인가 보다’라며 좌절도 많이 했어요.

Q.선수로서는 인상적인 커리어를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제 키가 171cm인데 이게 중3 때 키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많이 컸는데 그 이후로는 크지 않았아요. 결국 농구에서 중요한 건 키인데 제 포지션에서는 저보다 큰 선수들이 많았어요.

Q.운동도 분야가 다양한데, 필라테스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제가 농구를 하면서 전체적인 몸 밸런스가 좋지 않았어요. 무릎도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고요. 그러면서 몸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는데, 스트레칭부터 알아보기 시작하다가 관련 운동인 필라테스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필라테스가 워낙 여성스러운 운동이다 보니 여성성에 끌린 점도 있고요.

Q.농구도 필라테스도 운동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종목이잖아요. 아예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분명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필라테스 강사가 되려면 당연히 이 분야에 대한 공부도 해야 되고 자격증도 따야 돼요. 제가 여태껏 운동만 해봤지 공부는 처음이어서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책에 생판 처음 듣는 단어가 가득한거에요. 쓰는 단어도 그리스어, 영어 위주라 생소한 단어를 깨우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또 사람 몸을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해부학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그래도 흥미를 갖고 계속 공부하다 보니 발전해나간다는 느낌도 받고 욕심도 생겼어요. 필라테스도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클래식 필라테스를 하고 싶었어요. 클래식 필라테스를 조금 더 깊게 배우고 싶어 미국 LA에 자격증을 따러가기도 했어요.

Q.최근 들어서 남자 농구선수들이 오프시즌에 필라테스를 하는 모습이 부쩍 늘기도 했어요.
필라테스가 굉장히 여성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하셔서 ‘남자는 없을거야’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필라테스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면 원래 남자가 처음 고안해 낸 운동이에요. 회원들 중에 남자 분들도 많아요. 그리고 농구선수들에게 꼭 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어요. 보통 농구는 큰 근육을 위주로 운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필라테스는 그런 부분을 완전히 벗어나서 지구력을 키워주고, 가만히 서 있다가 부딪혀도 쓰러지지 않을 속 근육을 만들어줘요. 또, 타이트해진 근육을 릴랙스해주는 효과도 있고요. 농구선수가 아니더라도 일반 남자들이 많이 겪는 거북목, 1자목, 척추 휘어짐, 골반 틀어짐 등등 일상 생활에서 오는 통증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적극 추천해요.

Q.2016년부터 필라테스 강사로서의 삶을 출발했어요. 6년 정도 됐는데, 지금 삶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요?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말 잘 배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우선 센터에서 대표님이 저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빠르게 일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만족도도 높고 일도 정말 보람차고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Q.필라테스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요
음... 먹고 살만한 정도는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Q.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큰 보람을 느끼시나요?
회원님들의 자세가 좋아지고 몸이 유연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뿌듯함을 느껴요. 예를 들어 제가 원하는 근육을 회원님들이 사용한 뒤에 피드백을 받으면 그때만큼 좋을 때가 없어요. 기쁘면서도 ‘잘 했구나’하고 보람을 많이 느끼죠.(웃음)

Q.반대로 언제 가장 힘드신가요?
회원님들의 기분이 안 좋을 때? 필라테스 강사가 전문직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서비스직이잖아요. 회원님들의 컨디션, 그날의 기분에 맞춰가며 레슨을 해야 하기에 힘들 때도 있었어요.

▼ “더 부지런하게”… 장민길이 꿈꾸는 미래

장민길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2시간여 동안, 그녀에게서 농구를 사랑하는 애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비록 모든 이들의 최종 목표인 프로 선수라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농구를 통해 많은 것을 돌려받았다고도 말했다.

“애증?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농구를 통해 기쁨, 슬픔 다 겪어봤잖아요. 가끔씩 스트레스 받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예전에 농구 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이겨내곤 해요. 그리고 3x3 선수로 여전히 농구공을 놓지 않는 걸 보면 아직까지 그래도 농구에 대한 열정이 조금은 남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농구선수 장민길과 필라테스 강사 장민길의 공통점이 있다.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좌절은 짧았고 노력은 길었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부끄럽지 않은 딸, 언니, 그리고 아내가 되고 싶어했다. 오는 10월, 평생의 반려자와 결혼까지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릴 장민길. 앞으로 그려나갈 그녀의 미래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결혼까지 하게 되면 앞으로 생활이 더욱 바빠질거 같아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고, 또 어느 곳에 있든 최선을 다하는 제가 되고 싶어요. 필라테스 강사로서는 회원님들이 필요한 것들을 더 많이 채워드리고 싶어요. 더 나아가 앞으로 저의 필라테스 센터를 차리는 목표도 있=습니다. 또, 저희 데상트마스터욱 대표님을 필두로 팀원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농구를 하고 있는데 팀 전체가 열정으로 한데 뭉친 만큼 앞으로 저희 팀의 행보도 기대가 돼요. 올해 남은 대회에서도 부상 없이 끝까지 농구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 어서와 서기자, 필라테스는 처음이지?


“기자님 운동하실 준비 되셨죠?” 장민길과의 모든 인터뷰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려던 순간,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한마디. 그녀의 말 한마디에 기자는 두려움을 떨었고 터덜터덜 발길을 되돌려 필라테스 기구 앞에 섰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숨쉬기 운동만 할 뿐, 제대로 된 운동이라곤 거의 하지 않는 서기자. 그렇게 운동이 시작됐고 여기저기서 고통(?)스러운 소리가 나온다. 처음이라고 봐주는 법은 없었다. “기자님 안 좋은 데가 많네요. 앞으로 운동 꾸준히 하셔야겠네요”라며 가차없이 쓴소리를 가하는 민길쌤. 필라테스는 생전 처음 접해본 서기자. 이날 고생 좀 했다. 휴.

▼ 장민길 프로필


생년월일_1990년 8월 10일생
키_171cm
출신교_백산초-동일중-동일전산고-한림성심대
경력_김천시청-데상트마스터욱

사진_박상혁 기자, 데상트마스터욱 제공
장소제공_필라테스더그라운드(서울 강남구 테헤란로6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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